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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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장 111절 ~ 15절 [개역개정]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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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기자는 8장에서 첫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첫 언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율법을 기초로 합니다(출 24:7).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 곧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세워진 언약(눅 22:20)으로 복음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고후 3:6).
첫 언약 곧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8장에서 세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첫째, 첫 언약은 모형과 그림자이지만(히 8:5) 새 언약은 참 형상이고(히 10:1) 둘째, 첫 언약은 돌판에 새겼으나(출 32:15, 16)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되었으며(히 8:10) 셋째, 첫 언약은 죄를 기억나게 하지만(히 10:3) 새 언약은 죄를 더 이상 기억나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히 8:12). 계속해서 9장에서도 첫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히브리서 기자는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섬기는 예법이란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에 관한 규례를 말하는 것이고, 세상에 속한 성소란 제사가 시행되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성소는 두 장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째 장막을 성소라고 합니다(히 9:2). 여기에는 등잔대와 상과 향단이 있습니다. 등잔대는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어둠의 권세 아래 있던 자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합니다(요 8:12). 아울러 성도의 빛 된 생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5:14-16). 제사장들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대에 불을 밝히되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했습니다(출 27:20, 21).
상은 떡을 올려놓기 위한 것으로, 일명 ‘순결한 상’이라고 불렸습니다(출 24:6). 상 위에는 열두 개의 떡을 두 줄로 진설했는데, 이 떡을 진설병이라고 합니다. 이 떡은 ‘생명의 떡’(요 6:48)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고 생명을 유지했듯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생명의 떡’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그의 말씀을 먹음으로 새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육을 위하여 양식을 먹듯, 영을 위하여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이 떡은 매 안식일마다 교체했는데(레 24:8), 떡을 교체할 때는 미리 새로운 떡을 준비한 후 기존에 있던 떡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새로운 떡을 올려놓았습니다. 따라서 상 위에는 항상 진설병이 놓여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날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고 그분의 말씀과 함께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향단은 향을 사르기 위한 제단으로, 향을 태우는 것은 기도를 예표합니다(계 5:8).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이 단에 향을 살랐습니다(출 30:7-8). 이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2절에서는 향단에 대한 언급이 없고 등잔대와 상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지는 진설병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장막(히 9:7)은 둘째 휘장 뒤에 있는 곳으로 지성소라 일컫습니다(히 9:3). 여기에는 언약궤와 그것을 덮는 속죄소가 있습니다(히 9:5). 히브리서 기자는 이 지성소에 금향로 곧 향단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소에 있어야 할 금향로를 왜 지성소에 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일까요? 그것은 금향로와 언약궤가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출 30;6). 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곧 속죄일에 속죄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리는데(레 16:14), 그전에 향을 피운 향로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분향하여 그 연기로 속죄소를 가리도록 해야 했습니다(레 16:12-13). 이처럼 향단이 비록 첫째 장막 곧 성소에 있지만 언약궤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둘째 장막 곧 지성소에 속한 기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언약궤는 ‘증거궤’(출 25:22 ; 26:33) 혹은 ‘법궤’(레 16:2)로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증거의 판’(출 34:29)이자 율법을 대표하는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이 그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신 10:5). 이 언약궤 앞에 만나를 담은 항아리(출 16:34)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놓았고(민 17:4, 10), 그 옆에 율법을 기록한 책을 두었습니다(신 31:26).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언약궤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언약의 돌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히 9:3, 4). 전승에 따르면, 본래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만을 넣었는데(출 25:16 ; 신 10:2), 고핫 자손들이 언약궤를 운반할 때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따로 가지고 가기 불편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랬는지 법궤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 후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법궤를 성전 안 지성소에 두기 위하여 법궤를 열어보니 두 돌판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없어졌다고 합니다(왕상 8:9).
이 언약궤 위에 순금으로 만들어진 속죄소(판)가 덮여 있는데(히 9:5), 속죄소란 ‘죄를 속량 하는 장소’ 혹은 ‘지은 죄를 덮어주고 잊어버리는 장소’를 말합니다. 그래서 속죄소를 '은혜의 보좌'라고도 합니다(히 4:16). 이 위에 날개를 펴고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그룹들의 형상이 있는데,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를 수호하는 존재로 속죄소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임을 보여줍니다(삼상 4:4 ; 시 80:1 ; 99:1).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짐승의 피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 피는 대제사장 자신과 백성의 허물 곧 모르고 지은 죄를 위하여 드리는 피입니다(레 16:14-15 ; 히 9:7). 대제사장 역시 죄인이기 때문에 그를 위한 속죄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성막에는 언약궤와 그것을 덮는 속죄소, 그리고 등잔대와 상과 향단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기구들에 공통으로 사용된 재료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순금입니다(출 25:11, 17, 24, 31 ; 30:3). ‘순금’이란 ‘정금’이라고도 하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금’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믿음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히 11:6). 그리고 그 믿음은 순수해야 합니다.
이처럼 첫 언약인 옛 언약에도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에 관한 규례들이 있고, 그 제사가 시행되는 장소 곧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첫 장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을 성령께서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히 9:8). 여기서 ‘첫 장막’은 지상에 세워진 성막 곧 성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란 장막의 두 번째 칸인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 장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이 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첫 장막은 성소와 지성소 나뉘어 있고, 중간에 그룹이 새겨진 휘장이 쳐져 있습니다. 이 휘장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휘장을 통해야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그리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것도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히 9:7). 만일 이러한 규례를 어기면 비록 대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죽임을 당했습니다(레 16:2).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자유롭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이 휘장의 한가운데가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마 27:51 ; 막 15:38 ; 눅 23:45). 이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합니다(히 10:20).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살아있는 길이 열렸습니다(10:20). 누구든지 예수의 보혈을 힘입어 담대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히 10:19). 이로써 성막에 관한 옛 언약의 규례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라고 했습니다(히 9:9). 비유란 어떤 사물에 대해 그것과 닮은 것을 곁에 두고 비교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원형과 실체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를 의미합니다(히 8:5). 첫 장막 즉 세상에 속한 성소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막에 관한 옛 언약의 규례에 따라 드려 지는 예물과 제사로는 섬기는 자의 양심까지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다만 먹고 마시는 것과 몸을 씻는 여러 가지 외적인 의식에 불과한 것으로서 개혁할 때까지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새 언약을 세울 때까지만 적용되는 규례들입니다(히 9:10). 우리의 양심을 그 죽은 행실로부터 깨끗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히 9:14).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히 5:10 ; 9:11)께서는 구약의 대제사장처럼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 9:12).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들을 대속하기 위해 죽으사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영원한 기업의 약속 곧 영원한 구원의 약속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지은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의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 없이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처럼 죄인은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죄로 오염된 사람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공로를 의지할 때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외에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 위해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누구나 그리고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 10:20). 그리고 많은 사람의 죄를 없애려고 단번에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히 9:28). 그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 자들은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살후 1:8-9).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