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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지혜로운 여인

2022. 9. 11.

 

성경본문 보기

사무엘하 20장 14절 ~ 22절 [개역개정]
14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20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22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설교문 보기

압살롬의 반역이 진압된 후 곧바로 베냐민 사람 세바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반란은 지파 간의 갈등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실 지파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해묵은 과제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에나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갈등이 깊어지면 분쟁이 발생하고 분쟁은 분열로 이어집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1.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기드온이 사사로 있던 시대 이스라엘과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갈 무렵,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에게 전령을 보내 "너희는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미디안 군이 요단 강을 넘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그대로 했고,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의 목을 기드온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때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몹시 화를 냈습니다.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느냐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에브라임은 자존심이 매우 강한 지파였습니다. 그들의 조상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임에도 르우벤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장자권을 물려받았습니다(대상 5:1, 2). 그래서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 지파를 형성해 두 지파가 되었고 가나안 땅 분배 때 두 몫의 기업을 받았습니다(수 14:4). 특히 에브라임은 작은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창 48:19). 그래서 그런 지 에브라임 사람들은 우월감이 대단했고, 형제인 므낫세 지파에 대해서는 경쟁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기드온이 속한 므낫세 지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자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고 장자 지파로서 대접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도 있었을 것입니다(삿 8:1). 그래서 화가 났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또 있었습니다. 입다가 암몬 족속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자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기드온 때와 같은 이유로 시비를 걸어왔습니다(삿 12:1). 이에 대한 입다의 대처는 강경했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입다의 주장에 의하면 암몬 자손과 싸우기 전 에브라임 지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므낫세 지파에 그것도 창녀의 아들인 입다가 지휘관이 된 것이 못마땅했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삿 12:2). 그런데 전쟁이 끝난 지금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고 시비를 걸며 입다와 그의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에브라임 지파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입다는 화가 났습니다. 더욱이 딸의 문제(삿 11:34-39)로 상심해 있던 입다는 화를 참지 못하고 길르앗 사람을 모아 에브라임 사람들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로 인해 에브라임에 속한 군인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삿 12:6).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의 자존심과 오만이 초래한 비극적인 결과였습니다.

입다와 달리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미디안 두 방백을 죽이는 전공을 세우게 하셨으니 이에 비하면 기드온 자신이 행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화를 풀어 준 것입니다(삿 8:3). 사실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투에 있어서 기드온과 그의 가문인 아비에셀 사람들의 공적은 에브라임 지파보다 더 컸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이 일로 인해 동족 간에 분열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만일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의 항의에 강경하게 대응했다면 입다의 경우처럼 동족 간에 전쟁이 벌어졌을 것입니다(삿 12:1-6). 기드온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공동체의 평화를 우선시했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낮추고 대신 상대방을 높여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삿 8:1-3). 이것이 바로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지파 간의 갈등은 왕정시대에 들어와서도 계속되었고 다윗의 환궁 문제로 다시 불거졌습니다. 압살롬을 피해 요단 강 동편 마하나임으로 피했던 다윗(삼하 17:24)은 반란이 진압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요단 강을 건너 길갈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에게 몰려와서는 유다 사람들이 자신들 몰래 왕과 그의 가족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요단강을 건너게 했다는 이유로 불평을 했습니다. 사실 다윗을 예루살렘으로 환궁시키려고 논의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였습니다(삼하 19:9, 10). 그런데 유다 사람들이 자신들 몰래 왕을 환궁시키려고 했으니 기분이 몹시 상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유다 사람들의 강경한 태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삼하 19:43). 이때 베냐민 사람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세바의 반란은 지파 간의 갈등이 단초가 된 사건입니다. 만일 유다 사람들이 입다가 아니라 기드온의 태도를 취했더라면 상황은 원만히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 일에는 항상 자기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마 16:24). 어떤 사람에게는 쉬운 것처럼 보이는 일도 누구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대신 상대방을 높여주는 일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공동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온유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인 중에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둘 사이의 다툼이 교회의 분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에 바울은 둘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빌 4:2).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녔던 온유와 겸손(마 11:29)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빌 2:5). 사람들은 자기를 낮추기보다 스스로 높임으로써 상대적으로 남을 업신여기기 쉽습니다. 남을 업신여기게 되니까 다툼이 생기고 분쟁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갈등이나 분쟁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2. 지혜입니다.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과 유다 지파 사람들 간의 갈등을 틈타 베냐민 지파의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지파를 규합하여 유다 지파를 대적하려고 했습니다. 초기에 진압하지 못하면 압살롬 때보다 더 큰 곤혹을 치르게 될 것이라 판단한 다윗은 아비새로 하여금 세바를 뒤쫓게 했고, 모압도 다른 용사들과 함께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세바가 벧마아가의 아벨(혹은 아벨벧마아가)이란 성읍으로 들어가자 요압의 군대가 성을 포위하고 그 옆에 토성을 쌓아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지혜로운 여인이 중재에 나서 성을 구했습니다. 멸망의 위기에 있던  성이 한 여인의 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지혜는 중요한 것이며 성경 또한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두 종류가 있는데, 땅에 속한 세상의 지혜가 있고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한정된 지식과 견해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 때문에 변하기 쉽고 진리를 거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공공이나 타인의 유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더 추구하며,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상대방과 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비난하기도 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위장하거나 속이기도 합니다(약 3:14-16). 이런 세상의 지혜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없고 오히려 분란을 조장할 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세상적인 교훈이 섞이지 않고 이기적인 욕심이 없이 깨끗하고 순수합니다. 또 자기의 주장이나 견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방과 다툼을 벌이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남의 잘못에 대하여 엄하게 책망하는 대신 관용을 베풀고,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과 다르다고 해서 남을 무시하거나 깍아내리지 않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자신을 위장하거나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세상의 지혜와는 달리 편견과 거짓이 없고 긍휼과 평화가 있습니다(약 3:17).

이러한 지혜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잠 1:7 ; 9:10). 그리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약 1:5)고 하신 것처럼 지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등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모인 교회라고 해서 다르진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이스라엘에서도 지파간 갈등이 있었고, 초대교회에서도 갈등은 흔히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교회도 있었는데, 고린도교회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나는 바울파, 나는 아볼로파, 나는 베드로파, 나는 그리스도파'라고 하며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이러한 분파는 언제나 인간 중심적인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보다 더 내세우는 사람, 또 사람의 유명세를 따라 그에 속하려는 사람, 모두가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입니다. 이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같은 권면을 합니다.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그리스도인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자들이라면 공동체의 안정과 화합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곧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며 위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자신을 낮추었던 기드온처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아벨 성을 구원한 지혜로운 여인처럼 우리도 위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를 얻어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화평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