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야 기도를 들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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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1장 1절 ~ 9절 [개역개정]
1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2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3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4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5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6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7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8 왕이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
9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10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바위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11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
12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가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블레셋 사람들이 벧산 거리에 매단 것을 그들이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13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14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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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다스리던 시대에 3년 동안 계속 기근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3년 동안 기근이 계속되자 다윗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두 해는 비축했던 양식으로 어찌 견뎠을 테지만 3년 동안 계속되는 기근에 양식은 바닥이 나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기근은 가끔 있었던 일이었고(창 12:10 ;26:1 ; 41:57 ; 룻 1:1 ; 왕하 4:38 ; 행 11:28) 그래서 다윗은 처음에 이 기근을 일반적인 재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3년 동안 계속되자 그제야 일반적인 재해가 아님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를 한 것입니다.
다윗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기근의 원인이 '사울과 그의 집안사람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히위 족속(수 9:7)으로 가나안 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히위 족속을 비롯해 일곱 족속을 진멸하되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신 7:2). 그런데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에 속아 그들을 살려 준다는 언약을 맺고 회중의 지도자들도 그들에게 맹세를 했습니다(수 9:15). 여호수아가 이런 실수를 한 것은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않고 임의대로 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수 9:14).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서 조약을 맺었으니 이는 원천적으로 무효이며, 파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브온 주민들과의 언약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거짓에 속아 기브온 주민들과 평화 조약을 맺었을지라도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수 9:18) 그것을 파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어진 계약이 파기된다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까지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 맹세도 파기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훼손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되어진 맹세는 어떠한 경우라도 파기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시 15:4). 결국 기근의 발단은 여호수아를 비롯해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애초에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했더라면 이러한 기근도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역시 여호와께 묻지 않았습니다(대상 10:14). 그는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그분의 뜻을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움직였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사울이 죽은 이유에 대해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다고 했습니다(대상 10:13, 14).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는 믿음보다 현실을 더 우선시했고,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더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에 따라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미이고 이는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신뢰하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울처럼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지만 다윗처럼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2. 잘못된 열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한 맹세를 어기고 그들을 죽인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삼하 21:2). 즉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방 민족인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니 이를 위한 열심은 결국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를 위한 열심이 곧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인들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종교적 열심이 대단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외출을 삼갔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이동거리에 제한을 두었습니다(행 1:12). 심지어 위급하지 않으면 병자를 치료하는 행위도 금했습니다(눅 13:14).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하루 세 번 기도했고(행 2:15 ; 3:1 ; 10:9), 일주일에 이틀이나 금식을 했습니다(눅 18:12). 십일조 역시 철저했는데, 박하와 회향과 근채 등 곡식이 아닌 채소의 십일조까지 드렸습니다(마 23:23). 또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닐 정도로 전도에도 열심이었습니다(마 23:15). 이러한 종교적 열심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면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눅 18:11).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칭찬하시기는커녕 '외식하는 자[위선자]'(마 15:7 ; 22:18 등)요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마 23:27).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따라 종교생활에 엄격했으며 그러한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롬 10:3). 하지만 그들은 율법의 더 중요한 부분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해 버렸습니다(마 23:23).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마 12:7 ; 호 6:6) 바리새인들은 자비를 베푸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제사드리는 데에만 열심이었습니다.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에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모범적인 종교인이지만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에게 그들은 위선자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고(마 23:23) 미가 선지자가 말한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미 6:8). 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한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업신여기는 행위로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행해진 잘못된 열심이었고,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겪어야 할 만큼 큰 죄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열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종교적 열심이 무조건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교회를 위한다는 구실로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열심들이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의 종교적 열심이 혹 사울이나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거나 정 반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3.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기근의 원인을 알게 된 다윗은 이 문제를 놓고 당사자인 기브온 사람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이에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자손 중 남자 일곱을 넘겨주면 그들을 사울의 고향 기브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겠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대로 하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제외하고 사울의 첩 리스바의 두 아들과 사울의 맏딸인 메랍의 다섯 아들을 넘겨주었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제외시킨 것은 그의 아버지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으로 다윗은 요나단이 살아있을 때 그의 집에 자비를 베풀겠다는 약속을 했었습니다(삼상 20:14-16). 사울의 자손 일곱을 넘겨받은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을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았습니다. 후에 다윗은 그 매달렸던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지파의 땅 셀라에 있는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합장을 했습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언제 죽였는지, 그로 인한 기근이 발생한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두 사건 사이에 상당한 시일이 경과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죄는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어떤 식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다윗도 우리아의 아내를 범했을 때 회개하므로 지은 죄를 용서받았습니다(삼하 12:13). 하지만 그 죄에 대한 징계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삼하 12:11).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진실로 회개하는 자의 죄를 용서하시지만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기지는 않으십니다(출 34:6, 7).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의 대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5: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경험하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판단을 믿고 행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판단은 제한적이고 지혜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실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과 관계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시므로 그분의 뜻을 따르기만 하면 결코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일에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