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운명을 좌우하는가
자신의 운명이 이름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름을 바꾸면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정말 이름에 의해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일까요?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가룟 유다'. '유다(Ἰουδάς [이우다스])'란 ‘찬송’ 혹은 ‘칭송 받는다’란 뜻인데, 신약에만 7명이 등장할 정도로 유대인에게 있어서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구분을 위해 이름 앞에 가룟(Iscariot)을 넣었는데, 이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가룟 유다의 부모는 자신의 아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든지, 아니면 사람들로부터 칭송 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든지, 아니면 둘 다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유다'라고 지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이름이 갖는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는 그 이름에 장래에 대한 부모의 소망을 담습니다.
유다는 처음에 부모가 바라는 대로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똑똑했으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때는 재정을 맡을 정도로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얻었습니다(요 12:6). 하지만 돈에 눈이 어두워진 유다는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 스승을 팔게 되었고(마 27:3),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마 27:5).
그런 유다를 가리켜 예수님께서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24). 유다는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다면 좋을 뻔한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반면에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야베스(יַעְבֵּץ [야베스])는 '고통' 혹은 '고통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그의 어머니가 임신기간 중 혹은 출산을 할 때 어떤 고통을 겪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일 수도 있고 심적인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고통'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1
유대인들은 이름이 갖는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는 그 이름에 장래에 대한 부모의 소망을 담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지었다는 것은 야베스의 어머니가 그에게 아무런 소망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가 되었습니다(대상 4:9).
이처럼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이름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름대로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름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비전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열정이 아닐까요.
· 이 글은 티스토리 '세상을 품은 참새'(2012.06.24)에 게시되었던 글입니다.
-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자녀의 이름을 보통 아버지가 지어줍니다*(마 1:25 ; 눅 1:62). 그런데 야베스는 그의 어머니가 지어 준 이름입니다(대상 4:9). 이로 보건대 야베스는 아버지가 없는 편모 가정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주로 할례를 행할 때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참고. 김남일 저.「우리가 궁금해 하는 29가지 구약 문화 이야기」경기: (주)살림출판사, 200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