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그리고 셀롯인 시몬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10장 1절 ~ 4절 [개역개정]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설교문 보기
열 두 사도는 이름이 언급된 순서에 따라 네 명씩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항상 제일 먼저 언급되는 시몬 베드로를 비롯해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첫 그룹입니다. 베드로를 제외하고 언급된 순서가 바뀌긴 하지만 언제나 첫 네 명에 포함이 됩니다. 두 번째 그룹은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입니다. 빌립은 두 번째 그룹에서 항상 첫 번째로 언급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순서가 바뀝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입니다. 야고보 역시 세 번째 그룹에서 항상 먼저 언급이 되고 가룟 유다는 언제나 마지막입니다. 그동안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룹의 사도들에 살펴보았고 이 시간에는 세 번째 그룹 중에서 가룟 유다를 제외한 세 사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그리고 셀롯인 시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야고보
열 두 사도 가운데 야고보란 이름을 가진 사도가 둘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구약의 야곱과 같은 이름으로 '발꿈치를 잡음'(창 25:26)이란 뜻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게는 '작은 야고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막 15:40),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사도들의 명단에서 항상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보다 뒤에 언급되었기 때문으로 보기도 하고(막 3:17, 18 ; 마 10:2, 3 ; 눅 6:14, 15 ; 행 1:13),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보다 나이가 적거나 키가 작아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도 합니다.
알패오의 아들이 또 있는데 그는 세리였던 마태입니다. 그의 본명은 레위인데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후에 마태로 개명했을 것으로 보입니다(막 2:14 ; 눅 5:27). 만일 야고보의 아버지 알패오가 마태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면 야고보와 마태는 형제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작은 야고보에 대한 특별한 행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지 열 두 사도 명단에 언급되었을 뿐입니다. 그것도 열 두 사도 중 항상 아홉 번째에 언급이 되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2. 다대오
다대오의 본명은 '찬송'이란 뜻의 '유다'입니다. 열 두 사도 중에 유다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다대오를 가룟 유다와 구분하기 위해 '가룟인 아닌 유다'로(요 14:22), 누가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기록을 했습니다(눅 6:16 ; 행 1:13). 그런데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번역한 부분을 헬라어 원문으로 직역하면 '야고보의 유다'이기 때문에 다대오가 야고보의 아들인지 혹은 야고보의 형제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경[번역본]은 야고보의 아들로 번역을 했는데, 야고의 형제로 번역한 성경[KJV]도 있습니다. 한 사본[베자]에는 '다대오라는 별명을 가진 렙배오'로 되어 있어서 다대오는 본명인 유다 외에 렙배오라는 이름까지 모두 세 가지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대오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요 14:22)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줄 왕국을 건설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 중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 하는 서열 문제로 종종 다투기도 했습니다(막 9:34).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열렬히 환호하는 군중들에 둘러싸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제자들의 기대는 최고조에 달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스라엘을 통치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나타낼 것이며, 그들과 거처를 함께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4:21, 23).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의 말을 지킬 것이고, 그런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먹고 배부른 까닭에 있었습니다(요 6:26). 오병이어 사건을 말하는 것이죠.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 메시아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단지 먹을 것을 위해 세상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고 하시자 사람들은 말씀이 어렵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요 6:60). 오늘날에도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에 이끌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어려움이 오거나 목적이 달성되지 않으면 아무 미련 없이 예수님을 떠날 것입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명의 사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시자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하면서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다대오는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도 하고,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3. 가나나인 혹은 가나안인 시몬
'가나나인'은 가나안 지방 출신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셀롯인(Zelotes)'(눅 6:15 ; 행 1:13) 즉 '열심당원'이란 뜻입니다. 열심당은 A. D. 6년 갈릴리 사람 유다가 조직한 무장독립단체로 알려져 있는데(행 5:37), 이들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했으며 로마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동조하는 유대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했다고 합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이 단체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열심당원이었던 시몬이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단지 열 두 사도 가운데 같은 이름을 가진 시몬 베드로와 구분하기 위해 가나나인 혹은 셀롯인으로만 언급될 뿐 그에 대한 어떤 기록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시몬은 예수님이 로마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로 생각을 했고 그분을 통해 자신이 평소 꿈꿔왔던 이스라엘의 해방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다가 사도로 선택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동행을 하면서 그의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오신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자신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열심당원이었습니다. 단지 열심의 대상이 이 세상의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열심당원이 된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시몬은 톱으로 몸이 잘렸거나 십자가 처형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열 두 사도 중에는 시몬 베드로나 사도 요한처럼 유명한 사람들도 있지만 작은 야고보와 다대오 그리고 열심당원 시몬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제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성실과 인내로 맡은 바 사명을 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처럼 열심당원 시몬도 새 예루살렘의 성벽에 있는 열 두 기초석에 이름이 새겨졌고(계 21:14),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 사도 요한이나 다대오나 모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마 19:28 ;눅 22:30).
사실 하나님의 사역은 베드로와 요한, 주의 형제 야고보, 바울처럼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작은 일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져 왔습니다. 자기가 먹을 점심을 기꺼이 내놓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소년이 있었고(요 6:9), 최후의 만찬을 위해 다락방을 마련해 준 사람도 있었고(막 14:1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타고 가신 나귀를 제공한 사람도 있었습니다(마 21:1-).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그리고 가나나인 시몬. 그들은 베드로나 요한처럼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처럼 성실과 인내로 맡은 바 사명을 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맡겨진 일들에 충성할 때(고전 4:2)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명예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