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음TV/수요예배설교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2024. 8. 28.
성경본문 보기

사도행전 8장 14절 ~ 24절 [개역개정]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설교문 보기

급속도로 성장하던 예루살렘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위기를 맞습니다. 그날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 사도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유대와 사마리아 등지로 흩어졌습니다(행 8:1 ; 11:19). 그런데 이 박해는 결과적으로 복음의 확장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행 1:8)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을 벗어나 각처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8:4). 이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유대와 사마리아와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입니다.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인 빌립은 사마리아로 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것과 그가 행하는 표적들을 보면서 빌립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가운데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마술을 부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했습니다(행 8:10). 한마디로 시몬을 신격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고 여러 가지 표적들을 행하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이 행한 기적에 비하면 시몬이 행했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빌립은 사람들에게 붙어있던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며 중풍 병자를 비롯한 지체 장애인들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그러한 일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렇게 보이도록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의 마음을 미혹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빌립이 행하는 기적을 보며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게 가짜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시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빌립이 전한 복음에 귀를 기울였고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졌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합니다. 이 둘은 사도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들로 그만큼 사마리아 사람들의 개종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거나 이방인보다 더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심지어 유대 랍비들은 “사마리아의 떡을 먹는 것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라고 할 정도로 사마리아인들을 혐오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중에는 여전히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에 대해 편견을 가진 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유대인에게만 주어졌던 것처럼, 생명에 이르는 회개 역시 유대인에게만 주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박해로 흩어진 자들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고(행 11:19)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방문한 것을 문제 삼기도 했습니다(행 11:2-3). 그러나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만이 아닌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요 3:16).

사마리아에 도착한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하며 성령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나 아직 성령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도가 그들에게 손을 얹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고 마술사였던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자신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능을 달라고 했습니다(행 8:19). 시몬은 성령의 강림을 일종의 마술이라 여기고 돈으로 그러한 능력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행 8:20). 그럼에도 시몬이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행 8:21). 한마디로 시몬은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는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1. 표면적인 신앙입니다.

시몬은 빌립이 전한 복음을 믿고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13). 표면적으로 볼 때 그는 분명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로 성령을 받을 때 그는 성령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돈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일 시몬이 성령을 받았다면 그런 오해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시몬은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일까요?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았음에도 시몬은 여전히 '악의가 가득하며 불의에 얽매인'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행 8:23). 이는 그가 진정한 회개 없이 형식적으로 세례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시몬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빌립이 전한 복음이 아니라 그가 행한 표적과 능력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시몬은 빌립을 전심으로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행하시는 표적과 기사는 때로 신앙을 견고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표적과 능력은 복음을 확실히 증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복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시몬처럼 복음 그 자체보다 표적과 능력에 더 관심 갖는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습니다. 신앙의 본질보다 보이는 현상에 더 집착하게 되면 시몬처럼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이 아닌 신앙의 본질인 복음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2. 세속적인 신앙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인들과 로마 정부로부터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로부터 정식 종교로 인정을 받은 후에 기독교는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신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교회의 재산은 많아지게 되었고, 기독교 성직자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몇 년 전까지는 목사나 신부 등 종교인들에게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로마 정부에서 성직자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자 부자들 가운데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성직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성직 매매’라고 하는데, 이러한 일이 가장 성행했던 시기가 중세 시대입니다. 이때 교회에서 면죄부 판매 등과 같은 일이 벌어졌으며, 이러한 일들이 결국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성직 매매를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이 바로 마술사 시몬입니다. 그래서 성직 매매를 라틴어로 ‘simonia’라 하고, 영어로는 ‘simony’라고 부릅니다.

시몬은 모든 걸 돈과 결부시켜 생각했고,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까지도 돈으로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을 살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특히 영적인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시는(계 21:6 ; 22:17)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그러므로 시몬처럼 모든 걸 돈과 결부시켜 생각하고,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기복주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몬이 성령의 권능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재물과 명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권능을 이용하여 마술사 시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존경을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속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걸 기복신앙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세속적인 복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만일 그런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할 것입니다(마 19: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몬은 이 일로 베드로에게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 그러나 시몬에게 기회는 있습니다.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행 8:22). 하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개 대신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베드로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행 8:24). 그에게는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해하는 마음은 없고, 단지 죄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만 있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시몬은 이단자가 되어 베드로의 사역을 방해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을 미혹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시몬과 같은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복음보다 보이는 현상에 더 관심 갖는 표면적인 신앙이나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물질만능주의적인 신앙 그리고 영혼의 문제보다 이 땅에서의 복만을 추구하는 기복주의적인 신앙 등 잘못된 신앙을 갖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에디오피아 내시의 신앙은 우리가 본받을만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까지는 1,500~2,000km 정도 됩니다. 도로가 잘 정비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마차로 이동한다고 해도 한 달이 족히 걸립니다. 더욱이 그는 한 나라의 재무를 담당하는 고위 관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단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는 것은 그의 신앙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를 보내셨던 것처럼 빌립을 보내 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행 8:26, 29). 에디오피오 내시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나 복음을 들었고,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행 8:39). 전승에 의하면 그는 에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여왕까지 믿게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에디오피아 내시의 신앙은 세속적인 시몬의 신앙과 달리 순수했습니다.

어느 마을에 마음이 착하고 순수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밭에다 수박을 심고 아주 정성껏 길렀습니다. 그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주 크고 맛 좋은 수박들이 열렸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수박 몇 개를 들고 고을 원님에게로 갔습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왔습니다만 이렇게 맛나고 좋은 수박은 처음입니다. 이 모두가 원님께서 덕을 베풀어 잘 다스려 주신 덕분입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감사하는 마음에서 수박을 좀 가져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원님은 매우 흐뭇해하면서 관원에게 요즘 들어온 것 중 귀한 것을 농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관원은 황소 한 마리를 끌어다 그에게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같은 마을에 사는 욕심쟁이 농부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착한 농부가 수박으로 황소를 얻었으니, 황소를 바치면 땅이라도 몇 마지기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몇 년간 공들여 키운 황소를 끌고 원님에게 가서 ‘저는 수십 년간 황소를 길러왔지만 이렇게 크고 힘이 센 황소는 처음입니다. 원님께서 선정을 베풀어 주신 덕택인 줄 알고 이 황소를 바치고자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원님은 매우 기뻐하면서 관원에게 요즘 들어온 것 중 귀중한 것이 있으면 갖다주라고 일렀습니다. 관원은 창고에 가더니 전에 착한 농부가 가져왔던 수박을 몇 개 들고 왔습니다. 수박을 받아 든 농부는 불평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에디오피아 내시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수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