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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2024. 9. 18.
성경본문 보기

사도행전 9장 32절 ~ 42절 [개역개정]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 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설교문 보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다. 그곳에 내려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며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거기서 주님의 말씀을 전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 여러 마을에도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8:25). 후에 베드로는 여러 지역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각처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방문한 곳 가운데 하나는 룻다였습니다. 룻다는 사론 평야에 있는 도시로 구약에서는 롯(대상 8:12) 혹은 로드(스 2:33 ; 느 7:37)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 도시에 애니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중풍은 뇌혈관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신체의 전체 또는 일부가 마비되거나 심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병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백부장의 하인은 이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다가 예수님의 도움으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눅 7:2). 당시 중풍은 나병과 같이 천병(天病) 곧 하늘이 내리는 병이라 할 정도로 치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병에 걸리면 달리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중풍으로 고생하고 있는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했습니다(행 9:33). 이전에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지체장애인을 고친 바 있는데, 그때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행 3:6~7). 치유의 방법은 약간 다르나 그 주체는 같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는 많은 이적을 행했으나 단 한 번도 자기의 이름을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치료의 주체가 아닌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모든 능력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것과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애니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행 9:35). 성경에서 '다' 혹은 '모두'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께로 돌아왔다는 것은 룻다와 사론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애니아의 병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치유 사역이 복음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행 8:5-7). 물론 기적을 본 사람들이 다 믿는 건 아닙니다. 그랬다면 사도들이 활동했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도인의 수는 전체 인구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비록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눅 16:31). 바울이 말한 대로 믿음은 '봄'이 아니라 '들음'에서 납니다(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을 본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지는 않은 것처럼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이 많습니다(히 4:2). 그럼에도 복음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 전해질 것이고 또 전해져야만 합니다.

베드로가 룻다에 머물러 있을 때 욥바에 있는 성도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욥바는 오래된 항구도시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이곳을 통해 레바논의 백향목을 들여왔습니다(스 3:7). 특히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었습니다(욘 1:3). 현재 욥바는 이스라엘의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에 편입되어 ‘텔아비브 욥바’로 불립니다. 욥바는 룻다에서 가까웠습니다(행 9:38). 거리가 약 18km 정도 되니 걸어서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욥바에 있는 제자들이 베드로를 찾아온 이유는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 때문입니다. 다비다는 도르가라고도 하는데(행 9:36), 그녀는 선행과 구제 곧 착한 일을 많이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룻다에 머물러 있을 때 다비다는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비다의 시신을 씻어서 다락방에 두었습니다. 보통 유대인의 장례 풍습에 따르면 사망 후 당일 혹은 늦어도 24시간 안에 장사를 지내야 했습니다(신 21:23 ; 행 5:6). 먼저 시신을 씻고(행 9:37), 향유를 바른 다음 세마포로 감쌉니다(요 19:40). 그런데 욥바에 있는 제자들은 다비다의 시신을 씻기만 했지, 향유를 바르거나 세마포로 감싸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비다가 살아날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욥바에서 멀지 않은 룻다에 베드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베드로에게 속히 와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다비다는 죽었으나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그녀를 다시 살려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욥바로 갔습니다. 베드로가 그곳에 이르자 사람들이 그를 다비다의 시신이 안치되어있는 다락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과부들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다비다가 살아 있을 때 만든 여러 옷가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아마도 다비다는 가난한 과부들을 위하여 직접 옷을 만들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베드로에게 알림으로써 다비다를 살려주었으면 하는 자신들의 간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내보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엘리야나 엘리사도 죽은 아이를 살릴 때 비슷한 행동을 취했습니다(왕상 17:20 ; 왕하 4:33).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비록 적은 인원이기는 하지만 그들과 함께 아이가 있는 곳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아이의 손을 잡으시며 ‘달리다 굼’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하신 것입니다(막 5:41).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능력의 근원 이시며, 치료의 주체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 그리고 언제든 그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사 9:6). 그러나 엘리야나 엘리사, 베드로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능력을 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실 때만 가능합니다(왕하 4:27).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후에 시신 쪽으로 돌아앉으며 말했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하신 예수님처럼 베드로도 다비다를 향해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다비다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며 일어나 앉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사람들을 불러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욥바에 퍼졌고, 룻다에서와 같이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룻다의 애니아는 중풍으로 인해 팔 년 동안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아무런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아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욥바의 다비다는 죽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