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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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3장 33절 ~ 14장 13절[개역개정]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1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2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들이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그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이니라
3 그대의 손에 떡 열 개와 과자와 꿀 한 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그가 그대에게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를 알게 하리라
4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5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 들었으므로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 그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
6 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
7 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8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9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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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여로보암은 이전 사람들보다 더 악을 행했습니다(왕상 14:9). 남유다의 르호보암 역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는데(왕상 14:22 ; 대하 12:1), 백성들이 그를 본받아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를 저질러서 하나님을 진노케 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어떤 벌을 받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1.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습니다. 이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백성이 제사를 드리려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다 보면 그들의 마음이 돌아서서 자신을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상의를 한 끝에 과거 출애굽한 백성이 시내산에서 한 것처럼(출 32:4)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 대신 섬기게 했습니다(왕상 12:28).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만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한 규정(출 28:1-4)을 무시하고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으며,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8월 15일을 이스라엘의 절기로 정했습니다(왕상 12:31-33). 이는 백성들에게서 여호와의 신앙을 완전히 지워버리려는 수작이었습니다. 이후로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기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에서 우상을 섬기는 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 11:38)고 약속하셨지만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얻기 위해 오히려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여로보암과 달리 처음부터 우상을 숭배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자(대하 11:17)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대하 12:1). 백성들도 그를 본받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산과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들을 짓고, 각종 우상들을 세워 섬겼습니다(왕상 14:23). 사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출애굽 전이스라엘은 이미 숫염소 우상 등을 섬기며 제사하고 있었습니다(레 17:7). 출애굽 후에도 그들의 우상숭배는 계속되었는데,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섬긴 것을 비롯해 줄곧 우상들을 숭배했습니다(행 7:42, 43).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집트에 행하신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출 13:21).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신 1:33).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홍해가 갈라져 좌우에 벽처럼 되고 그 가운데 마른땅을 걸어서 건너기도 했습니다(출 14:22). 이 사건은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지어낸 이야기나 과장된 이야기로 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직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 15:11). 이후에도 백성들은 광야생활 동안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먹었고,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셨습니다(신 8:15, 16). 이처럼 매일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들을 체험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우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사사시대 때는 우상의 늪에 빠져 있었고, 사무엘을 거쳐 다윗에 이르러 신앙이 회복되고 견고해지는가 싶더니 솔로몬에 의해 다시 곤두박질쳤습니다. 솔로몬 이후 북이스라엘은 아예 우상의 길로 접어들었고, 남유다는 여호와 신앙과 우상숭배를 반복하다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우상숭배는 만연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조차도 알게 모르게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상이라고 해서 어떤 형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재물이나 권력, 명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두려워하거나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현실에 관한 문제가 중요하며, 재물 역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우선일 수 없고 우선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선순위가 바뀌는 순간이 곧 우상숭배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2. 이방 풍속을 따르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민족의 신들을 섬기지 말고 그들의 풍속도 따르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레 18:3). 이방 민족의 풍속은 주로 성과 관련된 것들로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들을 토해 냈다'(레 18:25)고 할 정도로 심히 가증스러웠습니다(레 18:30). 그런데 남유다는 우상숭배뿐만 아니라 가나안 민족의 모든 가증한 풍속을 따르기까지 했습니다(왕상 14:24). 그중의 하나가 '남색하는 자'입니다(왕상 14:24). 구약에서 남색하는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카데쉬(קָדֵשׁ)'입니다. 이 단어는 '구별하다' 혹은 '거룩하다'는 의미의 '카다쉬(קָדַשׁ)'에서 유래했으며, 문자적으로는 '거룩한 남자'란 뜻입니다. 남색하는 자와 거룩한 남자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남색하는 자를 '카다쉬'라고 한 것은 그가 신전에서 종사하는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종교에서 사제의 주된 역할은 신전에 오는 사람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었는데, 이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행위로 가나안 종교들 특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종교에서 이러한 행위가 제사 의식에 필수적으로 동반되었습니다(왕하 23:7). 그래서 이들을 남창(신 23:17 ; 왕하 23:7 ; 욥 36:14)이라 불렀는데, 이러한 신전 남창이 유다에 있었다는 것은 우상 숭배가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줍니다(왕상 14:22).
오늘날에도 세상 풍속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복주의신앙이나 혼합주의신앙입니다. 기복주의신앙이란 신앙의 목적을 복에 두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도 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때로는 복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는 부자가 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눅 6:20). 세상 사람들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합니다(행 20:35).
그리고 혼합주의신앙은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것입니다(왕하 17:33). 예를 들어, 교회에 다니면서도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그런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나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조상을 모신다는 명목 하에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고전 10:20).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귀신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신앙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사실만 강조하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바알인지 아세라인 맘몬인지도 모른 체 무조건 믿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신앙적인 열심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기복주의나 혼합주의신앙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3. 죄의 결과는 파멸입니다.
우상숭배는 종종 간음에 비유되는데(렘 3:8 ; 겔 16:32), 이는 그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간음이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상대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제정하신 결혼제도(창 2:24 ; 마 19:16)를 파괴하는 중범죄로 율법에서는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신 22:22-24 ; 레 20:10). 우상숭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레 20:2).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내릴 심판을 예언케 하셨는데, 아히야는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예언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로보암의 멸망을 예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재앙을 내려 그 집에 속한 자들을 거름 더미 치우듯 다 쓸어 버리겠고 그 시체들은 개나 새가 먹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왕상 14:10, 11). 다만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는 무덤에 묻히게 될 것인데 그가 여로보암의 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입니다(왕상 14:13).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아비야는 예루살렘으로 절기를 지키러 올라가는 사람들을 금지시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했으며, 통행을 막기 위해 설치한 장애물들을 치워버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여로보암은 유다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하나님께서 그를 치심으로 말미암아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유다 왕은 여로보암의 아들과 이름이 같은 아비야[아비얌]였습니다(대하 13:18-20).
르호보암 역시 징계를 받았는데(대하 12:5), 그가 왕위에 오른 지 5년째 되는 해 이집트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들과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들을 모두 가져갔습니다. 다만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였고 유다에 선한 일도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다 멸하지는 않으셨습니다(대하 12:7, 12). 만일 여로보암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켰더라면 그의 왕조는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여로보암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경고했을 때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켰다면 그의 왕조는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했고,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결국 멸망하게 되었습니다(왕상 13: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은 비록 분열된 왕국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왕국의 초대 왕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이 다윗과 같은 왕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 11:38)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뿐만 아니라 그 집안이 몰락을 했으며 백성들은 그 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왕상 14:15).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 신앙의 중심지였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부국강병한 이스라엘의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김으로 그 명맥을 잇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여로보암이나 르호보암처럼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또 자신의 영달을 위해 하나님을 섬겨서도 안 됩니다. 혹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 혹은 하나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망령된 삶이 아니라 다윗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자신의 영달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