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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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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0장 13절 ~ 21절[개역개정]
13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14 아합이 이르되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이르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15 아합이 이에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계수하니 이백삼십이 명이요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계수하니 칠천 명이더라
16 그들이 정오에 나가니 벤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삼십이 명과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17 각 지방의 고관의 청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정탐꾼을 보냈더니 그들이 보고하여 이르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18 그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
19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에서 나가서
20 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과 더불어 도망하여 피하니라
21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이겼더라

 

설교문 보기

아사 왕이 남유다를 다스리고 있을 때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사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아람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당시의 아람 왕은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이었습니다(왕상 15:18). 본문에도 같은 이름이 등장하는데 앞에 언급한 벤하닷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고 그의 아들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구별하기 위해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을 벤하닷 1세라 하고, 그의 아들은 벤하닷 2세라고 부릅니다. 이 벤하닷 2세가 아합 왕 때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습니다. 이 위기를 이스라엘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1.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벤하닷은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사신들을 보내 조공을 요구했습니다. 아합이 그러겠다고 하자 벤하닷은 다시 사신들을 보내 이번엔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아합 왕은 장로들과 상의한 후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처음 요구한 것은 그대로 하겠지만 이번에 요구한 것은 들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신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벤하닷이 다시 아합에게 사람을 보내 사마리아를 완전히 파괴시키겠다고 위협하자 아합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왕상 20:11). '갑옷 입은 자'란 이제 막 전투 준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갑옷 벗는 자'란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갑옷을 벗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싸워보지도 않고 승리를 장담하지 말라'는 뜻으로 당시에 자주 사용되던 속담이었습니다.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우세한 병력만을 믿고 마치 승리한 것처럼 교만에 빠져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성 쯤은 쉽게 함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 중임에도 술을 마시고 취하기까지 했습니다(왕상 20:16). 하지만 그가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 승패가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삼상 17:47). 교만한 자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지만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쉽게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그 자리에 올랐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파멸만이 있을 뿐입니다(잠 16:18). 하나님께서는 거만한 자들을 비웃으시며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잠 3:34 ; 벧전 5:5).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2.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람의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치려고 전열을 갖추었을 때 한 선지자가 아합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왕상 20:13). '여호와'는 '자존자' 곧 '스스로 있는 자'란 뜻으로(출 3:14, 15) 누가 지어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밝히신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시작과 끝이 없으신 분, 처음이요 마지막이 되시는 분 그래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보여주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높으신 이름입니다(사 44:6 ; 느 9:5).

이집트 왕 바로는 모세로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 곧 '내 백성을 보내 절기를 지키게 하라'는 말을 듣고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순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출 5:2). 이러한 반응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를 여러 재앙을 통해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행하신 일들 곧 홍해를 가르고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전멸시킨 일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수 2:10, 11).

다윗은 골리앗과의 결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삼상 17:46). 세상 사람들 아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양을 치던 소년 다윗이 어려서부터 군사 훈련을 받은 전사요 키가 3미터에 가까운 거인인 데다, 완전 무장을 한 골리앗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다면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람에 비해 훨씬 열세에 있었던 이스라엘이 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합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전에 그들이 고백한 대로 여호와 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입니다(왕상 18:39).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는 불과 7천여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대규모 병력의 아람 군대를 이기게 하심으로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병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삼상 14:6). 2차 전쟁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내 1차 때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왕상 20:28).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아람 군대에 비해 작은 염소 두 떼에 지나지 않은 병력으로 10만여 명의 아람 군대를 무찔렀습니다(왕상 20:29).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승리케 하신 이유는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악한 길로 간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믿고 따라야 할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호 6:3). 세상에는 신이라 불리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고전 8:5)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일 뿐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고전 8:6 ; 사 44:6). 우리가 믿는 여호와는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신 6:4).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인생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진리이며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전쟁에서 패한 아람 왕 벤하닷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아합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테두리를 머리에 썼다는 것은 줄을 머리에 두르거나 목에 걸었다는 것으로 완전한 굴종의 표시입니다. 벤하닷은 자신을 아합의 종으로 자처하며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에 아합은 벤하닷을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벤하닷의 아버지(벤하닷 1세)가 빼앗았던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돌려주고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아합 왕을 위한 거리를 만드는 조건으로 벤하닷을 놓아주기까지 했습니다. 거리를 만든다는 것은 무역을 위한 시장을 건설한다는 의미로 사마리아에는 이미 아람 왕을 위한 거리가 조성되어 있었습니다(왕상 20:3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려는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멸시한 아람 왕 벤하닷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합은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작정한 아람 왕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임의대로 살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 사람들에게 인기 얻는 것을 더 좋아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안위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아합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합은 자신을 종으로 자처하며 목숨을 애걸하는 아람 왕의 모습에 우쭐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벤하닷의 종으로 자처했는데(왕상 20:4) 이제 전세가 완전히 역전이 되었으니 순간 우쭐해서 선심 쓰듯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아울러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아합은 벤하닷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모욕하며 속국으로 삼으려 한 것은 잊어버리고 그를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형제라 칭하기까지 했습니다(왕상 20:32).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을 형제라 부르며 그와 조약까지 맺는다는 것은 아합이 하나님의 영광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명예와 인기에만 연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용서나 관용은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엡 6:1). 이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을 보내 아합을 책망하고 그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을 놓아준 대가로 아합은 벤하닷의 목숨을 대신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람 백성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그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아람과의 3차 전쟁에서 패하고 아합은 그 전쟁에서 죽임을 당합니다(왕상 22: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합은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이는 교만한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일 아합이 다윗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해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사 103:8).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다 해도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지는 못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