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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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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장 39 ~ 47절[개역개정]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환자를 고치는 것이 유대인들의 반발을 살 것을 아셨지만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치료하는 일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일의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마 12:12). 하지만 유대인들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경우만 치료를 허용했을 뿐 그 외의 치료행위에 대해서는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한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요 5:17). 하나님께서 항상 일하고 계시니 예수님도 안식일에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셨는데(창 2:2), 그것은 창조 사역의 쉼을 말하는 것이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세계를 보존하시고 다스리는 일을 지금까지 해오셨고,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유대인들을 더욱 화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심으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기 때문입니다(요 5:18). 이는 사실이었지만(빌 2:6) 이를 알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 여기고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신성 모독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습니다(마 26:65, 66).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곧 하나님께 하시는 일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그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요 14:10). 따라서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 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등하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에 관한 증언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에 대한 첫 번째 증언 : 성부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요 5:31). 율법에 따르면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최소 두 사람의 증언이 필요했습니다(신 19:15 ; 요 8:17). 이것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던 제도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위해 증언하셔도 그 증언은 진실합니다(요 8:14).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사람의 증언이 필요치 않습니다(요 5:34).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요 8:13). 예수님께서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못하다’라고 하신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자신을 위해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다고 하셨습니다(요 5:32).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지만 학자들의 대다수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 막 1:11 ; 눅 3:22)고 하심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요일 5:9).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분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보기 원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요 1:18). 따라서 예수님을 본 것은 하나님을 본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요 14:9).

2. 예수님에 대한 두 번째 증언 : 세례 요한

유대인 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을 그에게 보낸 적이 있습니다(요 1:19). 그때 요한은 자신을 ‘선지자 이사야의 말(사 40:3)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요 1:23).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요 1:20)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기 위해 그의 앞에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요 1:7 ; 3:28). 세례 요한은 켜서 비추는 등불 즉 타오르면서 빛을 내는 등불로서 역할을 했습니다(요 5:34). 등불은 일시적이며 제한적입니다. 심지가 다 타고나면 꺼질 수밖에 없고, 그 빛이 비취는 범위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로서(계 21:23) 세상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요 8:12). 요한은 그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으니 이는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요 1:7 ; 5:34).

3. 예수님에 대한 세 번째 증언 :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요 5:36). 그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즉,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신 일 등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요 10:37, 38).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들로 사도 요한은 이를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표적이란 어떤 일을 증명하기 위해 행해진 기적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역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표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지도자들처럼 오히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잃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에 대한 네 번째 증언 : 성경

유대인들은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구약을 말합니다. 신약은 아직 기록되기 전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고 계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로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을 보여줍니다(요 5:42). 그들은 진리보다 거짓을 더 사랑했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예를 더 소중히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요 5:44).

성경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행 16:31).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죄가 없지만(히 4:15)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요 3:16 ; 5:24).

5. 예수님에 대한 다섯 번째 증언 : 모세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율법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한 모세를 존중하고 모세의 제자임을 스스로 자처하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요 9:28).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세가 그리스도에 관해 기록한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는 모세를 믿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만일 그들이 모세를 믿었다면 모세가 증언한 예수님도 믿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요 3:16).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것을 친히 증언하셨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었던 세례 요한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모세도, 그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성경도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를 믿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요 5:24). 그러므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이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은 자신의 영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것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사 29:13 ; 막 7:6).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고 종교적인 열심만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마 12:7 ; 호 6:6) 유대인들은 자비보단 제사를 드리는 데 더 열심이었습니다. 제사만 드리면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다했다고 생각했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종교적 열심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게 아닙니다.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물 같은 기름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미 6:8).  사실 이런 삶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