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성경본문 보기
시편 28편 1절 ~ 9절 [개역개정]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3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4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5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설교문 보기
다윗의 시로 알려진 시편 28편은 개인의 탄원에서 시작하여 기도의 응답에 대한 감사와 찬양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다양한 비유로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며 그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반석’이십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이스라엘은 지리적 환경과 기후적 특성 때문에 암석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악 지형이 많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반석처럼 보입니다. 그곳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굴이 많아 유목민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전쟁 때에는 개인이나 집단의 피난처로도 활용되었는데, 다윗도 사울을 피하여 여러 번 굴에 숨은 적이 있었습니다(삼상 22:1; 삼상 23:13; 24:3). 다윗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견고한 반석에 비유하며, 그분만이 진정한 피난처가 되심을 고백했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신 32:4; 시 18:2),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반석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주의 백성을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반석이라 부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과 같이 죽음에 이르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 두려워한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질병이나 고난,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을 죄에 대한 심판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침묵은 다윗에게, 자신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버려졌다는 두려움과 아울러 더 이상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습니다. 다윗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삶의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지 않았습니까?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기에(시 115:17), 다윗에게는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큰 슬픔이자 아픔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기도는 2절에서 더욱 간절해집니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지성소는 언약궤가 있는 곳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따라서 ‘지성소를 향하여’라는 표현은 단순히 성전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기도할 때 손을 들고 부르짖었는데, 손을 드는 행위는 마음을 드는 것을 상징하며(애 3:41), 부르짖음과 함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물론 속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간절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나는 속으로 기도했지만, 그 기도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을 만큼 간절했습니다(삼상 1:15). 중요한 것은 기도의 방식이나 형식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외적인 형태보다는 기도자의 내면, 곧 중심과 동기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진심으로, 또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지를 살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습관적이거나 형식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한나와 같이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드리는 진실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어서 다윗은 자신을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심판의 자리로 끌어내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시 28:3 상). 그들은 자기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지만 마음에는 악을 품고 있습니다. 이는 위선(僞善)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인 위선자들이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에 대해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비판하셨습니다(마 23:28).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자신의 의로움을 과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사 29:13).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진심이 아니라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화평을 말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악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들과 달리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하게 행했습니다(왕상 9:4; 15:5). 따라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악인들과 함께 심판의 자리로 끌어내시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시편 26편에서도 같은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시 26:9) 또한 다윗은 악인들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갚아주시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내려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시 28:4).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손으로 하신 일들을 하찮게 여기는 자들입니다(시 28:5 상).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그들이 마땅히 심판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시 28:5 하). 하나님의 공의란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입니다(롬 2:6). 비록 이 땅에서는 그 공의가 실현되지 않을 수 있지만, 마지막 날에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영원한 것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과 함께 영광과 존귀와 평화가 있을 것이고(롬 2:7, 10),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 진리를 거스르며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분노 그리고 환난과 고통이 임할 것입니다(롬 2:8, 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래서 모두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벧후 3:9). 하지만 그 기다림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그날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 속히 주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 하나님은 ‘힘과 방패’이십니다.
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히브리어에는 ‘힘’을 뜻하는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그중 본문에 사용된 ‘오즈(עֹז)’는 보통 외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출 15:2). 그리고 ‘방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겐(מָגֵן)’은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사용되는 방패를 가리키지만, 크기를 구분할 때는 작은 방패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친밀하고 개인적인 보호를 상징했습니다.
다윗은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시 28:6). 힘과 방패가 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환난에서 보호하시며 구원해 주실 것이라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음에도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라며, 이미 응답받은 것처럼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1:24)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다만, 그 응답이 우리가 기대하거나 원하는 방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유익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낙심하지 말고, 다윗처럼 응답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합니다(빌 4:6).
3. 하나님은 ‘구원의 요새’이십니다.
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시로다.” 여기서 ‘그들’은 주의 백성을,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다윗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윗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새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만들어 놓은 방어 시설이고, 다른 하나는 바위나 굴처럼 천연적으로 형성된 요새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요새는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장소라기보다 관계를 나타냅니다. 즉,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 곧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사실 인공 요새나 천연 요새는 다른 장소보다 안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두로라는 도시국가가 있습니다. 두로는 바다 위 섬과 해안 두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바다에 둘러싸인 섬은 천연 요새로 불릴 만큼 방어력이 탁월했습니다. 육지에서 약 800m 떨어져 있었고, 성벽의 높이는 45m가 넘었습니다. 기원전 586년, 유다를 점령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두로를 13년간 포위했지만, 해안 지역만 점령했을 뿐, 섬은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겔 29:18). 그러나 약 250년 후인 기원전 332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그 섬을 점령합니다. 그는 두로 해안 지역의 성들을 파괴하면서 나온 돌과 나무로 바다를 메워 방파제를 만든 뒤 공격했고(겔 26:12), 7개월 만에 두로를 함락시켰습니다. 두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바벨론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 그런 확신은 더욱 커졌겠지만, 결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견고한 요새라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이와는 달리 하나님은 완전한 요새요, 참된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피하는 자, 곧 그분을 의지하는 자는 그 보호 아래서 안전히 거할 수 있습니다(잠 18:10).
4. 하나님은 ‘목자’이십니다.
9절 말씀입니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목자이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시편 23편에서 자세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어리석고 약하며 길을 잘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이 목자에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기고 따르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약하지만 목자가 지켜주기에 안전하며, 목자의 뒤만 따라가기에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습니다. 혹 길을 잃는다 해도 목자가 반드시 찾아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과 같은 우리는 영혼의 목자이신 하나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요 10:9)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하시며,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그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그들을 영원토록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시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양이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목자를 의지하고 따를 때 안전과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목자이신 주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반석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주의 백성을 지키시며, 환난을 당할 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는 방패가 되십니다. 또한 어떤 요새보다 견고하게 우리를 구원하시며, 선한 목자로서 참된 평안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 낙심하지 말고, 다윗처럼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