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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마태복음 강해 :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사

2022. 10. 24.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14장 13절 ~ 21절 [개역개정]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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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들 가운데 사복음서에 전부 기록된 유일한 기적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신 일명 오병이어의 사건입니다. 그만큼 이 사건은 제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 초기 주로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여러 가지 기사와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들은 거의 대부분이 병자들을 치료하신 일입니다(마 4:24). 이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가지각색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호기심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따른 사람들도 있었고,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나온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바리새인들이나 혹은 그들이 예수님을 감시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건너편으로 가셨을 때에는 여러 마을로부터 남자만 오천 명이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셨고(마 14:13) 또 많은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이유에 대해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막 6:34). 양은 어리석고 약하며 길을 잘 잃어버리기 때문에 목자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동물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의무만 강요할 뿐 정작 백성들의 영적 상태와 그들이 당하는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내팽개쳐져 고생하며 지쳐있었습니다(마 9:36).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으며 병자들을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무리를 보내 마을로 가서 유숙할 곳과 먹을 것을 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 역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참조. 마 15:32). 이렇게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 안드레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명령에 제자들은 몹시 당황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인지'. 제자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요 6:5).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실 일을 미리 다 알고 계시면서도 빌립을 시험하고자 이렇게 물으신 것입니다(요 6:6). 이에 빌립은 "각자가 조금씩 먹는다 해도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빵으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요 6:7). 한 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마 20:2)이니 이백 데나리온은 오늘날로 환산하면 천만 원이 넘는 큰돈입니다. 더구나 빌립은 벳새다(요 1:44) 출신이므로, 그 지방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빌립의 대답은 이 시간에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무리가 먹을 만큼의 양식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혹 구할 수 있다 해도 자신들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빌립과 같은 사람을 현실적이고 신중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만나거나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이것저것 따져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매사에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실수가 적은 반면에 신앙적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신앙에 있어서 신중함은 필요합니다. 신앙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맹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해 버리는 것 역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신앙입니다. 아직까지 제자들은 그러한 믿음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마 8:26 ; 막 4:40).

빌립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가지고 있는 빵이 얼마나 되는지 가서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막 6:38). 다른 제자들은 모두 빈손으로 왔는데, 안드레는 한 어린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 아이의 손에는 보리 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이를 언급하며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다소 비관적인 어투로 말했습니다(요 6:9). 한편으로는 비록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예수님께 가지고 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무시해 버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갖는 희망은 모든 헛된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소망은 참된 소망이요, 영원한 소망입니다(고전 13:13 ; 딛 1:2).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딤전 6:17).

3. 한 어린아이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무리 중에 먹을 것을 가져온 사람이 어린아이 하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무리 가운데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에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 빌립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남자만 오천 명, 여자 아이 합치면 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먹을 수는 없다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 어린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것저것 따져보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온 한 끼의 식사였지만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전부를 희생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기억하시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는 세상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재밌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살려면 집에 있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 됩니다. 하지만 이 어린이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든 부모를 따라왔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시 84:10)라고 고백했던 어느 고라 자손의 고백처럼 비록 이 세상에서 편안하고 재밌게 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곳이라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리를 한 오십 명씩 앉히라'고 하셨습니다(눅 9:14). 그리고 어린아이가 드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은 그것을 무리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으며 남은 조각들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구약에서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리 빵 이십 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를 가져오자 엘리사는 그것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환이 '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그것을 어떻게 내놓겠느냐'며 꺼려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으니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왕하 4:42-44).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되 한 달 동안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자 모세는 '이 백성의 보행자만 육십만 명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냐'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빌립과 같은 부정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셨습니다(민 11:18-23).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각종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며,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빵 다섯 개와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한 끼 식사를 기꺼이 제공한 한 어린아이의 희생과 비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안드레의 믿음을 거쳐 모든 것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비록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도 남음이 있는 넉넉한 식사가 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기적의 원인이 예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로 모든 사람들의 배고픔을 넉넉히 해결해 주셨던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고 그 안에서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마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