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다
이른 아침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총독 빌라도에게 제소(提訴)했다(마 27:1 ; 막 15:1 ; 요 18:28). 심문을 마친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판결을 내린 시각은 6시였다(요 19:14).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은 3시다(막 15:25). 이상하지 않은가? 사형 집행 시간이 판결 시간보다 앞서니 말이다.
이에 대해 마가는 유대의 시간 계산법으로, 요한은 로마식 시간 계산법을 따라 말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요한복음에 나오는 시간들은 유대의 시간법과는 다르다(요 1:39 ; 4:52]. 유대의 시간 계산법으로 3시는 오늘날의 오전 9시고, 6시는 정오正午다. 마태와 누가 역시 이 방법을 따르고 있다(마 27:45 ; 눅 23:44). 로마의 시간 계산법은 오늘날 시간 계산법과 같다. 1
만일 요한이 로마의 시간 계산법을 따르고 있다면,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시간 역시 이 방법을 따라 기록하지 않았을까?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마을에 이르신 예수께서는 긴 여정으로 인해 피곤하셨다. 그래서 야곱의 우물 곁에 앉으셨는데, 요한은 그 시각을 '여섯 시 쯤(ὡς ἕκτη [호스 헥테])'이라고 기록했다(요 4:6). 대부분의 한글성경은 이 '여섯 시'를 유대의 시간으로 보고 '정오'라고 번역했다(공동번역, 표준새번역, 현대인의성경 등). 팔레스타인 지역은 낮에는 햇볕이 뜨겁고 온도가 높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저녁에 물을 길렀다(창 24:11).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왜 이 시간에 왔을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그만큼 죄가 많은 여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2
하지만 요한이 로마식 시간을 따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마리아 여인이 죄가 많은 사람인지는 몰라도 그가 사람들의시선을 피하기 위해 정오에 물을 길으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섯 시가 오전인가 오후인가 하는 것이다. 수가에 오기 전 예수께서 계시던 곳은 유대였고(요 4:3), 예수께서 행로에 피곤하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수가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여섯 시는 오전이 아니라 오후였을 것이다.
· 이 글은 티스토리 '세상을 품은 참새'(2014.03.27) 게시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