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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2022. 8. 18.

 

성경본문 보기

사무엘하 13장 1절 ~ 7절 [개역개정]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2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5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6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7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설교문 보기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의 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는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가문에 재앙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는데(12:10-12), 그에 관한 이야기가 13장부터 20장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세상의 것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다윗 가문의 재앙은 다윗의 장남 암논(삼하 3:2)이 이복 누이 다말을 범하므로 시작되었습니다. 암논은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고, 다말은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소생으로 압살롬의 여동생이었습니다. 다말은 외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암논은 그 아름다움에 반해 다말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율법에 근친결혼을 금했기 때문에(레 18:9, 11 ; 레 20:17) 암몬은 어찌할 수가 없어 다말로 인해 화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요나답이라고 하는 친구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요나답은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로 암논과는 사촌지간입니다. 그런데 이 요나답은 심히 간교한 자였습니다. '간교한' 그러면 연상되는 짐승이 있습니다. 바로 창 3장에 등장하는 뱀입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창 3:1)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고후 11:3) 요나답은 간계로 암논이 잘못된 행동을 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지금 요나답은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은 것 같이 암논은 요나답의 간계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율법을 어겼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 사람이 왜, 무엇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보통 다섯 가지의 욕구[五欲]가 있다고 합니다. 재욕(財欲)과 성욕(性欲), 식욕(食欲), 명예욕(名譽欲) 그리고 수면욕(睡眠欲)입니다. 성경에는 이것을 세 가지로 요약을 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입니다(요일 2:16). 하와가 죄를 짓는 과정을 보면 이 세 가지가 드러나 있습니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을 먹지 말라고 하셨고 사탄도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모든 열매로 바꾸어 질문을 했습니다.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탄의 질문에 대한 하와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하신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 그것을 먹으면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 2:16)라고 하셨는데, 하와는 여기에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더하고 '반드시'라는 말은 빼고 대답을 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변경시킨 것입니다.

이에 사탄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선악과를 먹는다고 죽지 않으며 그것을 금하신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까 봐 그러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탄의 간계에 걸려든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와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 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기도 한 나무'로 보였습니다. 여기에 앞에서 언급한 인간의 세 가지 욕망이 드러납니다. '먹음직스럽다는 것'은 '육체의 정욕'에 해당하고, '보암 직도 하다' 즉 보기에 아름답다는 것은 '안목의 정욕', 그리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이생의 자랑'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것도 이러한 욕망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에 사로잡혀 하나님께서 금하신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에 대해 경고하시면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30). 사람들이 범하는 죄들은 대부분 눈 즉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성적인 죄가 그렇습니다. 다윗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눈으로 인해 실족했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고 오른손이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려야 합니다. 이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실제로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잘라버린 사람[오리겐(Origen)]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만큼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마치 눈을 빼어 내버리듯 그리고 손을 찍어 내버리듯 단호하게 죄를 끊어버리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대항해야 하는 것입니다(히 12:4). 그럴 용기가 없다면 죄를 멀리하고 바라보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죄의 자리에는 앉지도 말고 죄의 길에 서지도 말며 죄의 근처에는 아예 얼씬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잘못한 대한 징계가 필요합니다.

장남 암논이 다말을 성폭행한 것은 재앙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로 이내 다말은 평생 처량하게 지내야 했고(13:20), 암논은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13:28, 29). 이런 일이 벌어진 데에는 다윗의 안일한 태도도 한몫을 했습니다. 다윗은 암논이 다말을 욕보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몹시 화가 났지만 그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공동번역성서는 "암논이 사랑하는 맏아들이라 기분 상할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히 12:7에 "자기 아들을 징계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고 한 것처럼 자녀가 잘못을 했을 때 부모는 징계를 통하여 자녀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정말 암논을 사랑했다면 그를 징계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식에 대한 정에 이끌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오히려 자녀들에게 더 큰 고통만 안겨주었습니다. 결국 다윗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압살롬은 직접 암논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다윗에 대한 반역을 꾀했다가 그 역시 죽임을 당했습니다(삼하 18:14, 15).

잠언서에는 자녀의 징계에 대한 여러 권면이 나오는데, 심지어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잠 13:24)고 했습니다. 자녀의 잘못을 징계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악한 길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고, 그것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잘못을 징계하지 않고 감싸기만 한다면 그 자녀는 올바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를 이용하여 자기 주인의 재산을 가로챌 흉계를 꾸몄습니다. 그는 므비보셋이 스스로 안장을 지울 수 없는 장애인임을 이용하여 주인 몰래 각종 음식을 준비하여 나귀에 싣고 다윗에게로 갔습니다. 다윗은 먹을 것을 가지고 자기에게 찾아온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거처를 물었고, 시바는 자신의 주인 므비보셋이 반역을 꾸미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시바의 말만 믿고 그에게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주었습니다. 이는 다윗의 경솔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후에 반역이 진압되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므비보셋이 내려와 그를 맞이했습니다. 므비보셋은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도 않았습니다. 비록 다윗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다윗의 고난에 동참을 한 것입니다. 왜 자신과 함께 가지 않았냐고 묻는 다윗에게 므비보셋은 왕과 함께 가려고 했으나 시바가 자신을 속이고 혼자 다윗에게로 갔으며, 자신을 모함까지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한 판단을 다윗에게 맡기면서 그동안 자신에게 베풀어 준 은혜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시바와 므비보셋이 밭을 나누라는 결정을 했습니다(19:29). 다윗은 시바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신이 어려웠던 시기에 시바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그에 따라 시바에게 한 약속을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결정을 내렸고 그것이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에 므비보셋은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왕이 다시 궁으로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므비보셋이 왕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평소 그의 언행으로 보아 진심이라고 여겨집니다. 사실 므비보셋은 본인이 말한 것처럼 죽은 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삼하 19:28). 그런 그에게 다윗은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사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므비보셋에게 주었고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도록 함으로써 므비보셋을 아들처럼 대우를 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은혜에 므비보셋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지금까지 받은 은혜만으로도 만족하며 다시 왕과 함께 식탁에서 먹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그저 살아있는 것에 감사했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음에 만족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했습니다(히 13:5)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그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딤전 6:8). 그럼에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하와처럼, 다윗처럼 시험에 빠지고 올무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 세상적인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므비보셋처럼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잘 곳이 있음에 만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도 유혹을 받았고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승리했지만 하와와 다윗은 미혹되어 죄를 지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겪는 시험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고전 10:13).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넘어지는 것은 영적인 것보다 세상적인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멀리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분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마 26:42). 우리는 마귀의 유혹, 사탄의 시험에 미혹되지 않도록 늘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처럼 있는 것에 만족하며 감사할 때 우리는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