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 씨 뿌리는 자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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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1절 ~ 9절 [개역개정]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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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앉으시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므로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가 앉으셨고 무리는 모두 물가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란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전혀 생소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비유를 사용하셨는데,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 13:34)고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이 모두 비유는 아니었습니다(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약 1/3이 비유에 속합니다.「위키백과」, "예수의 비유" 항목). 하지만 천국에 관해서 만큼은 모두 비유로만 말씀하셨습니다(막 4:34). 그 이유에 대해 마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13:35 ; 시 78:2 참조)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이유를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마 13:13 ; 사 6:9). 백성들의 마음이 굳어져서 귀는 듣지 못하고 눈은 감겨 있는 까닭입니다(마 13:15). 비유를 깨닫지 못하는 건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혼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해 주셨습니다(막 4:34).
천국에 관한 예수님의 첫 번째 비유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다른 복음서들에 모두 등장하는 유일한 비유입니다.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눅 8:11) 혹은 '천국 말씀'(마 13:18)이며 씨를 뿌리는 것은 말씀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막 4:14). 그리고 씨가 뿌려진 길 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은 말씀을 들은 자들(의 마음)을 가리킵니다(막 4:15 ; 눅 8:12).
당시 이스라엘에서 씨를 뿌리는 방법 중 하나는 사람이 손으로 씨를 뿌리는 것인데 이때 뿌려진 씨는 바람에 날려 길가나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등 여러 곳에 떨어졌습니다.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이 정경이 어떤 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 하면 어부만 생각하기 쉬운데, 갈릴리에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막 4:33)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나 사물에 빗대어 복음을 전하셨는데, 씨 뿌리는 비유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 가에 떨어졌습니다. 길 가는 사람들에 밟혀서 다져졌기 때문에 그 위에 떨어진 씨앗은 땅 속에 묻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들이 날아와 먹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밟히기도 합니다(눅 8:5). 길 가와 같은 자들은 말씀을 듣지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니 말씀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악한 자 곧 마귀의 먹이가 될 뿐입니다(눅 8:12).
뿌려진 씨 가운데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석회석 위에 흙이 얇게 덮여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런 곳에 떨어지는 씨는 돌의 온기에 의해 싹이 쉽게 나오기는 하지만 흙이 얇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습기도 없기 때문에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이 돌밭은 말씀을 듣는 순간에는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말씀으로 인해 시련을 당할 때(눅 8:13) 쉽게 신앙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마 13:21). 냄비 같은 신앙이라 할까요? 이런 돌밭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일시적인 신앙의 사람으로 ‘잠깐 믿다가’(눅 8:13) 다시 말씀을 듣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결국 그들에게도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씨는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가시떨기는 가시나무 혹은 가시덤불로 기후가 건조한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긴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그리고 인생의 향락에 사로잡혀 신앙의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눅 8:14).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는 돌밭에 뿌려진 씨보다는 더 낫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뿌리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매가 없다는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적인 염려들은 신앙의 성장에 큰 방해가 됩니다. 신앙보다 현실에 더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관심 역시 신앙생활에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재물을 신뢰하면 할수록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지 아니면 한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습니다(마 6:24).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현실에 관한 문제가 중요하며, 재물 역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마 6:32).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인생의 향락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고전 10:31).
마지막으로, 뿌려진 씨 가운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좋은 땅이란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을 가리킵니다(마 13:23). 누가에 의하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눅 8:15). 그들은 주의해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한 자들은 시련을 당할 때도, 세상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마 7:25) 결국은 신앙의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똑같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백배의 결실을 맺고 육십 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이나 삼심 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매를 충실히 맺기만 하면 모두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귀 있는 자는 들으라’(9절)라고 하시며 천국에 관한 첫 번째 비유를 마치셨습니다. 성경에서 ‘귀’는 이해와 아울러 순종하려는 마음 자세를 가리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고 주의 깊게 들으며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 때 우리의 신앙은 백 배, 육십 배, 삼심 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열매가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뿌려진 씨앗이 모두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시 126:5, 6).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전하면서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열매를 거둘 때가 올 것입니다(갈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