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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 청함을 입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2023. 2. 23.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22장 1절 ~ 14절[개역개정]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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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천국에 관한 비유로 일명 '혼인잔치의 비유'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혼인잔치에 빗대어 천국을 설명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당시 이스라엘의 혼인은 세 단계의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약혼'으로 대부분 당사자들이 나이가 어릴 때 신랑의 아버지와 신부 아버지 사이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정혼'으로 이는 약혼한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인데, 정혼이 성립되면 결혼한 사이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일 년 동안은 함께 살 수가 없었습니다(마 1:18). 그리고 이때 사람들에게 혼인 잔치에 참석하도록 초청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혼인'으로 정혼한 지 일 년이 지나면 이루어졌습니다. 결혼식 때 신랑은 신부의 집으로 찾아가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혼인잔치를 벌이게 되는데, 이때 전에 초청했던 사람들을 오게 했습니다.

어떤 왕이 신하들을 보내 초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참석을 거부했습니다. 다시 다른 신하들을 보내 잔치가 풍성하게 준비되었으니 오라고 하자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한 사람은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사업하러 갔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왕이 베푼 잔치에 초청을 받고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질병이나 사고 등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만사를 제처 놓고 참석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을 보러 갔습니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왕이 보낸 신하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들이 더 이상 왕의 백성이기를 거절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에 왕은 화가 나서 군대를 보내 그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신하들에게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초대받은 사람들은 자격이 없으니 너희는 길거리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잔치에 초대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신하들이 길에 나가서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그중에는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들도 있었고, 악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얼마 후 왕이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려고 들어왔다가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예복을 입고 참석하는 것이 도리였지만 길거리에서 바로 온 사람들이 예복을 입고 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이 그들에게 예복을 나눠주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왕이 그에게 '어째서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왕은 신하들에게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청함을 받은 자는 많습니다.

혼인잔치에 처음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마 15:24).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아 다른 민족보다 먼저 천국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후에 천국복음은 이방인들로 향하게 되었는데(행 13:46 ; 롬 11:11), 나중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는 천국의 복음이 유대인이나 이방인,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 선한 자나 악한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음을 의미합니다(막 16:15). 복음에는 순서가 있어도 걸코 차별은 없습니다.

2. 택함을 입은 자는 적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벧후 3:9)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으로 초청하시지만 그것을 거부한 사람들 즉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롬 10:16 ; 벧전 4:17). 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이유는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에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돌아보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혼인잔치 곧 천국에 전혀 관심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대신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갔다고 했는데, 이는 그들이 천국보다 이 세상의 것들에 더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왕들이 보낸 신하들을 모욕하고 죽였다고 했습니다. 천국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천국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혼에 관한 문제는 항상 뒷전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생명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 즉시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럼에도 미래의 시간들이 마치 자기 손안에 있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곡식을 저장해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있는 곳간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편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겨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면 네가 지금까지 쌓아 둔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부자가 어리석은 이유는 미래의 시간들이 마치 자기 손안에 있는 양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시 127:1). 사람이 보기에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능히 할 수 있고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시면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사람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수명이 칠십 년이고, 힘이 있으면 팔십 년이라고 하지만(시 90:10)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떠나는 데는 순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떠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각 사람은 자신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든지 아니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 16:27 ; 롬 2:6-8).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마 25:46 ; 요 5:29). 그럼에도 영혼이나 영원한 세계보다 언젠가 떠나야 할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마치 인생의 전부인양 살아가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우선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 역시 바깥 어두운 곳에 내 던져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왕이 베푼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 예복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의의 옷이요 구원의 옷입니다(사 61:10 ; 롬 3:24).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기의 의로 구원받으려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의롭다고 믿었고, 세리나 이방인들을 멸시했습니다(눅 18:9). 하지만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의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심신을 수양하고, 생활을 절제하며,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방법도 없고, 다른 길도 없습니다(갈 2:16).

또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엡 4:22-24). 이는 마치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먼저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려야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던 옛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새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롬 1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으로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그 초대에 응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많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보다 세상의 것들에 더 관심을 두는 사람들입니다. 또 잔치에는 참석했는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비유에는 한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려는 자들일 수도 있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지 않고 여전히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왕이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 앞에  모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추수 때에 농부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듯 세상 끝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어 악인들은 풀무 불(불못, 계 20:15) 곧 지옥에 던져 넣을 것이고, 의인들은 곳간(마 13:30)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사람들은 재물보다는 영원한 생명에 그리고 이 세상보다는 영원한 세계에 더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새사람으로 옷 입은 자들의 마땅한 삶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