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12장 22절 ~ 33절 [개역개정]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설교문 보기
하루는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랍게 여기면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가 아니냐고 했습니다(마 12:23). 그러자 바리새인들(마 12:24)과 서기관들(막 3:22)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알세불(Βεελζεβούλ)은 블레셋의 에그론 사람들이 숭배하던 바알세붑(בַּעַל זְבוּב, 왕하 1:2)의 헬라어 음역으로, 에그론 사람들이 치료의 신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
1. 스스로 분쟁하면 무너집니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이란 말이 있습니다. 같은 편끼리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편끼리 싸우면 서로 갈라지게 되고 끝내는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중지란은 사탄이 자주 쓰는 전략가운데 하나입니다. 서로 싸우게 만들어 나라든 교회든 가정이든 갈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전략을 사탄이 자신에게 적용할리 만무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은 바알세불을 힘입은 것이 아닙니다.
2. 강한 자가 이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때론 말씀으로(마 9:6, 25 ; 막 2:11 ; 10:52 ; 눅 5:24 ; 요 5:8), 때론 병자의 몸에 손을 대심으로 치료하셨습니다(마 8:15 ; 19:15 ; 막 6:5 ; 눅 4:40). 그리고 이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하신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마 8:3 ; 17:7 ; 막 1:41 ; 막 5:41 ; 7:33 ; 눅 5:13 ; 13:12, 13). 그 외에 침(막 7:33 ; 8:23 ; 요 9:6)이나 기름(막 6:13)등을 사용해서 병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으실 때는 거의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마 8:16 ; 막 1:25 ; 5:8 ; 9:25 ; 눅 4:35 ; 8:29 ; 9:42). 예를 들면,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막 5:8),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막 9:25)고 하는 식입니다. 또 말씀과 안수를 같이 사용하여 귀신을 쫓아내신 경우도 있습니다(눅 4:40, 41).
무당도 귀신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굿이나 제사를 통해 달래서 보냅니다. 그 이유는 귀신이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아있거나 원한이 있어 저 세상에 가지 못한 영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낙원이나 음부로 가기 때문에(눅 16:19~31) 죽은 영혼이 세상을 배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사탄과 함께 타락한 천사들입니다(마 25:41).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전능하거나 전지하지는 않지만 지혜가 있고, 사람보다 힘이 셉니다. 그래서 사람의 힘으로는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행 19장에 보면 에베소에 사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귀신에게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베소는 바울이 수년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들을 가르친 곳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여러 가지 능력을 행했는데, 심지어는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한 귀신들이 나갔습니다. 이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술하는 유대인들 즉 귀신을 쫓아낸다며 떠돌아다니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당시 에베소가 위치한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유대인 마술사들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여러 신기한 일들을 가장 잘하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행하는 일들을 보고 시험 삼아 악한 영이 들린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행 19:13).
그들 중에는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으려 했는데, 귀신이 그들에게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도대체 너희는 누구냐"고 하면서 그들에게 뛰어올라 힘으로 눌러 이겼습니다(행 19:15). 이에 스게와의 아들들은 몸에 상처를 입고서, 벗은 몸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려다가 오히려 귀신에게 망신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힘으로는 귀신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했지만 그들은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며 단지 바울이 행하는 일들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던 것입니다. 귀신이 이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반면에 바울이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눅 10:17 ; 행 16:18). 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귀신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마 12:29).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사 9:6). 비록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빌 2:6).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는 분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그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요 2)이나 바다를 잔잔케 하신 일(마 8), 죽은 자를 살리신 일 등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일들을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강한 자가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의 재산이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자가 공격해 오면 재산을 다 빼앗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는 귀신도 쫓아낼 수 있습니다(눅 10:17 ; 약 4:7).
3. 신앙에 중립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즉 흩어버리는 자)라"고 하셨습니다(마 12:30).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 그래서 함께 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든지, 한쪽을 귀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6:24).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섬기든지 사탄을 섬기든지 해야 하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중립은 없기 때문입니다.
4.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시자 사람들은 대부분 놀라워하며 '이분이 혹시 다윗의 자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우두머리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여겼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 귀신이 들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막 3:30).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2:31, 32).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장로들의 전통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정작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즉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경시했습니다(마 23:23).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것처럼 보였지만 속에는 위선으로 가득찼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요 참된 이스라엘 사람으로 자처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 곧 위선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마 6:2 ; 7:5 ; 막 7:6 etc.).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선 안식일 규례를 범할뿐만 아니라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이 탐탁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죄사함을 선포하는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여겼습니다(마 9:2, 3 ; 막 2:7 ; 눅 5:21). 그럼에도 오히려 자신들을 책망하는 예수님을 좋게 볼리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 제거해야할 눈엣가시에 불과했습니다. 그들과 달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했는데(요 6:14), 바리새인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도 목격한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비방하기 위해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것이죠.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서가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니 그런 일에 현혹되지 말라고 말입니다(마 9:34).
이에 예수님께서는"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2:27).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이 있었고(참조. 행 19:13), 그 가운데는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마 12:27, 너희의 아들들). 바리새인들은 자기 제자들이 귀신의 힘을 빌어 그런 일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것이라 주장하겠죠.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들은 분명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성령의 역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요 3:1, 2).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사탄의 역사로 매도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시며 질책하셨습니다. 독사(ἔχιδνα)는 살무사의 일종으로 멜리데 섬에서 바울을 물었던 뱀과 같은 종류입니다(행 28:3). 그리고 독사는 비유적으로 교활하고 악한 자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마치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는 사탄(계 12:9)처럼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늘 나라의 문을 닫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입니다(마 23:13-15). 결국 그들이 하는 짓은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것으로 이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마 12:31, 32). 구약에서는 이 같은 신성모독의 죄를 사형으로 다스리도록 했습니다(레 2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세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신성모독입니다(계 13:5-6; 16:9; 17:3). 예수님을 비방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오늘날에도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비방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딤전 1:13) 그들이 알지 못하고 한 것이라면 회개의 기회가 있겠지만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의도적으로 성령을 거역했다면 그들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그런 자들은 양심에 화인맞은 것처럼(딤전 4:2) 마음이 너무 굳어져 회개할 기회가 주어져도 결코 회개하지 않을 것입니다(계 2:21).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죄사함도 용서함도 없습니다(행 3:19).
끝까지 회개의 기회를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가슴을 치며 통곡하게 될 것이고(마 24:30) 결국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지만(마 25:41),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들을 위해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마 25:34). 우리 모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