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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

yeum 2025. 11. 6. 09:27
성경본문 보기

고린도전서 2장 1절 ~ 9절 [개역개정]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설교문 보기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같은 말과 같은 마음 그리고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10). 또 세상의 지혜와 권세, 재물을 내세우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고전 1:31). 그것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배척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야 합니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품으며,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람의 지혜가 인간 사이의 분쟁을 조장한다면, 하나님의 지혜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의 입장을 취했고, 스토아학파는 모든 만물을 신으로 보는 범신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사상(행 17:21)에는 흥미를 보였으나, 십자가의 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처음부터 십자가의 도를 전하지 않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심을 먼저 언급했습니다. ‘종교심’이란 신을 갈망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을 말하는데, 아덴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까지 만들어 섬길 정도로 매우 종교적이었습니다(행 17:23). 하지만 그들의 신앙은 경외심이라기보다, 혹시 빠트린 신들로 인해 도시가 저주를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들이 알지 못하고 섬기던 신을 하나님과 연결하여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그 신은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생명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밝힙니다(행 17:24-25). 그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증거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고 선포했습니다(행 17:30-31). 여기서 ‘정하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바울의 설교 속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도행전 17장 18절에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했다’고 기록한 것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그 ‘정하신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기 위해 설명을 덧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종교심을 바탕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께서 정하신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심판과 구원에 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덴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몇몇 사람만이 복음을 받아들였을 뿐, 대부분 이를 거부했습니다(행 17:32-34).

바울은 이성과 철학을 중시하던 아덴 사람들이 십자가의 도에 반감을 가질 것이라고 여기고 그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바울은 복음의 능력이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음에 있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고전 2:1-2). 그래서 고린도로 건너간 후에는 더 이상 철학적인 변론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오직 있는 그대로의 복음,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을 직접 선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전 2:2). 세상의 지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18, 23).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 즉 ‘십자가의 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고전 1:21). 비록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부르심을 받은 자들, 곧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롬 1:16; 고전 1:18, 24).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것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고린도에서 전하려 했을 때 큰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고전 2:3). 당시 고린도는 아덴보다 더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니, 아덴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부담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힘입어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고전 2:4). 이는 복음을 믿는 것이 사람의 지혜나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2:5). 그렇다고 바울이 모든 지혜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복음에 관련하여 세상의 지혜를 거부했을 뿐입니다. 그 지혜로는 복음의 비밀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 곧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은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으로,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2:6-7).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했습니다(고전 2:8 상). 여기서 통치자들은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 권력자들을 가리킵니다. 만일 그들이 이 지혜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고전 2:8 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다면 어떻게 감히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구약을 인용합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이는 이사야 64장 4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라는 말씀에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는 내용을 덧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구원이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알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자세히 살피시기 때문입니다(고전 2:10).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영 외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합니다(고전 2:11).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 곧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고전 2:12). ‘은혜로 주신 것들’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얻게 된 구원과 영생, 그리고 장차 누릴 영광과 같은 모든 영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복은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으며, 오직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그것들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이처럼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으로 무감각하기 때문에 세상의 기준, 즉 눈에 보이는 대로만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 바라볼 뿐, 왜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아니라 빵에 더 관심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한 마디로 육에 속한 사람은 죄된 본성을 따라 영적인 일보다 썩어 없어질 육신의 일에 더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요 6:26). 반면에 영적인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적인 일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롬 8:5). 그는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그 너머에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일보다 영원한 세상의 일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또한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고전 2:15 상). 즉 무엇이 선하고 옳은지, 무엇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세상으로부터 판단을 받지는 않습니다(고전 2:15 하). 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비난이나 판단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을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은 삶의 기준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여기서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는 말씀은 이사야 40장 13절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그분을 가르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영(롬 8:9) 곧 성령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 곧 성령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시기와 분쟁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마귀의 일입니다. 따라서 시기와 분쟁을 일삼는 것은 마귀에게 종노릇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로서, 시기와 분쟁이 아닌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 하나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롬 15:5-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삶에는 분명히 인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 구속의 방법에 있어서는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복음은 단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되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 곧 성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성령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 곧 구원과 영생 그리고 장차 누릴 영광과 같은 영적인 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에 속한 사람들처럼 세상의 일에 몰두하지 말고, 영적인 일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들은 마귀가 좋아하는 시기와 분쟁이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는 하나가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영에 속한 사람으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