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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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장 38절 ~ 40절 [개역개정]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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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세불 논쟁이 끝난 후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이후에 여러 이적을 행하셨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요 2:23) 바리새인들을 비롯해 사두개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좀처럼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로는 메시아임을 증명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 16장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란 모세의 때에 내렸던 만나(출 16장 ; 요 6:31)나 엘리야 때에 하늘로부터 내렸던 불(왕상 18:30-40), 혹은 여호수아 때에 해와 달이 멈췄던 사건(수 10:12-14)과 같은 이적 등을 말합니다(요 6:31). 그동안 행했던 기적들로는 부족하니 정말 메시아라면 더 큰 표적을 보여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모습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신 1:33). 그리고 백성들 앞을 가로막고 있던 홍해를 가르시고 그 가운데 마른땅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라... 신 중에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 15:1-11). 하지만 이러한 찬양은 삼일 만에 불평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출 15:24). 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출 16:3). 이집트에 있을 때는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었는데 이제 광야에서 굶어 죽게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이 광야에서 우리에게 떡과 고기를 주실 수 있겠는가"(시 78:18-20).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이 같은 불신앙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이곳에서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모두 12명을 선출하여 가나안을 정탐케 했습니다(신 1:22-24). 그들은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를 했는데, 요약하면 가나안은 살기 좋은 땅이기는 하지만 그 땅을 차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자신들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들을 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민 13:28, 31). 여호수아와 갈렙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마치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기로 한 듯 긍정적인 보고를 한 갈렙이나 여호수아보다는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죽느니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민 14:22, 23).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 등 종교지도자들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보면서도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표적을 구하며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요구대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신다고 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행하신 기적들만으로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는데 더 큰 표적을 보여준다 한들 믿을 리 만무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멸망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니느웨 성은 이스라엘로부터 약 700km 떨어진 곳으로 둘레가 약 96km, 인구가 약 60만 명이나 되는 아주 큰 성읍이었습니다(욘 3:3).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앗수르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기를 바랐는데, 요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요나는 만의 하나 앗수르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던 것입니다(욘 4:2).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니느웨와는 정반대인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다시스는 오늘날 스페인의 남부 지방으로 이스라엘에서 3,200km 떨어진 곳입니다. 요나가 배를 타기 위해 욥바 항구로 갔을 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아마 요나는 속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배 밑창으로 내려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배가 얼마 못 가서 큰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두려워하면서 자신이 믿는 신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물건을 바다에 던졌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점점 세어지는 폭풍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를 밝히기 위해 제비를 뽑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요나가 뽑혔고, 요나는 자신 때문에 폭풍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 폭풍은 잔잔해졌고, 하나님께서 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지낸 후 다시 나오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요나의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이유는 요나의 표적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고, 부활은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임을 확실하게 증거 해 주는 표적이기 때문입니다(마 12:40).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사 53:8-10).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성경대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고전 15:3, 4).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성경대로 이루어진 예언의 성취인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악한 자들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완악한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고, 남방 여왕 즉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 먼 곳에서 왔지만(왕상 10:1), 유대인들은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 아니 세상 사람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지만 그분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비난했습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표적을 보여주신다 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누구보다도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돈에 미혹되어 예수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훔쳐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마 28:11-15). 또 그렇게 하도록 사주한 것이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고 있다고 자부하는 종교지도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행하셨던 수많은 이적들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일어난 초자연적인 일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들으면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그리고 인정하든 안 하든 예수님의 부활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분이 바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메시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임을 충분히 보여준 말 그대로 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사람은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요 9:32, 33). 이는 마치 하늘을 보고 날씨를 분별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다음날은 대체로 날씨가 맑습니다. 반대로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늘을 보고 날씨가 좋은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면 그가 하늘로부터 오신 분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마 16:2, 3). 하지만 대부분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도 그분을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설령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신다고 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눅 16:31). 그들이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구한 것은 예수님을 믿기 위함이 아니라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듯이(마 4:1) 단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마 16:1).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대를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표적과 기이한 것들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세대(요 4:48), 나아가 그런 것들을 보고서도 오히려 예수님을 비방하며 멸시한 악한 세대였습니다(막 8:38). 이는 결국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도 예수님 당시 세대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지혜를 찾습니다(고전 1:22). 이를 잘 알고 있는 마귀는 자신의 일꾼들을 하나님의 일꾼들로 가장시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고후 11:15). 우리는 그런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유대인이 표적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 선생들, 거짓 선지자들, 거짓 그리스도들이 그런 걸 이용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마 24:2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요나의 표적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롬 4:25)보다 더 크고 확실한 표적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