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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202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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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장 1절 ~ 10절 [개역개정]
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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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다면 열에 아홉은 솔로몬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만큼 솔로몬은 지혜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지혜를 얻게 되었을까요? 열왕기상 3장은 솔로몬이 지혜를 얻는 과정과 더불어 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이방여인을 사랑한 솔로몬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나라의 기반을 튼튼하게 세워 갔습니다(왕상 2:46 ; 대하 1:1). 그리고 아버지 다윗의 소원이었던 성전 건축을 준비했습니다. 그전에 먼저 결혼을 했는데, 첫 번째 부인은 이집트 왕 바로의 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여인입니다. 솔로몬은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이집트와의 정략적 결혼을 통해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꾀하려 했을 것입니다.

이방 여인이라고 해서 결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에는 가나안 사람과의 결혼을 금하고 있을 뿐(출 34:16 ; 신 7:3) 이방인과의 결혼을 아예 금지시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 여인과 결혼을 했고(창 41:45), 모세도 구스 여인과 재혼을 했습니다(민 12:1). 다윗의 증조부 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과 결혼을 했으며(룻 4:13) 다윗도 그술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삼하 3:3).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이방인과의 결혼을 원치 않으셨다면 요셉이 이집트 여자와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을 것이고, 그들에게서 난 아들들 곧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 포함되지 못했을 것입니다(창 48:5). 더욱이 하나님의 충성된 사람으로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알고 있었던 모세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결혼을 할 리 만무합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이집트 왕 바로의 딸과 결혼을 한 것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할 이스라엘 왕이 정략결혼을 통해 이방 나라의 도움을 얻으려 했다는 점과 단순히 정략결혼이 아닌 이방 여인을 사랑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후에 솔로몬은 바로의 딸 외에도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 등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사랑해서 그들을 후궁과 첩으로 삼았습니다(왕상 11:1). 그 여인들이 솔로몬 왕 노년에 왕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따르게 했고(왕상 11:4) 그에 대한 징계로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분열이 되었습니다(왕상 11:11).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하신 이유는 그들의 영향을 받아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을 우려하셨기 때문입니다(신 7:4). 그럼에도 솔로몬은 늘 마음이 이방 여인들에게 쏠릴 정도로 그들을 사랑했습니다(왕상 11:2). 결국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우려하신 대로 여호와를 떠나 이방신들을 따랐습니다(왕상 11:9). 솔로몬뿐만 아니라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결혼을 한 기독교인들이 믿음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고후 6:14). 멍에를 함께 멘다는 것은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친밀하게 연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동업이나 결혼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 특히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동업이나 결혼 등 친밀한 관계를 맺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성도와 세상 사람들은 전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고,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 없는 것처럼 성도와 세상 사람들은 결코 화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불신자 특히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결혼하지 말아야 하며, 동업처럼 친밀한 관계를 맺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자들과 아예 상종하지 말라는 것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고전 5:10).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그들과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되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는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들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결혼해서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어서는 안 됩니다.

2. 여호와를 사랑한 솔로몬

솔로몬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란 뜻의 여디디야로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삼하 12:25). 솔로몬 역시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왕상 3:3), 한 역본[갈대아]에는 '그가 여호와께 경배드리기를 사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왕상 3:2).

산당[히, 바마(בָּמָה) : 높은 곳]은 이방 종교에서 '신에게 제사하기 위해 세운 집'으로 보통 높은 곳에 만들어졌습니다(민 22:41 ; 왕상 11:7 ; 14:23).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만큼 상달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산당을 모두 헐어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민 33:52). 하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산당들에서 제사를 드렸고, 성전이 건축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당시 기브온에 큰 규모의 산당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하나님의 회막이 있었습니다(대하 1:3). 솔로몬은 그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가 드린 제물은 '일천 번제'였습니다. 일천이란 숫자가 번제를 드린 횟수를 말하는지 아니면 드린 제물의 양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정황상 횟수보다는 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일천 번제란 천 번의 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천 마리의 번제물을 드렸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드렸다'는 동사가 미완료인 것으로 보아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했고 수고스러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여호와께 경배드리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을 내야 하니 시간의 희생이 필요하고, 헌금을 해야 하니 물질의 희생도 있어야 합니다. 때론 피곤한 몸,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수고도 필요합니다.

한 10년쯤 되었을까요. 예전에 우리 교회에 다니시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해 3월 마지막 주일 낮 예배 때 당시 92세 된 그 할머니께서 예배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2주 전 사고로 발목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하신 상태였습니다. 다 나으면 교회에 가려고 생각을 하고 집에 누워 계셨는데 어디선가 '교회 안 가나'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방문을 열고 누구시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 누웠는데 또 '교회 안 가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문득 '하나님께서 나한테 교회 가라고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예배에 참석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걸을 수가 없어 기다시피 해서 오셨습니다.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집에서부터 기어서 2층 교회까지 오신 겁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예배에 빠지기 일쑤인데 노인이 기어서 교회에 오셨으니 마음이 찡하고 한 편으로는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가끔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시 50:14, 23). 우리가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예배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고후 9:7).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와 헌물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3. 지혜를 사랑한 솔로몬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후 기브온에서 잠을 자는데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을 주기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자기를 위하여 오래 사는 것이나 부유한 것이나 원수들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왕상 3:9, 11).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한 것을 마음에 들어 하시며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과 더불어 부귀와 명예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이요 부귀와 영화를 누린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솔로몬은 지혜를 강조했습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잠 4:7). 지혜는 두 종류가 있는데, 땅에 속한 세상의 지혜가 있고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한정된 지식과 견해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 때문에 변하기 쉽고 진리를 거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공동체나 타인의 유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추구하며, 자기주장이나 견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속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다툼이 있고 분열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지혜는 한 마디로 정욕적이고 마귀적입니다(약 3:15).

반면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이기적인 욕심이 없이 깨끗하고 순수합니다. 또 자기의 주장이나 견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방과 다툼을 벌이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남의 잘못에 대하여 엄하게 책망하는 대신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며,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과 다르다고 해서 남을 무시하거나 깍아내리지 않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위장하거나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세상의 지혜와는 달리 편견과 거짓이 없고 긍휼과 평화가 있습니다(약 3:17). 이러한 지혜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잠 1:7 ; 9:10).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약 1:5). 하늘에 속한 지혜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잠 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기도를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정욕을 위해 구하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약 4:3).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구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하는 기도,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기도에 침묵하기도 하시고, 응답을 늦추시기도 하시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응답하시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또 우리가 기도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적당한 때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응답해 주실 것을 믿으며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