ποιμέν칼럼

즙汁인가 주酒인가

갈릴리 가나에서 혼인잔치가 열렸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초대를 받고 잔치에 참석했는데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긴급 상황이 발생한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이에 마리아가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들과 관련된 일련의 일들 – 수태고지(눅 1:26-38), 목자들의 방문(눅 2:15-19) 등 - 을 떠올리며 그의 능력을 기대했으리라. 그리고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일렀다.

예수의 지시에 따라 하인들은 정결 예식에 사용되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다. 연회장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는 신랑을 불러 말한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요 2:10)

예수께서 행하신 이 첫 번째 표적에서 물이 변하여 된 것은 포도즙juice일까, 포도주wine일까. 요한은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를 '오이노스'라고 했다. '오이노스οἶνος'는 히브리어 '야인יָיִן'의 역어로, '발효된 술'로서의 포도주를 의미한다. 그런데 '야인'이나 '오이노스'라는 단어가 포도즙과 포도주의 의미를 다 포함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뒤 문맥을 고려하여 번역해야 하며, 여기에 '성서가 술을 금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창 14장에서 그리스도의 예표인 멜기세덱(히 5:6-10)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롬 4:11, 16)에게 준 '야인'은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으로 해석해야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예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만드신 '오이노스' 역시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술을 금하신 하나님께서 포도주를 만드실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술을 금하셨는가?

율법서에는 특정 사람(나실인, 민 6:3)이나 직무(제사장, 레 10:9)에 대해서만 금주령을 내렸을 뿐 금주에 관한 규정이 없다. 오히려 음주를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신 14:26). 혼인잔치에 술(포도주)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회장의 말에 의하면 혼인잔치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사람을 취하게 했다. 하나님께서 술을 금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취한 후’를 ‘충분히 마신 뒤’로 해석한다(한글킹제임스흠정역). 그러면 잔치에서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좋은 포도주란 어떤 것일까?

좋은 포도주란 오래 저장하여 잘 정제된well refined(KJV) 최상급 포도주the finest of wine(NIV)를 말한다(사 25:6).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세마포 천으로 깨끗하게 거른 포도즙 원액을 항아리에 담아 웅덩이 같은 곳에 보관했다가 결혼식 같은 잔치와 안식일 만찬에 사용했다.[각주:1] 포도는 당과 효모yeast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 담근 포도즙은 자연적으로 발효하여(마 9:17) 시간이 지날수록 알코올 성분으로 변한다.[각주:2] 이렇게 잘 정제된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고 취한 후에 질 낮은 포도주를 내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 추태를 보였는데 그가 술을 먹고 취하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하게 묘사되었다.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다’는 것이다(창 9:20. 21). 노아가 술을 만들어 먹은 것일까? 아니면 포도즙이 자연 발효되어 술이 된 것일까?[각주:3] 그렇다면 노아는 포도주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든지 포도주를 제조해 마신 최초의 사람이 된다.[각주:4] 고의든 실수든 무지든 노아는 포도주를 마셨고 그것은 노아를 취하게 했다. 당대에 완전한 자라 칭함 받은 노아(창 6:9)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하지만 다행(?)이도 책망은 없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오순절 제자들은 낮술에 취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자 사람들은 그들이 술주정을 하고 있다고 조롱한 것이다(행 2:13). 마치 한나가 속으로 기도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자 엘리 제사장이 그가 취한 줄로 오해를 한 것처럼(삼상 1:13). 이에 대해 베드로는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행 2:15)고 변명했다. 제 삼시는 오전 9시로 이 시간은 유대인들의 기도시간이었다. 아침 9시 그것도 기도하는 시간에 무슨 술을 마시겠냐는 항변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술을 금하셨다면 이런 변명은 궁색해 보인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만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당시의 만찬은 교인들이 각자 집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교회에 모여 공동식사를 하면서 이루어졌다(행 2:46).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사람들이 다 모이기도 전에 자기 것을 먼저 먹었고, 심지어 취한 사람까지 있었다(고전 11:21). 이 같은 행위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책망하면서 만찬의 참된 의미에 대해 설파했다. 그리고 주의 만찬에 임하는 자세와 주의를 당부한다(고전 11:20-34). 그런데 왜 술(취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것일까?

디모데전서 3장에 보면 교회 직분자의 자격에 대해 나오는데, 술에 대한 언급이 있다. 감독은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딤전 3:3), 집사는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딤전 3:8). '술을 즐기지 않는다'와 '술에 인박이지 않는다'는 말은 모두 '술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술은 분명 포도주를 가리킨다. 정말 하나님께서 술을 금하셨다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직분자들은 당연히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금주가여야 한다. 그렇다면 ‘술 취하지 아니하며’가 아니라 ‘술을 먹지 아니하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포도주를 금하지 않으신 이유는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 포도주가 술이 아닌 음료의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탈무드에 의하면, 포도주는 일반적으로 물을 타서 마셨는데 술 1에 물 3의 비율로 희석시켜 마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취하지 않을 정도의 술은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당시 이스라엘은 식수가 귀했기 때문에 부득이 포도주를 사용했을 것이다. 당시보다는 덜 하겠지만 지금도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나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도주를 물 대신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많은 유대인들이 생수를 마시고 있다.[각주:5] 따라서 오늘날 술은 갈증을 풀기 위한 음료로서가 아니라 육체의 쾌락을 위해 마시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존재이다. 육체의 쾌락이나 쫓아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잠언 기자의 말처럼 술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잠 23:31).

  1. 류모세,「열린다 성경 : 식물이야기」, (서울 : 두란노서원, 2012), p. 125. [본문으로]
  2. 「나무위키」, "포도주" 항목 ; "이석우의 와인 이야기(2)",「중앙시사매거진」201606호(2016. 05. 23) ; "와인이야기 : 성경속의 포도주"「아시아경제」(2018. 03. 16) 참조. [본문으로]
  3. 홍수 이전 시대에는 생태 환경적으로 발효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조덕영박사의 창조신학 : 의인 노아가 술에 취한 이유는",「크리스천투데이」(2012. 07. 12) 참조. [본문으로]
  4. Rabbi Zev Farber, "Noah's Original Identity : The First Winemaker",「The Torah(www.thetorah.com)」참조. [본문으로]
  5. 이스라엘문화원 홈페이지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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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