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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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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15절 ~ 20절[개역개정]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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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16:18). 그로부터 얼마 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행 1:3).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는데(행 1:4), '아버지의 약속'이란 성령의 강림에 관한 것입니다(눅 24:49 ; 행 1:5). 이 약속을 믿고 약 120명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정되는 곳에 모여 기도를 했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오순절은 구약시대에 맥추절(출 23:16) 혹은 칠칠절(출 34:22)이라고 불리는 절기인데, 무교절 기간 중 첫 수확한 보릿단을 하나님께 바친 날[초실절, 레 23:15]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오순절(πεντηκοστή, 50번째)이라고 불렀습니다(행 2:1 ; 20:16 ; 고전 16:8). 교회는 일반적으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설립되었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권세를 주셨는데, 그중의 하나가 치리권입니다. 치리권이란 한 마디로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행 15:22-25), 본문 18절은 이에 대한 말씀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여기서 '매다'와 '풀다'는 행동에 관한 규범에 사용된 말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엣세네파, 그리고 헤롯당과 열심당 등 여러 집단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열심당원이 있었는데, 바로 셀롯이라 하는 시몬입니다. 셀롯은 열심당원이란 뜻입니다. 이 집단들 가운데 바리새파는 다시 샴마이파와 힐렐파로 나누어집니다. 샴마이파는 규율에 대해 아주 엄격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얽매이게 한다'는 말을 들었고, 반면에 힐렐파는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규율의 얽매임에서 '푼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랍비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하면, '매다'라는 말은 '금지하다' 또는 '금지하여 불법임을 선포하다'라는 뜻으로 쓰였고, '풀다'라는 말은 '허락하다' 혹은 '허락하여 합법임을 선포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학자[플루머]는 '맨다'는 것을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푼다'는 것은 허락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이로 볼 때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말씀은 교회의 치리에 관한 것으로 어떤 문제에 대해 교회의 치리가 정당하게 이뤄지면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인정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치리에 대해 한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어떤 사본에는 '네 형제가 네게 죄를 범하거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형제는 혈족 관계라기보다는 믿음 안에서 형제 된 자를 말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마 12:50 ; 고전 1:10).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범하면 먼저 그와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허물을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권고는 그 사람을 비난할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를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할 목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충고를 받아들이면 그를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이고 아울러 그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곧 예수님의 말씀처럼 '형제를 얻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 말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8:16). 사실 개인적으로 잘못을 지적할 경우 상대방이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들을 증인들로 삼고 죄를 범한 사람의 잘못을 깨닫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때도 권고하는 사람들은 정죄하는 태도를 버려야 하며 될 수 있는 한 비밀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교회에 말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8:17). 이는 교회가 공식적으로 개입하여 잘못을 범한 사람을 권고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그 문제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해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를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셨습니다(마 18:17). 이는 그 사람을 출교 시켜 다른 형제들이 그와의 교제를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롬 16:17 ; 고전 5:9-13). 출교란 본래 '회당에서 쫓아내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회당은 예배뿐만 아니라 재판이나 교육의 장소로서 그 지역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출교는 곧 유대 사회에서의 추방을 의미합니다(요 9:22). 출교를 당한 자는 회당의 출입은 물론이고 같은 유대인과의 교제나 매매가 금지되는 등 이방인과 세리처럼 취급을 당했습니다. 교회에서 출교를 당한 자 역시 더 이상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그의 출입은 물론이고 그와의 교제도 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질서는 무너지고 교회의 권위는 추락할 것입니다. 하지만 출교를 당했다 하더라도 후에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교회는 다시 그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출교는 그를 파멸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고전 5:5).

19절 역시 교회의 치리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교회의 치리권은 어느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두 사람 이상이 관계되어야 합니다. 즉 치리의 권세는 교회에게 주신 권세이지 개인에게 주신 권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범한 사람을 치리 하기 전에 교회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치리의 권세를 가진 교회의 구성원 역시 불완전하기 때문에 잘못된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치리가 정당한 판결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올바른 판정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실 것이며, 그렇게 내려진 판정에 대하여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물론 19절의 말씀은 교회의 치리를 포함하여 교회의 모든 일에 대한 기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만일 교회가 특정한 문제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순조롭게 해 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기도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기도의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응답은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지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지(요일 5:14 ; 약 4:3) 사람 수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두 사람이라도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마 18:19).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도 그들 가운데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18:20).

예수님께서 교회와 함께 하시는 것은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두 세 사람이 모였다 해도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 그들의 모임은 귀하고 거룩한 것이 되지만 비록 천 명, 만 명의 사람이 모였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으면 그 모임은 그냥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복음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곧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고전 1:2 ; 살전 1:1 ; 고후 11:8).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몸이요 지체들입니다(고전 6:15 ; 2:27). 그러므로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교회에 주신 치리의 권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권세는 어느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해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순결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권세는 교회를 위해 사용되어야지 일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치리의 권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모임이 될 것이며,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예음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