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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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16절 ~ 23절 [개역개정]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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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 열둘을 택하시어 사도라 칭하시고(눅 6:13),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각 마을로 보내시며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마치 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이 큰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양은 성격이 매우 온순한 초식동물로 어리석고 길을 잘 잃어버립니다(사 53:6). 반면에 이리는 늑대라고도 하며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사납고 잔인한 동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이리는 항상 양과 연결되어 언급되는데 이는 늑대가 양의 최대 천적인 까닭입니다(요 10:1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고 하신 것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인해 큰 위협이나 박해를 받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마 10:17). 그때 제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해야 할까요?
1. 뱀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뱀은 성경에 이름이 처음 언급된 동물로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했습니다(창 3:1) '간교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룸(עָרוּם)'은 '간사한, 교활한, 슬기로운, 신중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간사한, 교활한'의 뜻이 되고, 긍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슬기로운, 신중한'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뱀이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뱀은 자신이 처한 위험에서 능수능란하게 빠져나오는 짐승입니다. 따라서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을 만났을 때 지혜롭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어느 동네에서 박해를 받으면 다른 동네로 피하는 것입니다(마 10:23).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위험에 처하면 종종 다른 지역으로 피신을 했습니다(행 9:25 ; 14:6). 또 사람들을 조심하는 것입니다(마 10:17).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을 경계하며,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유혹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비난받지 않도록 말과 행실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골 4:5, 6).
상황에 따라 어떤 말을 해야 하고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러한 지혜는 말씀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딤후 3:15). 또한 지혜는 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우리가 비록 양처럼 힘이 없고 연약하여 늘 이리의 표적이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지혜롭게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새입니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은 아마 노아의 홍수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둘기는 순결을 상징하는 새이기도 한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비둘기는 영어로 dove 혹은 pigeon이라고 합니다. dove는 주로 작고 흰 비둘기를 말하고, pigeon은 dove보다 크고 회색인 비둘기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흔히 공원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비둘기가 바로 pigeon입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에서 비둘기(헬, περιστερά)를 대부분의 영역본에서는 dove로 번역을 했습니다. 성경에서 흰색은 '순결'을 상징하는데(사 1:18 ; 계 3:5 ; 7:13), 비둘기가 순결의 상징이 된 것은 비둘기(dove)의 색깔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 비둘기는 한번 인연을 맺으면 배신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정한 연인을 보면 '비둘기처럼 다정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비둘기가 순결의 상징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에 비추어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을 이해하면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는 순결함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비둘기가 순결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비둘기가 아니라 바로 순결이기 때문입니다.
양이 이리 가운데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순결이 없는 지혜는 간교함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어떤 방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핍박이 오면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해 버리기 쉽습니다. 반면에 지혜가 없는 순결은 어리석음이 되어버립니다. 비둘기를 평화의 새요, 순결을 상징하는 새라고 하니까 참 멋진 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양처럼 어리석어 쉽게 속는 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비둘기 같이 어리석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호 7:11).
이처럼 지혜와 순결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지혜와 순결을 잘 조화시켜 23절의 말씀처럼 할 수만 있으면 지혜롭게 어려움이나 핍박을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순결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핍박을 피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거나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자신이 세상의 주와 하나님이며 사람들에게 그렇게 부르도록 강요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님만을 주로 시인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심한 박해와 고난을 겪었고 이를 피하여 광야나 산 혹은 굴속으로 피신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굶주림과 병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히 11:35-38). 데키우스 황제 시대에는 황제에게 경배한 사람들에게 옥새가 찍힌 증명서를 발급해서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매매를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는 계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라는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이런 것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당시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이런 고난을 각오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 속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한 순결을 지켰습니다.
3.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나 서민 출신으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령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 앞에서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십니다(마 10:19, 20).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생각과 힘으로 그것을 처리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상황과 때에 맞는 가장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때에 맞는 적절한 말은 어려운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필요합니다. 잠언 25:11에 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라고 했습니다. 아로새긴 쟁반은 당시 상당히 가치 있는 물건으로 경우에 합당한 말을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로 표현한 것은 시기적절한 말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지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책망도 마찬가지입니다. 12절에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책망할 때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신중하고도 지혜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그 책망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반면에 강압적인 태도로 책망을 하면 추운 날 옷을 벗긴 것과 같이 상대방에게 심한 모욕과 조롱을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은 것처럼 상대방을 화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25:20).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과 때에 맞는 가장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없고 온순한 양이 포악한 이리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순결이 없는 지혜는 교활함이 되어버리고 지혜가 없는 순결은 어리석음이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롭게 신앙생활을 하되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순결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지혜롭게 어려움이나 핍박을 피해야 하지만 그것을 피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거나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지는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