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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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9절 ~ 13절 [개역개정]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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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 열두 명을 따로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칭하셨습니다(눅 6:13).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마 10:5). 이들 열두 명을 가리켜 열두 사도(마 10:2) 혹은 열두 제자(마 10:1)라 부릅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세 명이고 그중에서 복음서를 기록한 사도는 요한을 비롯해 본문에 등장하는 마태입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으로, 본명은 레위입니다(눅 5:27). 마가는 레위인 마태를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막 2:14). 열두 제자 중에 알패오의 아들이 또 있는데 그는 야고보입니다(마 10:3).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작은 야고보로 불리기도 합니다(막 15:40). 마태의 부친 알패오를 작은 야고보의 부친 알패오와 같은 사람으로 보기도 하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만일 동일 인물이라면 마태와 작은 야고보는 형제입니다. 열두 제자 중에 베드로와 안드레(요 1:40)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마 4:21)도 형제입니다.
마태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막 2:14). 당시 세리는 일반세금을 징수하는 '갑바이'와 세관에서 통행세나 통관세를 거둬들이는 '목케사'로 구분되었는데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던 것으로 보아 '목케사'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세리는 곰이나 사자, 뱀처럼 위험한 존재였고 이방인이나 창기처럼 부정한 자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성전을 출입하는 것과 헌금하는 일도 거부되었습니다(마 21:31 ; 신 23:18).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는 세금을 효율적으로 징수하기 위해 그 권한을 경매에 붙였습니다. 이 경매는 해당 지역 주민들만 입찰할 수 있었고 당연히 최고 높은 금액을 부른 자에게 낙찰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경매를 통해 세금 징수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은 실무자를 고용해서 일을 맡겼는데 이들이 바로 세리입니다. 그들이 세금을 징수하는 과정에서 정한세보다 더 걷거나(눅 3:12) 속여 빼앗는 일도 있었습니다(19:8). 그래서 세리를 '허가 낸 도둑'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세리를 민족의 반역자나 약탈자라 비난을 했고 그들과 어울리는 사람들마저 배척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 특히 바리새인들로부터 반감을 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기 때문이었습니다(마 11:19 ; 눅 7:34).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를 당시 그는 가버나움의 세관에 있었습니다(막 2:14). 가버나움은 로마 군대가 상주해 있을 정도로(눅 7:1~10) 매우 중요한 도시였는데요, 특히 북쪽으로는 수리아, 남쪽으로는 유대와 이집트로 갈 수 있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외국 상인들의 출입이 빈번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통관 업무를 보려면 외국어 한 두 개 정도는 해야 했을 것이고(요 19:20) 셈에도 밝아야 했습니다. 이로 볼 때 마태는 실력있는 인재였습니다. 그런 마태가 "나를 따르라"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눅 5:28). 부가 보장되었던 안정된 직업이었지만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마태는 세리라는 직업에 부담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비록 돈이 있어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겠지만 민족의 반역자란 소리를 들어야 했고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성전 출입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또 친구라고는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세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마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배척했던 자신을 찾아오신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제자까지 삼으시니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레위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마태로 바꾸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제자들을 대표하는 열두 사도입니다. 마가나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열 두 사도를 열거할 때 그냥 마태라고만 했습니다(막 3:18 ; 눅 6:15 ; 행 1:13). 그런데 마태 자신은 그 앞에 세리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마 10:3). 자신이 세리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의 결점이나 약점, 부끄러움 등을 나타내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 세리였던 것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마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그들과 구별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마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레위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막 2:14 ; 눅 5:27). 그럼에도 마태가 자신이 과거 세리였음을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요? 13절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드시느냐"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 또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율법을 어기는 것이요(행 10:28), 자신을 더럽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들을 구원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임무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으며(롬 3:10), 그러기에 모두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지만 바리새인들처럼 스스로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9:13)고 따끔하게 질책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성경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 지키고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하나님의 뜻은 외면한 채 형식적인 의식에만 치중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위선자, 마 15:7 ; 22:18 etc.)요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3:27).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이 죄인 취급했던 사람들에게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마태가 자신이 세리였음을 당당히 밝힐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같은 사람까지도, 다른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멸시하고 비난하는 자신까지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자랑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누구나 다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개와 원숭이처럼 사이가 좋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세리 마태와 셀롯인 시몬입니다(행 1:13). '셀롯인'이란 ‘열심당원’이란 뜻으로, 무장독립단체였던 열심당의 일원을 말합니다. 이들은 로마사람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동조하는 유대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했는데 시몬이 이 단체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 같으면 열심당원이 길에서 세리를 만났으면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둘 사이에는 더 이상 어떤 악감정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세리와 열심당원 사이가 아닌 모두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볼 때 비주류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대부분 어부 출신으로 제대로 배우지 못한 보잘것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고(행 4:13), 세리처럼 민족의 반역자로 비난받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실 교회가 그런 곳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성격도 제각기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마치 우리의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한 몸인 것처럼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고전 12:27). 그러므로 많이 배웠다고 혹은 많이 가졌다고 잘난 체하거나 으스댈 필요도 없고, 못 배웠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고전 6:20)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서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