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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얻는 회개

2024. 10. 6.

성경본문 보기

사도행전 11장 1절 ~ 18절 [개역개정]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설교문 보기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로 인해 사도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유대와 사마리아 등지로 흩어졌습니다(행 8:1 ; 11:19). 그중에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했는데(행 8:5), 많은 사람이 그가 전하는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12).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로부터 배척당했습니다. 하물며 이방인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부정한 짐승처럼 여겼고, 그들과의 교제를 일절 금지했습니다. 이를 어기는 건 위법 곧 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행 10:28).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자기 환상을 세 번이나 보여 주신 것도, 성령께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하신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제의에 선뜻 나서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행 10:28).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중에는 여전히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자신들에게만 주어졌던 것처럼, 생명 얻는 회개 역시 유대인에게만 주어졌다고 여겼습니다(행 11:18). ‘생명 얻는 회개’란 영원한 생명 곧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말합니다(고후 7:10).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지만, 그 믿음 이전에 반드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는 구원의 첫 단계요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으며(막 1:15), 베드로는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행 2:38). 따라서 회개 없이 구원에 이를 수 없고(벧후 3:9), 회개가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복음주의 설교자인 로이드 존스(D. M. Martyn Lloyd-Jones) 목사는 “회개가 없다면 그는 아직 중생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생(重生)이란 ‘거듭나다, 다시 태어나다 혹은 위로부터 나다’라는 뜻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심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엡 2:1 ; 골 2:13 ; 약 1:18 ; 벧전 1:3). 이렇게 거듭난 사람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요 3:3), 또 들어갈 수 있습니다(요 3:5). 즉 중생한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가 없다면 그는 아직 중생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은 결국 ‘회개 없이는 구원도 없다’는 의미입니다(눅 13:3, 5).

회개란 단순히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서 떠나는 것이며(겔 18:30), 세상으로 향했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신 30:9 ; 행 3:19 ; 살전 1:9).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요 3:16). 그런데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 가운데는 이러한 회개 역시 자신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베드로가 무 할례자 곧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했습니다(행 11:3). 이는 유대인 신자들이 아직도 율법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 줍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그들 가운데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행 15:1).

이에 베드로는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 주신 환상과 성령께서 하신 말씀에 관해 이야기했고, 고넬료가 받은 환상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이는 고넬료의 집을 방문한 게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혼자가 아니라 여섯 형제와 함께 갔다고 말합니다(행 11:12). 그들은 욥바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로 베드로는 자신이 고넬료의 집에 방문한 게 문제가 되었을 경우 그 일을 변호해 줄 증인으로 그들을 데려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도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또 베드로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신 것을 보고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행 1:6)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고 했습니다(행 11:16).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행 11:17) 성령의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한 선물을 이방인들에게도 주셨다는 것은 복음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요(요 1:12) 백성입니다(벧전 2:10). 거기에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를 받은 자나 할례를 받지 않은 자나, 종이나 자유인이 따로 없습니다(골 3:11).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고, 유대인들이 부정한 짐승처럼 취급하는 이방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은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잠잠해졌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그 누구도 하나님을 거역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행 11:18).

그런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건 베드로만이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으로 인하여 발생한 환난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헬라인’이란 그리스 사람을 말하는데, 이방인과 같은 의미입니다(롬 1:16 ; 2:9 등). 성경에는 안디옥이란 도시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시디아 지방에 있고(행 13:14) 다른 하나는 수리아 지방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냥 안디옥이라 하면 수리아의 안디옥을 말합니다. 당시 안디옥은 인구 50만이 넘는 대도시로 로마 제국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또 ‘동방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고 부유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도덕적으로는 제2의 소돔이라 할 만큼 매우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죄악의 도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방 지역 최초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후 안디옥 교회는 소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파하는 이방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행 13:1-3).

안디옥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주님께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그곳에 보냈습니다. 그는 구브로 출신의 레위 지파 사람으로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를 ‘위로의 아들’이란 뜻의 바나바라 불렀습니다(행 4:36). 이는 그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낸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행 11:24). 특히 그는 안디옥에서 가까운 구브로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이었으므로 헬라인인 안디옥 사람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사람들에게 믿음을 굳게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가 안디옥에 머무는 동안 교회는 더욱 부흥했습니다. 그러자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바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둘이 일 년을 함께 안디옥에 머물며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행 11:26). 이에 안디옥 교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처음으로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종교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구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가리켜 ‘나사렛 사람들’이라고 불렀는데(행 24:5), 이는 예수님의 출신지가 나사렛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나(마 2:1), 자라신 곳은 갈릴리의 나사렛이었기 때문에(마 2:23) 사람들은 그를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고(마 21:11 ; 26:71 ; 요 18:5 등)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나사렛 사람들'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자’ 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를 말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안디옥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유별난 집단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안디옥은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는 그런 생활을 멀리했습니다. 또 믿지 않는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지만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자신의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만은 달랐습니다. 이방인들은 같은 종교로 여겨지는 유대교 사람들로부터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보며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생활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행 2:47).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법을 잘 지켰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모범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이 불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이 주축이 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신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모든 교회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을 잘 증명해 줍니다.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는 한 가지 예가 27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큰 기근이 있었습니다. 글라우디오는 로마의 네 번째 황제로 로마에 있는 유대인을 추방한 인물입니다(행 18:2). 안디옥 교회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선지자들 가운데 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예언했기 때문입니다(행 11:28). 이에 안디옥 성도들은 각기 힘닿는 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안디옥은 큰 상업 도시였으므로 교인들의 생활 수준도 높았을 것입니다. 반면에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대 지방의 교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데다가 기근까지 들어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즉시 부조를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기로 작정했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여기서 부조는 헬라어로 '디아코니아'입니다. 즉 섬김 혹은 봉사를 말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곧 섬기는 것이요 봉사입니다. 우리도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과 생활에 모범이 되고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