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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yeum 2025. 9. 2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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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1절 ~ 6절 [개역개정]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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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짐승은 무엇일까요? 바로 양입니다. 양은 제물로도 널리 사용되었는데, 특히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는 무려 12만 마리의 양이 화목제물로 드려졌습니다. 그만큼 양은 이스라엘에서 널리 사육되던 가축이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은 유목 민족으로(창 46:34),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목축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기반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대부분 가정마다 양을 길렀고, 나발처럼 대규모 목장을 운영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삼상 25:2). 양은 순한 동물의 상징처럼 여겨질 정도로 성격이 매우 온순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겁이 많고 환경에 민감하며, 방향이나 거리 감각이 떨어집니다. 특히 눈앞에 있는 풀을 뜯어먹는 데 몰두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초지는 대체로 협곡이 많은 고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길을 잃은 양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다치거나 죽곤 했습니다. 또한 맹수들도 많아서, 길을 잃은 양은 쉽게 그들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양은 목자의 인도와 보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본 시편의 저자로 알려진 다윗도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삼상 17:15). 그래서 양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또 목자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본문에서 자신을 양에 비유하고, 하나님을 목자로 묘사한 것도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시 23:1). 여기서 양은 다윗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다윗의 고백을 통해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 된 백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하시는지 함께 확인해 보겠습니다.

1.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2).

이스라엘 남부 지역은 강수량이 적고 건조했기 때문에, 풀이 있는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에게 좋은 풀을 먹이기 위해 계절에 따라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수개월 동안 푸른 풀밭을 찾아 이동해야 했습니다(창 37:17). 풀이 부족하다 보니, 양들은 풀만 보이면 먹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목자는 양들에게 풀을 함부로 먹이지 않습니다. 풀 사이에 독초가 섞여 있을 수 있는데, 양에게는 그것을 분별할 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먼저 독초가 있는지를 살핀 후에야 비로소 양들이 안심하고 풀을 뜯을 수 있도록 합니다. 양들을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는 표현은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시 23:2 상). 양은 초식동물이기에 주로 풀을 먹습니다. 그런데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영양가 있는 좋은 풀을 먹어야 합니다. 이 ‘좋은 풀’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양이 풀을 먹어야 살 수 있듯, 사람도 음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 달리 영적 존재이므로, 육체의 음식뿐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마 4:4).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자라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신앙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이 풀을 먹으려면 풀밭으로 가야 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교회에 가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씀이 좋은 풀인지 아니면 독초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독초를 좋은 풀이라 속여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별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요일 4:1).

또한 목자는 양들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시 23:2 하). 이스라엘은 갈릴리 지역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강수량이 많지 않습니다. 특히 다윗이 살던 남부 유대 지역은 강수량이 적고 광야가 많은 지형이라, 풀뿐만 아니라 물조차 쉽게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목자는 풀뿐만 아니라 물을 찾아서 양들에게 먹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개 풀이 있는 곳에는 물이 있고, 물이 있는 곳에는 풀이 자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한 곳만 잘 찾으면 양들에게 먹을 풀과 마실 물을 함께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물이 쓰거나(출 15:23), 오염되어 마실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양은 겁이 많아 물살이 센 곳에서는 물을 마시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목자는 맑고 잔잔한 물가로 양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양들이 평안히 물을 마시고 쉴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언제나 그를 돌보시고 평안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삶이 늘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사울에게 쫓기며 위기를 겪었고, 왕이 된 후에도 여러 고난의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매 순간이 위태롭고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며, 끝까지 보살펴 주실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어쩌면 이 시편도 그가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가장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순간에 기록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와 같은 평안의 자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3).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라는 말은 지치고 낙심하여 절망 속에 있는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새 힘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손길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수많은 위기와 고난을 겪으면서 때론 지치고 낙심하기도 했지만(시 42:5),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의 경험이 있었기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키신다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지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그런 순간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새 힘을 부어주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양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눈앞에 있는 풀을 뜯어먹는 데 몰두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라고 했습니다(사 53:6). ‘그릇 행하다’라는 말은 ‘길을 잃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미혹을 받아 곁길로 나간 것을 뜻합니다(렘 50:6). 양들이 풀을 뜯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처럼, 사람들도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외면한 채 각자의 욕망을 따라가다가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삶을 살던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의의 길’이란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은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곧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세상 가운데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겔 20:9). 하나님의 자녀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경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당신의 자녀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지만, 자녀가 그 인도를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으셨습니다(겔 36:20; 사 52:5; 롬 2:24).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이끌려 살지 말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곧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통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마 5:16).

3.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십니다(4).

이스라엘은 지형상 골짜기가 많았고, 그곳에는 시내나 샘이 흐르곤 했습니다(신 8:7). 이 때문에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자주 내려왔으며, 목자들도 양 떼를 이끌고 골짜기로 이동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를 잘 아는 맹수들은 그늘진 숲이나 바위 뒤에 숨어있다가 양 떼를 공격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늘 긴장하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목자들이 골짜기를 지날 때 느꼈던 두려움을 반영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위험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안위하신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를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시며 그의 마음에 참된 평안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지팡이는 양을 인도하고 붙잡는 데 사용되었고, 막대기는 맹수나 도적 등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한 무기로 쓰였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목자 시절 양을 공격하는 맹수들과 싸운 경험이 있었는데(삼상 17:34-35), 성경에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때 막대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윗은 맹수들을 물리친 후,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다”라고 고백했습니다(삼상 17:37). 바로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와 같은 위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라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을 모든 위협으로 지켜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분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참된 평안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십니다(5).

본 시편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다윗은 1절부터 4절까지 하나님을 목자로, 자신을 양으로 묘사했고, 무대는 들판과 골짜기 같은 야외로 설정했습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들인 당신의 백성을 이끄시고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러다가 5절에 이르면 배역과 장소가 바뀝니다. 무대는 잔칫집으로 옮겨지고, 하나님은 그 집의 주인으로, 그의 백성은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으로 등장합니다. 보통 주인은 손님을 맞이할 때 발 씻을 물을 제공하거나 종을 시켜 발을 씻게 합니다. 또한 축복과 존중의 표시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정성껏 상을 차려 대접했습니다(눅 7:44-46). 특히 손님이 집 안에 머무는 동안 주인은 그를 대적들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주인, 곧 하나님께서는 능히 그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손님인 그의 백성은 원수가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더라도 안심하고 그 집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집 곧 천국에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따를 것이며, 인생이 끝나는 날에는 더 나은 세상으로 옮겨져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시 23:6).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은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어리석고 약하며 길을 잘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이 목자에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기고 따르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약하지만 목자가 지켜주기에 안전하며, 목자의 뒤만 따라가기에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습니다. 혹 길을 잃는다 해도 목자가 반드시 찾아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과 같은 우리는 영혼의 목자이신 하나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요 10:9)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하시며,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그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주님을 따르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