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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2024. 8. 11.

성경본문 보기

사도행전 5장 1절 ~ 11절 [개역개정]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설교문 보기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분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그 누구도 자기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가진 것을 모두 공동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중에는 자기의 집과 밭을 팔아 그 판 값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는데, 구브로(키프로스) 출신의 요셉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를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 불렀습니다(행 4:36). 그는 바울과 함께 안디옥에서 사역한 바로 그 바나바입니다(행 11:25-26).

아나니아라는 사람도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를 팔아서 그 판 값을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아나니아 부부는 죽임을 당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소유까지 팔았는데 복은 고사하고 죽임을 당하다니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살펴보겠습니다.

아나니아는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자기 소유를 팔아 교회를 위해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돈을 받고 보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탄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것입니다(행 5:3). 그래서 그 판 값의 일부를 떼어 놓고 나머지만 가져왔습니다. 이 사실을 그의 아내 삽비라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베드로입니다. 성령께서 그 사실을 베드로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말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3-4) 아나니아가 땅을 팔아 헌금을 한 것은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결정한 것입니다. 땅을 팔지 않았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의 소유이기에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땅을 판 후에도 그 값에서 얼마를 하겠다고 정하면 됩니다. 그렇게 아나니아는 땅을 팔아 그 값의 전부를 헌금하기로 마음에 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땅값의 일부를 감추고 나머지만 교회에 내놓았습니다. 이는 두 가지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것을 훔친 죄입니다.

아나니아가 땅을 팔아 그 값을 전부 헌금하기로 작정한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그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기자는 아나니아가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춘 행위를 가리켜 ‘횡령하다’는 뜻의 동사[노스피조마이(νοσφίζομαι)]’를 사용했습니다. 횡령이란 다른 사람의 소유를 불법으로 혹은 부당하게 가로채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같은 단어를 디도서에서는 ‘훔치다’로 번역했습니다(딛 2:10, 개역개정). 그리고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LXX) 여호수아 7장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수 7:1).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점령을 앞두고 백성들에게 '이 성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수 6:17, 18). 그런데 아간이란 사람이 그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에 손을 댔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수 7:11). 아나니아가 땅값을 전부 헌금하기로 작정한 순간 그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므로 그것에 손을 댄 것은 결국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속인 죄입니다.

아나니아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만을 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도들에게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싶었습니다. 반면에 그러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성령 곧 하나님을 속였다고 말합니다(행 5:3-4). 그가 교회에 내놓은 돈은 사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 즉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입니다. 아나니아는 그것에 손을 댄 것도 모자라 마치 그것이 자신이 드리려고 했던 헌금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아나니아는 베드로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지은 죄에 대해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처벌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훔친 죄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기만한 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는 공동체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는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수 7:25). 따라서 아나니아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이 그와 같은 짓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습니다(행 5:5, 11).

아나니아가 죽자 사람들은 그 시체를 싸서 들고나가 묻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들어왔습니다. 삽비라는 그동안 무슨 일어났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베드로가 그녀에게 묻습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이는 기회를 주려는 것입니다. 삽비라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그녀의 생사가 갈립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는 거짓을 택했습니다. 만일 그녀가 사실을 말했더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회개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며 그녀를 책망했습니다(행 5:9). 그들이 주의 영 곧 성령을 시험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모르실 거라 여겼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주의 영을 시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시험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랬습니다. 그들은 르비딤이란 곳에 이르러 마실 물이 없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시험하기도 했습니다(출 17:7).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기적들을 몸소 체험했고, 지금도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통해 그리고 날마다 그들과 함께하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을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믿음은 환경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으며 세상과 타협하거나 동조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히 11:38). 이는 ‘세상이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라는 의미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 부귀나 영화 등 그 어떤 것도 가치가 없으며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믿음 안에서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신앙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리려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리고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욱 견고히 세워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순수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는 신앙이 아니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묵묵히 나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또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 공동체는 아름답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그 공동체의 일원이며,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