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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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0편 1절 ~ 9절 [개역개정]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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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0편과 21편은 하나의 사건을 전후로 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즉, 20편은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이고, 21편은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노래입니다. 이 시편은 표제가 말해주듯 다윗이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쟁을 앞둔 다윗 왕을 위해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중보기도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실제로 백성들이 다윗을 위해 기도했는지, 아니면 다윗이 자신이 드린 기도를 마치 백성들이 드린 것처럼 표현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본 시편에 등장하는 ‘너’는 다윗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본 시편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절입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여기서 말하는 ‘환난’은 단순히 전쟁의 상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겪는 모든 형태의 위기와 어려움을 포함합니다. 다윗은 누구보다 환난을 많이 겪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백성들은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를 축복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다윗을 높이 드시기를 원했습니다(시 20:1 하).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존재 자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란 곧 ‘야곱의 하나님’과 같은 의미입니다.
야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로 그들의 조상인 이스라엘의 옛 이름입니다. 야곱은 ‘발뒤꿈치를 잡다’는 뜻으로, 그가 태어날 때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창 25:26). 그리고 훗날 바로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창 47:9), 야곱으로서의 그의 삶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시어 그의 조상 곧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언약을 이어가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그의 공로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야곱이란 이름 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으로,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와 씨름한 사건에서 유래합니다(창 32:28). 사실 인간이 힘으로 천사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천사는 혼자서도 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사 37:36). 물론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 천사를 인간이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야곱이 ‘이겼다’라고 한 것은 그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난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천사에게 축복을 간청하여(창 32:26), 마침내 그것을 얻어냈기 때문입니다(창 32:29). 그 천사는 하나님께서 보내셨기에 그에게서 축복을 얻어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복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로 볼 때, 야곱의 승리는 육신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내와 기도와 눈물로 이루어낸 믿음의 승리였습니다(호 12:4).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자기 힘만을 의지하던 옛사람 ‘야곱’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는 새 사람 ‘이스라엘’로 거듭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1절에 등장하는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어떤 환난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직 그분만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시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너를 높이 드시기를 원한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환난 가운데서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그를 높이 세우셔서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중을 받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다윗의 명성이 온 세상에 널리 퍼졌으며, 이는 그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중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대상 14:17).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시 146:3).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지켜주시고 환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비록 다윗처럼 세상에서는 이름을 떨치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로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벧전 2:4).
이어서 2절과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거룩한 장소로, 시온 곧 예루살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전쟁을 앞두고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와 제사를 받으시고, 모든 환난 가운데서 그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기를 소망했습니다. 이는 단지 왕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곧 자신들을 위한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승리가 곧 그들의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다윗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시 28:9). 오늘날의 성도와 교회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성도가 목회자를 위해, 그리고 목회자가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결국 교회라는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2:12). 그러므로 다윗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또 백성들이 다윗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4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은 전쟁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의 간절한 소원은 당연히 전쟁에서의 승리였습니다. 이를 위해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체적인 전략을 세웠을 것입니다. 백성들 역시 다윗의 그 소원과 계획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누구나 마음의 소원이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이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다”(잠 16:9)라고 한 잠언 기자의 말처럼 우리의 걸음을 정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그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시 69:1).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계획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5절에서 백성들은 자신들이 다윗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세울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다윗의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소망했습니다. ‘깃발’은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세우겠다’라는 것은 단순히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승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선포하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백성들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실 승리를 바라보며 개선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알았다”라고 고백합니다(시 20:6 상). 여기서 ‘구원하시는’이라는 완료 시제로, 이미 구원이 확정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비록 전쟁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그를 그 오른손의 힘으로 구원해 주실 것이라 확신했던 것입니다(시 20:6 하). 그러기에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그 이름만을 자랑하겠다고 선언합니다(시 20:7).
이러한 믿음은 다윗의 삶 속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힘, 즉 칼이나 창, 병거, 말, 군사의 수 등을 승리의 조건으로 여깁니다. 군사력이 강할수록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과 전혀 다른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칼이나 창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외적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가에 달려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잠 21:3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에게 세 가지를 금하셨는데, 그중의 하나가 병마(군마)를 많이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신 17:16). 병마를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곧 강한 군사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왕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군사력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아예 병마를 많이 두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 사람들처럼 권력이나 명예, 부귀나 영화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자랑하거나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고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덧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국 비틀거리며 엎드러질 수밖에 없습니다(시편 20:8 상). 우리가 기억하고 의지하며 자랑해야 할 것은 오직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입니다(딤전 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에게나 환난은 찾아옵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권력을 붙잡고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다윗과 그의 백성들처럼 야곱을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분께 간구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시 20:9). 그럴 때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환난을 이겨낼 힘을 주실 것입니다(시 37:40). 우리의 소망은 세상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