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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2022. 7. 21.

성경본문 보기

사무엘하 5장 1절 ~ 10절 [개역개정]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설교문 보기

사울에게는 아히노암과의 사이에서 난 네 명의 아들과 두 딸(삼상 14:48, 49 ; 대상 9:39) 그리고 리스바라는 첩에서 난 두 아들(삼하 21:8)이 있었습니다. 사울과 아히노암의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망했고, 이스보셋은 부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울의 가문은 이렇게 몰락을 했고 다윗은 비로소 온 이스라엘 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의 여정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1. 순종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가문이 몰락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결과였으며,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이유는 그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삼상 13:13 ; 15:23). 사울은 왕이 되기 전과 왕이 된 직후만 해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했고(삼상 9:21 ; 10:27 ; 11:5) 관용을 베풀 줄 알았으며(삼상 11:13)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삼상 11:9).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그는 불신앙의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사울의 불순종은 왕위에 오른 지 이 년쯤 되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이끄는 군대가 블레셋의 수비대를 치자 그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습니다. 그 규모가 병거가 삼만 대, 마병이 육천 명이었고, 일반 보병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습니다. 이에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면서 사무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일주일을 기다리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그 사이 백성들은 전의를 상실해 도망쳐 숨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남아있는 백성들 조차도 두려워 떨었습니다. 조급해진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 전에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를 사울이 직접 드렸는지 아니면 당시 제사장인 아히야(삼상 14:3)의 집례로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후자일 경우 제사를 드렸다는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지만 전자일 경우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에 관한 모든 일을 제사장이 주관하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울의 행위는 제사장의 직무를 침범하는 월권행위였으며,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남 유다의 열 번째 왕이었던 웃시야는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하려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나병환자가 된 적도 있습니다(대하 26:16-21). 어는 쪽이든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고 이는 망령된 행동 곧 해서는 안 될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삼상 13:13). 그 결과 사울 왕조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삼상 13:14).

이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받습니다. 이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에 대한 징계였습니다(삼상 15:2, 3).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아왔으며, 가축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남겨두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사울은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함’이라고 했지만(삼상 15:15, 21) 변명에 불과했습니다. 사실은 백성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삼상 15:24). 백성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삼상 15:30).

이에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하면서 사울을 책망했습니다(삼상 15:22, 23).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더 기쁘게 여기시는 것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죄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전 5:1) 이 말씀을 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제물을 바치는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제사도 제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듣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솨마(명령형 쉐마)인데, 이 단어는 '경청하다'와 '순종하다'는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는 이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번역을 하거나 두 단어를 합쳐서 '청종(하다)'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르는 대로 잘 듣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 위해서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사울이 처음에 가졌던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마음,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늘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갑니다(고전 10:31).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다윗은 죄를 범했을 때 자신을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기를 간구했습니다(시 51:11). 우리의 삶이 사울과 같은 불순종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며 늘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2. 공의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를 틈타 군지휘관이었던 두 사람 곧 바아나와 레갑이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가지고 헤브론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가서 머리를 바치며 '오늘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후손들에게 갚으셨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이스보셋을 죽여 놓고 그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수를 자신들의 손을 빌려 갚은 것인 양 포장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윗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전에 그런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준 아말렉 사람입니다. 그는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다윗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을 했고, 그를 통해 보상을 받으려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상급은 고사하고 오히려 죽임을 당합니다(삼하 1:15). 다윗은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스보셋을 죽인 두 사람을 처형했습니다(4:10, 12). 그들의 죄명은 '악인의 피흘린 죄'였습니다(4:11). 바아나와 레갑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린 악한 자들이었으므로 율법에 따라 그들 역시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신 19:13). 이처럼 다윗은 모든 일을 공의에 입각하여 행했습니다(삼하 8:15).

사실 사울의 죽음이나 그의 아들 이스보셋의 죽음은 다윗에게는 유리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죽음으로 다윗은 반대 세력이 없이 쉽게 이스라엘의 왕권을 확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죽음도, 이스보셋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았고, 오직 공의와 정의를 행하기 위해 힘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암 5:24).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찬송을 받지 않고 듣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암 5:23). 삶이 예배가 되지 않으면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며, 찬송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며 언제나 공의와 정의를 행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3. 인내

다윗은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왕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고 여러 차례 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 왕위에 올랐지만 유다 지파 사람들만 인정하는 반쪽짜리 왕이었습니다. 더 이상 사울에게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되었지만 안심할 때는 아니었습니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임으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데 큰 차질이 생길 뻔했습니다. 이 모든 위기를 넘기고 비로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다윗의 통치 기간은 유다 족속의 왕으로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온 이스라엘 지파의 왕으로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 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다윗이 몇 살 때 기름부음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삼상 16:13) 그 때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기까지 이십 년 정도 지났다고 봅니다. 이 시간이 어떻게 보면 길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다윗이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연단의 기간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연단의 시간들이 있었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끈 모세도 연단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였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힘든 순간들을 잘 참고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낸다'고 하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약 1:4). 끝까지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온전하고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래 참고 견딘 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는 약속(히 6:14 ; 창 22:17)을 받았다고 했습니다(히 6:15). 인내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욥입니다. 그는 고난을 받을 때 인내했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약 5:11). 그러므로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믿음과 안내를 가지고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소망이 있습니다(롬 5: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그의 가문이 몰락한 것은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삼상 13:13 ; 15:23).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는데,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했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은 어렵고 힘들 때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 2)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환란을 믿음으로 인내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려고 힘썼습니다. 다윗은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지키려고 힘쓴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5:5). 그런 다윗에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셨고 다윗은 점점 강성하여 갔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모든 환란을 믿음과 인내로 이겨내야 합니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언제나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그런 자들을 미련하다고 어리석다고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기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