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음TV/주일예배설교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2023. 2. 26.
성경본문 보기

열왕기상 19장 1절 ~ 8절[개역개정]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설교문 보기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은 엘리야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여호와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을 했고, 대결에서 패한 바알 선지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아합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전령을 보내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자기 생명을 지키려고 브엘세바로 도망을 갔습니다. 브엘세바는 남유다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입니다(삼상 3:20 ; 삼하 24:2). 북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남유다 그것도 최남단까지 도망쳤다는 것은 그만큼 이세벨을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광야로 하룻길을 더 들어갔습니다. 하룻길은 3-40Km 되는 거리입니다. 그리고 한 로뎀나무 밑에 앉아 하나님께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로뎀나무는 광야나 사막에서 자라는 유일한 관목으로 잎이 무성하진 않지만 잔가지가 많아서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 줍니다.

며칠 전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보여주었던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광야 한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구하는 엘리야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살기 위해 도망쳤던 엘리야는 왜 하나님께 죽기를 간청했던 것일까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제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 알게 되었고, 아합과 이세벨도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여전히 백성들은 신앙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으며, 이세벨의 위협은 더욱 거세졌습니다(왕상 19:2). 이로 인해 엘리야는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졌고 더 이상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목숨을 거둬 가시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섭리하시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돌봐주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한 후에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엘리야는 누군가 자신을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그가 보니 자신의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한 천사가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그릿 시냇가에 있을 때는 까마귀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았고 시돈에서는 이방인 과부로부터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이제는 천사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공급받은 것처럼 엘리야도 광야에서 음식을 제공받았습니다. 비록 엘리야는 죽기를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지친 그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힘을 북돋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고 어떤 상태에 있든지 지켜주시고 돌봐주십니다. 비록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방황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지켜주시는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5, 6).

엘리야가 있던 광야나 사막지역은 햇볕이 강해 화상을 입을 정도라고 합니다. 요나는 머리 위에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 때문에 고통을 호소한 바 있습니다(욘 4:8). 하지만 그늘이 있으면 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욘 4:6). 밤의 달 역시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학자에 의하면 근동 지역의 달빛에 노출되어 잠을 자면 현기증을 느끼게 되고 심하면 정신이 이상해지며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늘이 되셔서 해와 달의 위협 곧 세상의 모든 환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될 때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지쳐있는 자들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엘리야는 천사가 준비한 빵과 물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잠'은 몸이 휴식을 취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그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시 127:2).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편히 잠을 잘 수 있도록 그 마음에 평안을 허락해 주십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40년 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한 여성[Merry Slessor]이 있습니다. 그녀는 밀림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나뭇가지 몇 개를 얼기설기 얹어서 침대를 삼고 더러운 옥수수 껍질로 이불을 하고서 쥐와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방에 누웠다... 밖에는 양과 염소, 소들이 떼 지어 모여 있는 그런 곳에서 잠을 잘 때, 그날 밤 내가 잠을 설쳤다면 사람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정 아주 고요하고 편안한 밤을 지냈다". 그녀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편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밤새도록 지켜 주셔서 위기의 상황에서도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시 3:5).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때만이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지쳐있을 때 다른 곳에서 안식을 찾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혼과 육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 14:27).

3. 하나님은 절망 중에 있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천사는 다시 잠든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에게 아직도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제 더 바랄 것이 없으니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할 일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 그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동시에 아직 그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에게 남아있는 사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산이라 일컬어지는 호렙 산으로 가서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렙 산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 산과 동일한 산으로(출 31:18 ; 왕상 8:9) 하나님께서는 그를 호렙 산으로 인도하시고 거기서 희망을 보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40일 동안 밤낮을 걸어 호렙 산에 도착을 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호렙 산까지는 보통 2주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신 1:2), 왜 한 달이 넘게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엘리야는 40일이 걸려 호렙산에 도착을 했고, 그곳에 있는 어느 굴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왜 그곳에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엘리야에게 할 일이 남아있음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선지자가 자신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외로움을 느끼며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사람들은 엘리야 외에도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오바댜가 숨겨 놓은 100명의 선지자들도 있었고,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7천 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엘리사가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마지막 사명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로 삼는 일입니다. 아울러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님시의 자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이 왕이 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아합과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자들을 파멸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이제 엘리야는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과 아직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절망한 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때로 우리의 계획이 틀어지고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좌절을 경험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 그 상황만을 바라보지 말고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시 121:1, 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의 포악한 왕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수백 명의 바알 선지자들 앞에서도 당당했던 엘리야였지만 그 역시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약 5:17). 사람은 죽음 앞에서 때론 두려워하고, 어렵고 외로운 일을 당할 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어합니다. 그럴 때 엘리야처럼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하나님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또 일어서야만 합니다.

약한 자에게 강함을 주시고, 절망한 자에게 희망을 주시고, 곤비한 자에게 쉼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