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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을 베풀리라

예음TV/주일예배설교 2022. 8. 18.

 

성경본문 보기

사무엘하 9장 1절 ~ 8절 [개역개정]
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3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4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5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6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7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설교문 보기

삼하 9장과 10장은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과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 은총을 베푸는 장면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사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전형적인 삶을 보여준 다윗과 마길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요나단과 이스위, 말기수아 그리고 에스바알입니다(삼상 14:49). 이스위는 아비나답으로 불리기도 합니다(대상 8:33 ; 9:39). 요나단은 맏아들로 아버지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니라 다윗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삼상 23:17). 요나단은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다윗을 보고는 마음이 끌려 그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게 되었고(삼상 18:1) 그와 의형제를 맺습니다(대상 18:3). 후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다고 하면서 그와 언약을 맺는데, 이 언약은 요나단 자신과 그 집안의 안전 보장을 내용으로 합니다(삼상 20:13-15). 고대에는 왕조가 바뀌면 이전 왕조의 가족들을 몰살시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삼하 19:28; 왕상 15:29 ; 16:11).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이 왕권을 차지하더라도 자신을 죽이지 말 것과 자신의 집에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부탁했고 다윗은 그렇게 하기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습니다(삼상 20:42).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고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그는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다윗은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다윗이 통합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과 그의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 말기수아는 블레셋의 전투에서 죽었고(대상 10:2), 막내 이스보셋은 그의 부하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삼하 4:5-7). 이제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밖에 없었습니다.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모두 절었는데, 그가 다섯 살 때 사울과 요다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모가 그를 안고 급히 도망하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삼하 4:4). 므비보셋의 원래 이름은 므립바알이었습니다(대상 8:34).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이 마길의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게 했습니다. 이에 므비보셋이 와서 다윗에게 엎드려 절을 하자 다윗은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보통 왕조가 바뀌면 전임 왕조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관례였고 므비보셋도 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고 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를 안심시키려고 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은총은 히브리어로 '헤쎄드(חֵסֵד)'인데,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이나 사랑'을 말하며(라이프성경사전), 은혜 혹은 자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선대한 것은 요나단과의 언약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사울에게 위협을 받을 때 적극적으로 그를 변호했고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8:1, 3). 이렇게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과 그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선대한 것입니다. 비록 다윗은 사울 때문에 고난과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그의 젊은 시절을 도망 생활로 보내야 했지만 요나단을 생각하며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또 다윗은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자 그에게 은총을 베풀려고 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함이었습니다(삼하 10:2). 다윗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을 뿐만 아니라 받은 은혜는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것은 사람 된 도리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보은은 고사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의 경우도 허다합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끝내고 자유의 몸으로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십 년의 광야생활 동안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건강으로 지켜주셨습니다(신 8:4). 하지만 그들은 감사보다 불평이 많았고,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신 9:7) 멸시했습니다(민 14:11). 이에 모세는 "네 아버지시요 너희를 만들고 지으신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며 그들을 책망했습니다(신 32:6). 소나 나귀는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고, 개들도 은혜를 입으면 보답할 줄 압니다. 하물며 사람이 은혜를 모른다면 그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모르고 오히려 악으로 선을 갚는다고 책망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니라 다윗처럼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할 줄 알은 결초보은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윗처럼 은총을 베푼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입니다(삼하 9:4). 그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므비보셋을 데리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전임 왕조의 자손을 보호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그로 인해 가문이 몰살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울은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그 집 사람들을 몰살한 적이 있습니다(삼상 22:9-19). 마길이 사울의 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혹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처럼 이전에 사울에게 받았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그의 손자 므비보셋을 보살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삼상 31:11-13). 아니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의 성품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후에 마길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해 요단 동편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랍바 사람 소비와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와 함께 다윗 일행을 공양했습니다(삼하 17:27-29). 이 일로 그가 어떤 보상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마길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무엇을 바라고 이런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신분이나 형편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행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다윗이나 마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이 어떤 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악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시바와 암몬 사람들

시바는 삼하 1장에 나오는 아말렉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시바는 사울의 종으로서 그의 손자인 므비보셋을 부양해야 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당시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에 종이 스무 명이나 있을 정도로 부유했습니다(삼하 9:10). 그가 어떻게 재산을 모았는지는 모르지만 사울이 죽은 후 그의 유산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착복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울에게 속했던 모든 토지를 시바가 다 차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속한 모든 토지를 그의 손자 므비보셋에게 주겠다고 선언하면서 시바와 그 아들들 그리고 종들로 하여금 그를 위해 농사를 지어 그 가족에게 양식을 공급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당시 므비보셋은 결혼을 했고 아들도 있었습니다(삼하 9:12). 시바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했지만 심기가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사울의 소유를 착복해 주인행세를 했는데 졸지에 므비보셋의 종이 되어 그를 섬겨야 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삼하 16:1).

그로부터 얼마 후 시바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간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는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뒤쫓아 가서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을 넘어가고 있는 다윗을 만났습니다. 시바는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고 묻는 다윗에게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는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데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아버지의 나라를 자기에게 돌려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윗과 함께 하려고 시바에게 안장을 지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바는 므비보셋을 속이고 혼자 다윗에게로 갔고 왕에게 그를 모함까지 했습니다. 이는 주인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속셈이었습니다(삼하 19:26, 27).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전형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시바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주인까지도 배신하는 악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신약의 가룟 유다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악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암몬 사람들입니다. 암몬은 모압과 더불어 룻의 후손들입니다(창 19:38). 이들은 이스라엘 총회에 참여하는 것이 영원토록 금지되었는데(신 23:3, 4)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생활할 때 호의를 베풀기는커녕 이방 선지자인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었습니다(민 22:1-24:25).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게 하는 등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방해했습니다(민 31:16). 그래서 모압과 암몬 자손들은 영원토록 이스라엘 총회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것입니다. 또 이들은 항상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였고, 사울 왕 때에는 암몬과 크게 전쟁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삼상 11:1-11). 이때 암몬 왕이 나하스였는데, 다윗은 이 나하스로부터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닐 때 나하스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나하스가 죽자 다윗은 은혜를 갚기 위해 조문사절단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하스의 아들 하눈이 신하들의 말만 듣고 다윗이 보낸 사절단을 정탐꾼으로 오해하여 그들을 욕보였습니다. 조문사절단으로 온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 한가운데를 도려내어 양쪽 엉덩이가 드러나게 해서 돌려보낸 것입니다. 이는 당사자들뿐 아니라 다윗을 모욕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삼하 10:6).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암몬은 크게 패해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습니다(삼하 12:31). 이는 다윗의 호의를 무시하고 도리어 해를 입힘으로써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결과였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자들은 결국 암몬 족속과 같이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과 그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이러한 배려로 요나단의 가문은 대를 이어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대상 8:34-40). 그리고 비록 적군이었지만 다윗은 나하스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은혜를 갚으려 했던 다윗과 아무 사심없이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은혜를 베풂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전형적인 삶을 보여준 마길처럼 우리도 은혜를 갚는 보은의 삶, 은혜를 베푸는 시혜(施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배은망덕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자신의 탐욕을 위해 주인까지 배신한 시바처럼 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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