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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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14절 ~ 22절 [개역개정]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에서 가르치신 후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눅 4:31, 38). 그때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는데, 의사인 누가에 의하면 그녀는 위중한 상태였습니다(눅 4:38).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녀를 위해 도움을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손을 만지시며(마 8:15)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눅 4:39). 그러자 즉시 열병이 사라지고 베드로의 장모는 일어나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날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들을 비롯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안식일에는 일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병자의 생명이 위급하지 않은 한 병을 고치기 위한 어떠한 치료나 환자를 옮기는 일 등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요 5:10).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루는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 질 때까지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루를 계산합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해질 무렵 즉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눅 4:40). 마태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하신 말씀 곧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8:17 ; 사 53:4).
일본 면역학의 대가로 알려진 아보 도오루 박사는 '사람이 병에 걸리는 단 2가지 원인'이라는 책을 통해 인간이 병에 걸리는 이유는 저체온, 저산소 2가지 때문이며, 이는 과로나 스트레스, 수면부족 등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가 주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질병의 원인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물질적 요인들에 의한 질병과 영적 요인들에 의한 질병입니다.
딤전 5장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의 병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근동 지방의 물은 지역 특성상 대개 세균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마실 경우 위장장애를 일으킬 위험이 높았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도주에 물을 섞어 마셨는데, 디모데는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물만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위장병이 생긴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기능성] 위장장애로 보기도 합니다.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고(딤전 1:3) 그 과정에서 생겨난 스트레스로 위장병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긴 것일 수도 있는데, 어찌 됐든 이는 물질적 요인들에 의한 질병입니다.
이와는 달리 영적인 것과 관련된 질병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귀신 들림입니다. 귀신이 들려 눈이 멀고 말을 못하거나 허리가 굽는 경우, 간질 등 성경에 나오는 질병 가운데 상당 부분이 귀신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마 9:32 ; 12:22 ; 17:15, 18 ; 막 9:25 ; 눅 13:11).
또 죄로 인해 질병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에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셨고(요 5:14), 야고보서에도 질병의 원인이 죄일 수 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약 5:15). 사도 바울에게도 질병이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경우입니다. 바울이 앓고 있던 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상당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하나님께 세 번 간구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받은 계시가 너무나 크고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질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물질적 요인들에 의한 질병뿐만 아니라 영적인 요인들에 의한 질병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모든 질병의 원인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최초의 사람 아담이 범죄한 때로부터 죄가 들어왔고(롬 5:12) 병과 죽음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와 그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들을 비롯해 온갖 병자들을 고쳐주시자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때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당시 서기관은 율법학자로서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대부분의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한 것과는 달리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겠다고 한 서기관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떤 희생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답 속에서 왜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려고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랍비, 선생이었습니다. 반면에 율법교사였던 서기관들은 전혀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확대 해석해서 아주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35:3)는 계명을 확대 해석해서 사람이 아파도 생명이 위독하지 않는 한 안식일에는 치료할 수 없도록 했고(눅 6:6-11 ; 요 5:9, 10, 16, 18), 물건을 옮기는 것도 금했습니다. 베데스다 못에서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자 유대인들이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상에 누인 채 운반하는 것은 괜찮지만 상만 운반하는 것은 노동으로 간주되었습니다(요 5:10). 반면에 자신들은 이런 규정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여러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마 23:3, 4). 그러니 서기관들이 백성들로부터 인기가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사역 초기라 예수님을 반대하는 세력도 없었습니다. 서기관은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 영광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심으로 자신을 따르는 것이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임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래도 따르겠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려는 자들에게 먼저 잘 생각해 보고 판단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눅 14:28-30) 건물을 짓기 전에 먼저 할 일은 공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계산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정으로 건축을 시작해도 될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건축을 시작했다가 완성하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역시 많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그 비용은 자기의 모든 소유입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어쩌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비용으로 지불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요즘 자주 부르는 찬양 중에 '선한 능력으로'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 나치운동을 하다 투옥된 본 회퍼 목사님이 죽음을 앞두고 감옥에서 쓴 편지에 곡을 붙인 찬양이라고 합니다. 본 회퍼 목사님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로 부르신 것은 죽으라고 부르신 것"이라고 했습니다(참조. 마 16:24).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따랐지만 그들 모두가 제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단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을 바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기꺼이 희생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본문 21절과 22절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자녀가 자기 부모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출 20:12 ; 신 27:16).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 즉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는 부모를 장사지내는 일이 우선적인 일이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보다 우선적인 일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가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신앙의 최우선 순위일 수는 없다는 것으로 그런 각오가 없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복음보다는 음식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처럼 신앙적인 이유보다는 어떤 이익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으면 결국 예수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