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열왕들(2)
남 왕국 유다의 초대 왕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으로 그는 41세에 왕위에 올라 17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왕상 14:21). 다음으로 르호보암의 아들인 아비얌이 3년을 통치했고(왕상 15:1, 2), 그의 아들 아사가 뒤를 이어 4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왕하 15:9, 10). 아사는 왕위에 오른 후 종교개혁을 단행했는데, 심지어 그의 어머니(?)가 우상을 만들자 태후의 위를 폐하기까지 했습니다(왕하 15:12, 13). 1
아사 다음으로는 여호사밧이 25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왕상 22:41, 42 ; 대하 20:31). 그는 아합과 사돈 관계를 맺었으며(대하 18:1),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기도 했습니다(대하 20:35). 이로 인해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했던 배가 파선되었습니다(대하 20:37 ; 왕상 22:48).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여호람이 32세에 왕위에 올라 8년 2 동안 유다를 통치했습니다(왕하 8:17).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는데, 이는 아합의 딸과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왕하 8:18). 3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 역시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대하 22:3). 그는 22세에 왕이 되어 1년을 통치하다(왕하 8:26) 님시의 손자인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왕하 9:27 ; 대하 22:9). 4
아하시야가 죽자 아달랴가 왕족을 몰살시키고 왕위를 찬탈했습니다(왕하 11:1). 그러나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는 고모인 여호세바의 도움으로 죽임을 면합니다(왕하 11:2). 그로부터 7년째 되던 해 여호세바의 남편(대하 22:11)인 제사장 여호야다가 거사(擧事)를 일으켜 요아스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왕하 11:4-20). 이 때 요아스의 나이 7세였습니다(왕하 11:21).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는 동안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왕하 12:2)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으며(대하 24:18), 이를 책망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대하 24:20, 21). 그 해 말 아람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요아스는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합니다(대하 24:23-25). 5
요아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마샤는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간 유다를 통치했는데(왕하 14:1, 2), 그 역시 아버지처럼 반역의 무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왕하 14:19)
그의 아들 아사랴는 16세에 왕위에 올라 52년을 통치했습니다(왕하 15:2).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왕하 15:3) 세력이 강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져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 곧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직접 분향하려 했습니다(참조. 민 16:40 ; 대하 26:18). 이로 인해 아사랴는 나병에 걸려 죽었는데, 나병에 걸려있는 동안 그의 아들 요담이 나라를 통치했습니다(대하 26:21). 6
요담은 섭정기간을 포함해 16년 간 유다를 다스리면서(왕하 15:33 ; 대하 27:1)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왕하 15:34). 다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을 했습니다(왕하 15:35). 7
이런 일은 선왕 때에도 있었는데(왕상 15:14 ; 왕상 22:43 ; 왕하 15:4), 요담의 아들 아하스 때에 이르러서는 극에 달했습니다. 아하스가 앞장서서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을 했기 때문입니다(왕하 16:4). 뿐만 아니라 바알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대하 28:2)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까지 했습니다(왕하 16:3).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으로 하여금 유다를 치게 하셨는데(왕하 15:37), 그로 인해 수많은 유다 백성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대하 28:5-7). 그때 아하스는 이사야 선지자의 충고(사 7:3-9)를 무시하고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듯 했습니다(왕하 16:7-9). 하지만 에돔과 블레셋의 침공 때 재차 도움을 요청했다가 오히려 앗수르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대하 28:16-20).
아하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 동안 유다를 통치했습니다(왕하 18:2).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한 인물로 왕위에 오르자 무엇보다 먼저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아하스 때 더렵혀진 성전을 성결하게 했으며(대하 29:3-19), 산당을 비롯하여 여러 우상들을 제거했습니다. 그 중에는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민 21:3-9)도 있었는데, 유다 자손이 그때까지도 그것을 분향하고 있었습니다(왕하 18:4). 또 유월절을 지키는 등 여호와 신앙회복에 힘을 썼습니다(대하 30:1-27). 정치적으로는 반 앗수르 정책을 펼쳤는데(왕하 18:7), 당시 북이스라엘을 비롯해 지중해 동안의 국가들도 이 정책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왕하 17:4).
이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가 히스기야 재위 4년에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3년 만에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켰고(왕하 18:9, 10), 히스기야 왕 14년에는 사르곤 2세의 아들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해 라기스를 비롯한 유다 대부분의 성읍들을 점령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에게 사죄하며 그 대가로 조공을 바쳤지만(왕하 18:13-16)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산헤립이 다시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공격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왕하 18:17).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왕하 19:14-19). 아사 왕이 구스와의 전쟁에 앞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처럼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대하 14:11).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유다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왕하 19:35). 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는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기도 했습니다(왕하 20:1-6). 하지만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해져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으며(대하 32:25), 바벨론의 사절단이 방문했을 때는 왕궁과 나라 안에 있는 것을 다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부귀와 영화(참고. 대하 30:27-30)를 과시하려고 했습니다(왕하 20:12, 13). 이에 이사야 선지자가 책망을 하자 히스기야는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칩니다(왕하 20:16-19 ; 대하 32:26). 히스기야가 죽자 백성들은 그를 왕들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경의를 표했습니다(대하 32:33). 8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므낫세는 아버지와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그는 12세에 왕위에 올라 55년간 나라를 다스리면서(왕하 21:1)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 하늘의 일월성신 등을 숭배했으며 그것들을 위해 성전에 제단을 쌓기도 했습니다.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고, 점을 치며 사술을 행하는 등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했습니다(왕하 21:2-6). 한 마디로 므낫세는 유다판 아합이었습니다(왕하 21:3). 비록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겸손히 하나님을 찾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이후로 하나님을 섬겼지만(대하 33:11-16) 여전히 므낫세는 악한 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참고. 왕하 23:26 ; 렘 15:4).
므낫세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아몬은 아버지처럼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하다가 재위 2년 만에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합니다(왕하 21:19-23).
아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요시야가 8세에 왕이 되어 31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12년 째 되는 해에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산당을 비롯해 각종 우상들을 제거했으며(대하 34:3-7), 재위 18년에는 성전을 수리했습니다(왕하 22:3-6). 그리고 같은 해에 유월절을 지켰는데(왕하 23:23), 이스라엘 역사상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은 없었습니다(왕하 23:22 ; 대하 35:1-). 한마디로 요시야는 '포스트 다윗'이었습니다(왕하 22:2). 하지만 그는 판단 착오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왕하 23:29).
요시야 다음으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라 3개월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달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 애굽 왕 바로 느고에 의해 폐위되었고, 애굽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왕하 23:31-34). 9
바로 느고는 여호아하스 대신 그의 형인 엘리아김(대상 3:5)을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쳤습니다(왕하 23:34). 그는 11년 동안 나라를 통치하면서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렘 22:13),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으며(렘 22:17), 선지자 우리야를 죽이는 등(렘 26:20-23) 갖은 악행을 일삼았습니다(왕하 23:36, 37).
여호야김 재위 4년(BC 605, 렘 25:1)에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물리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렘 46:2) 2세는 유다를 침공하여 속국으로 만들고(왕하 24:1) 다니엘을 비롯해 젊은 왕족과 귀족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단 1:1-7). 10
3년 후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반기를 들자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 사람들로 구성된 부대를 보내 유다를 공격하게 했습니다(왕하 24:2). 하지만 별 진전이 없자 느부갓네살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습니다(BC 597, 왕하 24:10, 11). 당시 유다의 왕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었는데, 그는 18세에 왕위에 올라(왕하 24:8) 3개월 10일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대하 36:9). 그 역시 아버지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때 에스겔 선지자를 비롯해 1만 여명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14-16 ; 겔 1:2, 3). 1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여호야긴 대신 그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쳤습니다(왕하 24:17).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위에 올라 11년 동안 유다를 다스리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으며(왕하 24:18, 19),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렘 32:3)를 무시하기도 했습니다(대하 36:12). 백성들 역시 우상을 숭배하며 이를 경고하는 선지자들을 비웃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등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대하 36:14-16).
결국 유다는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고, 시드기야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었습니다(대하 36:17-2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