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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2022.07.20]

예음TV/수요예배설교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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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1절 ~ 4절 [개역개정]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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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 살펴볼 사도는 마지막으로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그의 출신지[그리욧(수 15:25]를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가룟 유다를 가리켜 '예수를 판 자'라고 했습니다. 물론 유다가 처음부터 예수님을 배반하기 위해 제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재정을 맡을 정도로 셈에 밝았으며 신임도 얻었습니다(요 12:6). 하지만 유다는 자신을 믿어주었던 동료들과 스승을 배반하므로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말(시 41:9)을 인용하면서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18). '발꿈치를 들었다'는 표현은 말이 자기 주인을 걷어차고 도망하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는 마치 자신을 보살펴준 주인을 발로 차고 도망간 못된 말처럼 자기를 제자 삼으시고 함께 떡을 떼며 동고동락했던 예수님을 저버린 배신자였습니다.

사실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변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유다가 스승과 친구를 배반한 것은 갑작스런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재정을 맡아보면서 돈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점점 돈에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중 마지막 유월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근처에 있는 베다니라고 하는 동네를 방문하시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나사로가 살고 있는 마을로 그는 죽은 지 나흘 만에 예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요 11:39).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때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순전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마 26:7 ; 맏 14:3)와 발에 부었습니다. 이를 본 가룟 유다는 ‘왜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느냐?’며 화를 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가룟 유다의 말에 동조했습니다(마 26:8; 막 14:4).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마 20:2). 삼백 데나리온 삼백 일치 품삯으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몸에 부은 나드 향유는 한 근, 약 300g에 천만 원이 넘는 고가의 향유였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줘야지 왜 낭비하느냐고 화를 낸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가룟 유다가 화가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못해서가 아니라 많은 돈을 착복할 기회를 놓쳐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재정을 맡고 있으면서 돈을 자주 훔쳐가곤 했습니다(요 12:1-6). 결국 돈 때문에 눈이 먼 가룟 유다는 예수님마저 은 삼십에 팔아넘기는 배신자가 되고 말습니다(마 26:15).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딤전 6:10). 돈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돈에 욕심을 가지게 되면 잘못된 길로 가기 쉽고(약 1:15), 돈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 가룟 유다처럼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결국 멸망과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딤전 6:20). 그러므로 우리는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빠지지 않도록 돈을 비롯해서 이 세상의 것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요일 2:16) 등을 멀리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오해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유대 민족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권력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 동기였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막 9:34 ; 눅 9:46 ; 22:24). 하지만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마 16:21 ; 26:2 ; 막 8:31). 더욱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을 자신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고 하심으로 죽음을 암시하셨습니다(마 26:11 ; 막 14:7 ; 요 12:8). 유다는 자신의 기대가 잘 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죽게 되면 그를 따랐던 자들 역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갖도록 했습니다(눅 22:3 ; 요 13:2). 그렇게 하면 자신은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간의 돈까지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을 비롯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것을 알고 었습니다(요 11:53).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면 얼마를 주겠느냐고 묻자 그들은 은화 삼십을 계산해 주었습니다(마 26:15). 이 금액은 소가 종을 들이받아 죽였을 때 소 임자가 종의 주인에게 보상해야 할 금액으로(출 21:32) 큰돈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유대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서는 구약의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바 있습니다(슥 11:12 ; 마 27:9). 이처럼 가룟 유다의 오해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마귀'라고 하셨는데(요 6:70), 이는 그가 마귀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가룟 유다는 탐욕과 오해로 인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라는 명예로운 자리에서 마귀의 종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룟 유다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실 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아 넘길 것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 26:24). 그 말을 들은 유다는 자신의 죄를 깨닫기는커녕 뻔뻔스럽게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또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가 내린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받은 돈을 다시 돌려주며 "내가 죄 없는 피를 팔아넘기는 죄를 지었다"고 말했습니다(마 27:4). 죄를 뉘우칠 뿐 회개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란 말을 들은 또 한 명의 사도가 있습니다. 바로 베들입니다(마 16:23).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저주하며 맹세하기도 했습니다(막 14:71). 그때 닭이 울었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눅 22:61). 베드로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도 예수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장담했건만 죽음의 두려움 앞에 스승인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으니 자신이 원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후에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신앙을 회복했고 순교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회개 대신 자살을 선택했고 스스로 목을 매어 생을 마감했습니다(마 27:5).

예수님께서는 이런 유다를 가리켜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24). 만일 유다가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께 대해 오해하지만 않았더라면 혹은 베드로처럼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더라면 그는 다른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순교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기회를 놓쳐버렸고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마귀의 종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후에 유다는 열 두 사도의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그 자리를 맛디아가 대신했습니다(행 1:26)

우리는 결코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골 3:5). 그 이유는 탐심이 하나님 대신 물질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탐심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보다는 세상적인 이익이나 물질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해가 없어야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복은 한 마디로 걱정없이 잘 사는 것입니다. 돈 많이 벌고, 자식들 잘 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유순한 사람들, 의를 위해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화평을 이루는 사람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11).

예수님 당시에도 세상의 복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았음에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 메시아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단지 먹을 것을 위해 세상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요 6:60).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면 언젠가는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서도 예수를 파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자들입니다. 그들 역시 가룟 유다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마 26:24). 우리는 가룟 유다처럼 탐욕과 오해로 마귀의 종노릇하지 말고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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