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예음TV/주일예배설교 2022. 7. 24.
성경본문 보기

사무엘하 8장 1절 ~ 6절 [개역개정]
1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4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5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윗은 수십 년 간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궤를 시행착오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궤를 모실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을 먹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고 대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7:12, 13). 비록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는 그 마음만은 기쁘게 받으셨습니다(대하 6:8). 그리고 다윗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다윗 왕조의 번영에 대한 언약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다윗은 그동안 점령하지 못했던 블레셋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주변국가를 정복해 나갑니다.

먼저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았습니다. 메덱암마는 '모성의 굴레'란 뜻으로 블레셋의 중심 도시인 가드와 그 주변 성읍들을 가리키는 용어였습니다(대상 18:1). 블레셋은 가드를 비롯해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사 등 다섯 부족의 연합국가로(수 13:3) 중심 부족인 가드를 점령했다는 것은 블레셋을 완전히 정복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5:18-21). 하지만 블레셋을 비롯해 여부스 족속 등은 사울 왕 때까지 정복되지 않고 남아있었습니다. 특히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부터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대표적인 민족이었는데(삿 10:7 ; 13:1 ; 삼상 4-7), 다윗 왕 때 이르러 비로서 여부스(삼하 5:7)와 블레셋을 완전 정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람과 모압, 암몬, 아말렉 등 주변 민족들을 정복하고 조공을 바치게 함으로써(8:2, 6) 다윗의 통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 약속하신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확장되었습니다(창 15:18).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어디를 가든지 승리토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본문의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4절에 다윗은 아람의 소바 왕 하닷에셀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빼앗은 병거 가운데 백 대의 말을 제외한 나머지 말들은 모두 발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대상 18장에 의하면 빼앗은 병거가 천 대였습니다. 그 천 대의 병거 중 백 대의 말을 제외한 나머지 말들은 모두 발의 힘줄을 끊어버려 군마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왕이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라”(신 17:16)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 즉 선지자나 사사에 의해 통치되는 신정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후에 왕이 다스리는 왕정 국가로 바뀌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미리 아시고 모세로 하여금 왕에 관한 규례를 정하게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왕이 많이 두지 말아야 할 세 가지 규례가 있습니다. 말과 아내 그리고 은과 금입니다(신 17:16). 말을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강한 군사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왕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군사력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예 말을 많이 두지 못하도록 금한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병거 백 대의 말만 남기고 모두 발의 힘줄을 끊은 것은 군사력이 아닌 하나님만을 자신의 도움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전임 왕이었던 사울과 비교됩니다. 사울은 왕위에 오르기 전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길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5:17). 사울은 왕위에 오른 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방에 있는 적들과 싸워 가는 곳마다 승리를 했습니다(삼상 14:47). 하지만 점점 불신앙의 사람으로 변해 갔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대상 10:14)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으며, 하나님의 명령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삼상 15:24). 이는 믿음보다 현실을,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우선시 한 결과였습니다. 사울과 달리 다윗은 늘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현실보다 믿음을,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는 그런 다윗으로 하여금 어디를 가든지 이기도록 하셨고, 무엇을 하든지 형통케 하셨습니다(참조. 왕상 2:2).

2.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을 가졌지만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대신 그의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도록 하셨습니다(삼하 7:13). 이때는 솔로몬이 태어나기도 전이었습니다(대상 22:9). 솔로몬은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등극했는데, 그가 몇 살때 왕위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20세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비록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아들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다윗은 아람의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빼앗은 금 방패와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빼앗은 놋을 하나님께 드렸고, 하맛 왕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통해 보낸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 그리고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과 금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8:10-12). 대상 22장에는 다윗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 드린 금이 십만 달란트였고, 은이 백만 달란트 그리고 놋과 철은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많았으며 그 외에도 많은 재목과 돌을 준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22:14).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하나님께 드린 것 외에도 각 지파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드린 예물도 많았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자원하여 성심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대상 29:1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이 제작되었습니다(출 19:2). 그 비용이 출 38장에 기록되어 있는데(24-29)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수 백억 정도라고 합니다. 백성들은 이 많은 재료들을 언제 준비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창 15:13, 14). 그리고 이집트에 거주한 지 430년 만에 출애굽을 하게 되는데(출 12:40), 그때 백성들은 모세가 지시한대로 이집트 사람들에게 금은 패물과 의복을 달라고 해서 가지고 나왔습니다(출 12:35, 3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성막에 필요한 재료들을 갖고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것을 성막을 짓는데 자원하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드렸습니다(출 35:21-29). 그 당시 백성들도 다윗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다윗은 직접 성전을 건축하지는 못했지만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힘을 다해 재료들을 준비했습니다(대상 29:2). 그만큼 다윗은 자신이 고백한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대상 29:3). 이는 성전의 건물이 아니라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의미입니다(시 27:4). 하나님께서 거하시지 않는다면 그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 그냥 건물에 불과할 뿐입니다(렘 7:4). 신약에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며(딤전 3:15) 성도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모인 곳이고(고전 1:2) 그들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고전 3:16). 아무리 겉모습이 화려해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성전이 될 수 없고, 아무리 모임이 거창해도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다윗은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습니다.

15절에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백성을 공평하게 다스렸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하라"고 하셨습니다(레 19:15). 송사의 당사자가 가난하다고 해서 부당하게 대우하거나 그를 두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힘있는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공정하게 재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 있는 사람은 죄가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죄가 있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말이 나올 정도로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세상의 권력이 없는 자보다 가진 자의 편에 서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지도자들을 향해 입을 열 때마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었습니다(사 16:5 ; 렘 22:3 ; 겔 45:9 ; 호 10:12 ; 암 5:24). 이것은 이스라엘이 전혀 공의롭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뇌물과 선물받기를 좋아하고 돈없고 힘없는 고아나 과부의 송사는 받아 주지도 않았습니다(사 1:23). 또 그들은 뇌물을 받고 범죄한 사람을 놓아 주며 죄 없는 사람을 옥에 가두었습니다(사 5:23).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정의와 공의를 멀리한 채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했습니다(사 1:23). 지도자들이 그러니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사 1:10). 소돔과 고모라는 악과 타락을 상징하는 도시이고 영원한 불로 심판을 받아 훗날 경건치 않은 사람들에 대한 본보기로 삼으신 도시인데(벧후 2:6 ; 유 7), 이스라엘이 그들과 같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보여줍니다(겔 16:47).

잠언 기자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다고 했습니다(잠 2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사실 특별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입니다.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장차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룩될 하나님의 나라와 의로운 통치를 예표해 주고 있습니다(시 45:6, 7 렘 33: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그의 생애 가운데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승리를 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신 결과였습니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않았습니다(왕상 15:5). 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백성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베풀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달리 늘 하나님께 여쭈었고 자기 소견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행동을 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으며,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습니다. 암담한 현실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졌고,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 아니라 그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으로 하여금 어디를 가든지 이기도록 하셨고, 무엇을 하든지 형통케 하셨습니다(참조. 왕상 2:2).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기를 원합니다. 항상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 하나니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다윗의 생애를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