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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술이 웬수다

2019. 9. 10.

술이 성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홍수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물론 술은 그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참조. 마 24:37 ; 눅 17:27). 홍수 이후 노아는 밭을 갈고 포도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발효시켜 포도주(wine)를 만들어 마셨다. 그런데 얼마나 마셨는지 인사불성이 되어 벌거벗은 채로 그의 장막에서 깊이 잠이 들어버렸다. 당세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창 6:9)라 칭송을 받았던 노아가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인간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이다.

Photo by  Terry Vlisidis  on  Unsplash

이 모습을 그의 작은 아들 함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의 두 형제 곧 셈과 야벳에게 알렸다.[각주:1] 그러자 셈과 야벳이 옷을 가지고 와서 어깨에 걸친 다음, 뒷걸음질로 장막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 드렸다. 그들은 함과 달리 얼굴을 돌려서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노아는 술이 깨었고,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게 되었다. 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누군가가 고자질 했겠지. 아니면 작은 아들이 떠벌리고 다녔던가. 어찌 되었든 노아는 작은 아들의 일로 인해 매우 화가 났다. 그래서 저주를 퍼붓는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창 9:25)

그런데, 이상하다. 함이 아니고 그의 아들(창 9:18)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다. 불경스러운 일은 아비가 저질렀는데, 왜 그 아들이 대신 저주를 받는가. 가나안이 할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처음 목격하고 그 사실을 아버지 함에게 고자질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아가 예언의 은사를 받아(?) 장차 가나안족이 징계를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가. 뭐 가나안이 함의 아들이니까 가나안의 저주가 곧 함의 저주나 마찬가지 아닐까.[각주:2] 어찌되었든 이 모든 것의 발단은 결국 술 때문이다. 그러니 술이 웬수다~

  1. 어떤 신학자들은 함이 그의 아버지 노아와 동성연애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본다'는 히브리어 동사 '라아(רָאָה)'가 성관계를 할 때 상대방의 몸을 본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김남일,「우리가 궁금해 하는 29가지 구약 문화 이야기」, p. 64) [본문으로]
  2. 함의 죄를 근친상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노아가 잠들어 있을 때 함이 그의 어머니와 성관계를 맺었고, 그를 통해 가나안이라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이다(Victor P. Hamilton,「모세오경」, p. 9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