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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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5장 1절 ~ 12절 [개역개정]
1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이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2 이에 솔로몬이 히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3 당신도 알거니와 내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4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원수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5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6 당신은 명령을 내려 나를 위하여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내게 하소서 내 종과 당신의 종이 함께 할 것이요 또 내가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의 삯을 당신에게 드리리이다 당신도 알거니와 우리 중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을 잘하는 자가 없나이다
7 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이르되 오늘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 그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 하고
8 이에 솔로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사람을 보내어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거니와 내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에 대하여는 당신이 바라시는 대로 할지라
9 내 종이 레바논에서 바다로 운반하겠고 내가 그것을 바다에서 뗏목으로 엮어 당신이 지정하는 곳으로 보내고 거기서 그것을 풀리니 당신은 받으시고 내 원을 이루어 나의 궁정을 위하여 음식물을 주소서 하고
10 솔로몬의 모든 원대로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을 주매
11 솔로몬이 히람에게 그의 궁정의 음식물로 밀 이만 고르와 맑은 기름 이십 고르를 주고 해마다 그와 같이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
설교문 보기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나라의 기반을 튼튼하게 세워 갔습니다(왕상 2:46 ; 대하 1:1).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태평해지자 솔로몬은 성전 건축에 착수합니다. 성전 건축이 시작되기까지는 많은 준비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생전에 성전 부지를 비롯해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했습니다. 성전 설계도는 물론이고 성전에서 사용되는 모든 기구들에 대한 설계도까지 세세하게 준비했습니다. 이 설계도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다윗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대상 28:12, 19).
먼저 솔로몬은 두로 왕 히람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두로는 오늘날 레바논의 남부 도시입니다. 히람은 비록 이방인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백향목과 잣나무는 물론 숙련된 일꾼들까지도 기꺼이 제공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의 합작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당시 두로는 이스라엘과 종교가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로 왕이 솔로몬을 도와 성전 건축에 기여했다는 것은 영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중요한 복음적 진리를 예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롬 3:29).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하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롬 3:30). 유대인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방인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여기에 차별은 없습니다(롬 3:22 ; 10:1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롬 10:13). 구원은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롬 3:26 ; 엡 1:6 ; 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어떤 차별이나 서열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인종과 신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며 교제를 나누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지을 성전에는 세 종류의 나무가 건축자재로 사용되었습니다. 백향목과 잣나무 그리고 백단목(왕상 10:11)입니다. 백향목은 레바논 국기에 사용될 정도로 레바논에 많이 서식했습니다. 잣나무 역시 레바논을 대표하는 나무였습니다(왕하 19:23). 두로 왕 히람은 이 두 나무들을 솔로몬이 원하는 대로 보내 주었습니다(왕상 5:10).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습니다(왕상 5:11). 그런데 백단목은 레바논에 서식하지 않기 때문에 오빌이라는 곳에서 수입을 했습니다(왕상 10:11). 오빌은 금 산출지로도 유명한데(대상 29:4 ; 욥 22:24 ; 시 45:9), 오늘날 인도나 아라비아, 또는 동아프리카의 한 지역으로 추정됩니다. 성전에 사용된 이 세 나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상록수입니다.
상록수(常綠樹)란 나뭇잎이 사계절 내내 푸른 나무를 말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변함이 없는 신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돈 때문에 신앙이 좌우되는 사람은 평생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돈으로 계속해서 그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보다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도 마찬 가지입니다. 마귀가 시간으로 계속 그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변함없는 신앙을 간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수고와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일말의 망설임 없이 신앙을 선택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왕이여,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십시오"(단 3:16-18).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결단은 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친구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당시 세계 최강국인 바벨론의 한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로 명예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을 위해 아무 미련 없이 그것들을 포기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용기, 어떤 유혹에도 세상에 동화되지 않을 결단이 필요합니다.
2. 교목입니다.
교목(喬木)이란 줄기가 곧고 굵으며 키가 큰 나무를 말합니다. 이는 신앙의 곧음을 의미합니다. '곧다'라는 말은 '목적을 향해 흔들림이 없이 나아간다'는 뜻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에 의해 신앙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환경을 극복하고 푯대를 향해 곧게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을 삼상 6장에 나오는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법궤로 인해 큰 재앙을 겪은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새로 만든 수레에 법궤를 싣고 그것을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소, 거기에 이제 막 송아지를 낳은 암소,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로 끌게 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린 재앙이 우연인지 아니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인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수레를 끌기 위해 선택된 두 암소는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소들이었지만 수레를 이끌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새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비록 집에 두고 온 새끼들을 생각하며 울기는 했지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바로 행하여 자신들이 가야 할 목적지인 벧세메스로 갔습니다(삼상 6:12).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목적지인 본향을 향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곧바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푯대를 잘 보아야 합니다(빌 3:14). 푯대란 달리기 경주에서 골인지점을 표시하기 세워 놓은 것으로 경기자는 이 푯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1, 2).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전의 우리의 푯대는 세상이었고, 마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푯대를 따라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푯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법궤를 싫은 두 암소가 벧세메스라는 목표를 향해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로 행했던 것처럼 우리는 푯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목적지인 하늘의 본향을 향하여 바로 행할 수 있습니다.
3. 향목입니다.
향목(香木)이란 향이 나는 나무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향기는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첫째, 성도의 삶입니다. 구약에서 '향기'는 대부분 희생제물을 태울 때 나는 냄새를 가리켰습니다(창 8:20, 21 ; 출 29:18 ; 레1:9). 사실 제물이 타는 냄새 자체는 결코 향기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순종과 헌신의 마음으로 드려진 제물을 향기로운 제물로 기쁘게 받아 주신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사람의 죄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습니다(엡 5:2).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대속제물로 바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향기로운 제물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으므로 이제 우리의 몸은 오직 주를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6:13).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삶을 가리켜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롬 12:1).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담은 그릇입니다(고후 2:15). 그러므로 세상의 향락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고전 6:20).
둘째, 향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기도가 향처럼 하나님 앞에 놓여 지기를 원했고(시 141:2) 계시록에서는 향을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계 5:8 ; 8:3). 향을 태우는 것을 분향이라고 하는데, 이 분향은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에서 이루어졌습니다(출 40:26, 27). 분향단은 조각목에 정금을 입혀 만들었는데, 이는 기도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믿음임을 보여줍니다(마 21:22 ; 막 11:24 ; 약 1:6, 7).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고(마 21:22 ; 막 11:24), 야고보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약 1:6). 기도는 호흡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호흡을 하지 못하면 죽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성도의 영은 죽어 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살전 5:17). 이는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라는 의미입니다(엡 6:18). 예수님께서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눅 18:1).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며, 그 기도는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성전의 목재로 사용된 세 나무처럼 언제나 변함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지인 본향을 향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곧바로 나갈 수 있도록 푯대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언제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 그 향기는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역겨운 냄새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향기가 되면 좋겠지만(롬 14:18)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는 못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갈 1:10). 우리의 삶이 세상의 향락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향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고전 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