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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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장 6절 ~ 16절 [개역개정]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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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당파 문제에 대해 결론을 지으면서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자신의 추종자나 바울파의 일원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울 자신의 삶을 본받으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자기 민족의 종교, 곧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일이 유대 신앙과 율법을 훼손한다고 판단했고, 그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없애려고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끌어다가 감옥으로 보냈습니다(행 8:3). 그것도 모자라 외국의 여러 도시에까지 가서 그들을 잡아 오려고 했습니다(행 26:11). 다메섹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대제사장 명의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행 9:4-6). 그 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다메섹을 시작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9:20-22).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아시아와 갈라디아, 아가야 등 여러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2차 선교여행 중에 세운 교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비밀,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고전 4:2). 바울뿐 아니라 베드로나 아볼로 역시 복음을 맡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역에 대한 평가는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하실 것입니다(고전 3:13). 그런데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사역자들을 평가했고, 그 결과 바울파니, 아볼로파니, 베드로파니 하는 당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들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판단받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고전 4:3). 그는 양심에 거리낌이 전혀 없다고 할 만큼 사역에 충실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사역과 관계된 것으로 ‘옳다 인정함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고후 10:8). 바울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사역에 충실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옳다고 인정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판단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어둠 속에 감춰진 것들을 환히 나타내시며 마음의 뜻, 곧 그 속에 있는 동기들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옳다 인정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고전 4:5 하; 고후 5:10).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에(행 1:24), 그가 어떤 동기로 일을 했는지 정확히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아무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고전 4:5 상).
이제까지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예로 들어 사역자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을 맡은 자들로서,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고전 3:8). 바울이 이렇게 사역자들에 대해 설명한 것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배워 서로 대적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고전 4:6). ‘기록된 말씀’이란 1장에서부터 지금까지 기록한 모든 교훈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든지,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 1:31) 함과 같은 교훈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세 가지 질문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교만을 지적하며 왜 교만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이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몸은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 역할이 다를 뿐, 쓸모없는 지체는 없습니다. 한때 맹장(충수 돌기)이 쓸모없는 기관이라고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맹장이 없어도 일상생활에 거의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맹장 없이 살 수 있다고 해서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맹장은 유익한 장내 세균을 저장하고 면역 체계 유지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모든 지체가 각자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생기고, 그로 인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으로(골 1:18),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고전 1:2). 그럼에도 교회 안에서 우열을 따지거나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난다는 행위입니다.
둘째,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어느 교회보다 은사와 지식이 풍성했는데, 이는 그들이 잘라서가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그들은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나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며, 가문 좋은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고전 1:26). 한 마디로 비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영적인 은사들을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럼에도 고린도 교인들은 마치 자신이 잘나서 그와 같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교만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의 분수를 모르고 설쳤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자랑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는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주셨는지를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을 자기 힘으로 얻은 것처럼 자랑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고전 4:8) 이는 그들의 영적 교만을 풍자한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이미 다 이룬 것처럼 그들의 교만은 극에 달했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가르침도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잘못된 생각과 태도를 일깨우기 위해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이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상기시킵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끄트머리에 두셨다’라는 것은 왕이 되었다고 자만하는 고린도 교인들과 달리, 사도들은 세상과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위치에 있음을 강조한 말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 4:11-13)
사실 바울은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행 22:28). 당시 로마의 세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그 시민권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상당한 명예와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행 22:25). 또한 그는 당대 최고의 스승이라 불리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에 대해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행 22:3), 바리새인으로서(빌 3:5)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고전 1:26).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런 것들을 자랑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오히려 해로 여겼습니다(빌 3:8). 그에게 로마의 시민권이나 세상의 학문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에 있었습니다. 이는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세상의 명예나 지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삶을 고린도 교인들이 배우고, 그들의 겸손을 통해 서로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해 온 일들은 보통 사람들이 하지 못할 위대한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들과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들을 잊기 원했습니다(빌 3:13). 좋지 않은 일이라면 당연히 잊어야 하겠지만, 바울이 한 일들은 존경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이러한 것들을 잊기 원한 이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과 앞으로 누리게 될 것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내세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 사람은 결코 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바울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의 삶을 본받아 늘 겸손하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