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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2024.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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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3장 9절 ~ 22절 [개역개정]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
13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
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17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18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19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
20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설교문 보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개역개정)에는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열납(悅納)'입니다(시 19:14 ; 사 58:5). 이 낱말은 '기쁘게 받음'이라는 뜻으로, 본문 11절의 ‘기쁘게 받으심’을 이전 성경(개역)에서는 ‘열납’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나 예물을 드릴 때는 그것이 열납이 되도록 즉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절기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절기입니다. 부림절(에 9:28)이나 수전들(요 10:22) 등이 이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절기를 ‘여호와의 절기’라고 하는데(레 23:4), 여기서 절기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에드’는 ‘정한한 때’(출 23:15)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정한 때 곧 그 절기에 제물과 화제를 삼가 바치도록 하셨습니다(민 28:2). 정한 시기에 잊지 말고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민 9:2).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 곧 여호와의 절기는 모두 일곱 가지로 그중에서 본문은 초실절과 맥추절에 관한 규례입니다. 초실절은 일 년 중 가장 먼저 수확하는 곡물 곧 보리의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드리는 첫 열매의 절기입니다(레 23:11). 이 절기는 무교절 기간에 있는 안식일 다음 날 지켰습니다(레 23:15). 맥추절은 이날로부터 오십 일째 되는 날에 밀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레 23:16). 오늘날 교회에서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맥추절을 계승한 것으로 전반기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여호와의 절기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절기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절기들에 성회로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토록 하셨습니다(레 23:2 ; 민 28:26). 특히 매년 세 절기 곧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에는 이십 세 이상의 모든 남자가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절기를 지키도록 하셨습니다(출 23:14-17).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절기를 지키러 성전에 올라간 사이 대적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이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출 34:24).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스라엘을 침략지 못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침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에는 안식년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습니다. 육 년 동안 농사를 지은 땅은 칠 년째 되는 해에 쉬게 하는 것입니다(레 25:4-5). 밭에 파종을 해서도 안되고 과수원을 가꾸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에 사람들은 이렇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는 무엇을 먹으란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레 25:21). 걱정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규례도 정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라는 것입니다. 이날은 일 년 중 가장 바쁜 때인 밭을 갈 때나 파종할 때 그리고 수확기에도 쉬어야 했습니다.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출 34:21) 농부에게 있어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그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안식일만은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날은 여호와의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레 2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을 비롯하여 여호와의 절기들을 대부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절기들을 지킬 수도 없고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절기나 안식일 등은 장래 일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골 2:17). 참 형상이요 실체 이신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에 모형이나 그림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골 2:14-15).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안식일인 토요일 대신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그날에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날을 ‘주일’이라고 하는데, 이는 주의 날 즉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가리킵니다(계 1:10). 그럼에도 여전히 구약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에서도 안식일 문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 가운데는 안식일을 지키면서 주일도 지켰습니다. 그동안 목숨처럼 지켜왔던 안식일을 하루아침에 중단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에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주일만을 지켰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골 2:16). 또 “어떤 사람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라(롬 14:5)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가하고 주일을 지켜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이든 주일이든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롬 14:6 ; 고전 10:31). 모든 날은 다 주님의 것이고, 우리 역시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롬 14:8).

비록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안식일 대신 주일을 지키고 구약의 절기 대신 교회력을 따르고 있지만 안식일이나 절기에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서 예배드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히 10:25).

2.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각 절기는 그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드리는 예물도 절기마다 정해져 있습니다(민 28:16-29:39). 사람이 임의대로 예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절기에는 번제가 공통으로 들어갑니다. 번제는 희생 제물의 가죽만 남기고 전부 태워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이를 화제(火祭)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화제는 제물을 불살라 바치는 것으로 이는 제사의 종류가 아니라 요제(搖祭)나 거제(擧祭)처럼 제사를 드리는 방법입니다. 화제는 짐승뿐만 아니라 소제의 예물에도 사용되었습니다(레 2:1-2). 이렇게 화제로 드려진 제물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레 23:18). 사실 제물을 태우는 냄새 자체는 향기로운 냄새와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정해진 규례에 따라 드려진 예물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짐승을 예물로 드리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히 9:12 ; 10:12). 또 소제를 예물로 드리지도 않습니다. 소제는 짐승과 달리 피 없는 곡물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짐승이나 곡식 대신 헌금을 드립니다. 물론 헌금도 구약 시대에 이미 있었습니다(대하 34:9, 14). 헌금이란 '하나님께 바치는 돈'이란 뜻입니다. 헌금을 다른 말로 헌물(레 23:38 ; 민 5:15 등) 혹은 예물(출 25:2 ; 마 5:23 등) 이라고 하는데, 구약 시대에는 짐승이나 곡물, 금은(민 7:31 ; 31:50 등) 등을 하나님께 예물로 바쳤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주로 화폐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사용했습니다(막 12:42 ; 눅 21:2).

예수님 당시에는 성전 뜰에 나팔 모양의 헌금함이 열세 개가 있었는데, 각 헌금함에는 어떤 용도를 위한 것인지가 표시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헌금함은 놋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동전을 넣는 순간 소리가 났고, 헌금을 많이 할수록 그 소리는 요란했을 겁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 가운데는 헌금을 많이 하므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마 6:2, 5 등).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할 때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그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레 7:18).

헌금은 금액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 형편에 맞게 하면 됩니다. 다만 아까워하거나 억지로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런 헌금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십니다(고후 9:7). 하나님께 헌금을 할 때는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그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물이 될 것입니다(시 69:31).

3. 하나님께서 정하신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실절의 예물 곧 수확한 곡물의 첫 단을 드리기 전에는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레 23:14). 이 명령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토지 즉 땅에 대해서 그것은 ‘다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레 25:23). 토지뿐만 아니라 세상의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단지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눅 12:42).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일 년 중 가장 먼저 수확한 곡물의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레 14:34) 그 땅에서 수확할 수 있도록 돌봐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고전 15:20). 예수님께서는 무교절 기간에 있는 안식일 다음 날 곧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 흔들어 바치는 그 시간(레 23:11)에 부활하셨습니다(막 16:9). 첫 열매는 모든 열매의 대표성을 띱니다. 그래서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모든 열매를 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도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즉 교회의 머리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그의 몸인 교회 즉 그를 믿고 따르는 성도 역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골 1:18).

그리고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는 것입니다(레 23:22). 이러한 규정은 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포도원이나 감람원 등 모든 밭과 과수원에 적용됩니다(레 19:10 ; 신 24:20-21). 이는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을 위한 규정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라는 것입니다(신 15:11). 이것이 곧 율법의 근본정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책망하셨습니다(마 23:23). 그들은 종교적으로 매우 열심이었지만, 율법의 더 중요한 부분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행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와 제물과 찬양을 받지 않으시고(암 5:21-23) 기도도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사 1:15).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물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의를 행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잠 21:3 ; 호 6:6).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정의 대신 불의를 행했으며,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고 외면했습니다(사 1:16-17).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을 소돔의 관원들이요 고모라의 백성들이라 부르면서 하나님의 법 곧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사 1:10).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 사람들처럼 산다면 우리 역시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이라 책망받았던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의 예배와 제물과 찬양을 받지 않으시고(암 5:21-23) 기도도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사 1: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나 예물을 드릴 때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드리냐에 따라 그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도 있고, 성전 마당만 밟는 공허하고 헛된 예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사 1:12).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 곧 정의를 행하고 긍휼을 베풀며 겸손하게 행해야 합니다(미 6:8).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롬 12:1). 그럴 때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