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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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장 20절 ~ 23절[개역개정]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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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여러 명의 헤롯이 등장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 유대를 통치했던 헤롯은 보통 ‘헤롯 대왕’이라 불리는 헤롯 왕조의 시조입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막 3:8) 곧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에돔은 에서의 별명으로, 에돔 사람은 에서의 자손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당시의 헤롯은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 안디바였습니다(눅 3:1). 그는 헤롯의 네 번째 부인(말다케)에게서 태어난 아들로 매우 교활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여우에 빗대기도 하셨습니다(눅 13:32). 안디바는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세례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가 그의 생일에 참수했고(마 14:3-11), 예수님을 조롱하며 모욕하기도 했습니다(눅 23:11). 성령 강림 후 사도들이 활동했던 초기에는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유대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헤롯의 두 번째 부인(마리암네 1세)에게서 태어난 아리스도불로의 아들로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이 바로 아그립바 1세입니다. 사도행전 25장과 26장에 나오는 아그립바는 아그립바 1세의 아들로 편의상 아그립바 2세라 부릅니다. 그러면, 본문에 등장하는 아그립바 1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또 그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했습니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행 12:2).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자 아그립바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때는 무교절 기간이었으므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 기간이 끝난 후에 베드로를 끌어내 공개적으로 처형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인 사이에서 잠들어 있었고 보초병들이 감옥 문을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감옥 안과 밖에 각각 두 군인이 있었다는 것은 베드로가 구출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내일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편안하게 잠을 잤습니다. 그 증거로 베드로는 허리띠를 풀고, 신과 겉옷을 벗고 있었습니다. 사형을 앞둔 사람치고는 너무나 평온한 모습입니다. 어쩌면 그는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고후 5:8 ; 빌 1:23). 베드로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사는 게 주님의 뜻이라면 어떻게든 살게 될 것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니(롬 14:8) 그것 역시 유익합니다(빌 1:21). 그러니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편히 잠들어 있을 때 갑자기 주의 천사가 나타나고 감옥에 빛이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며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의 손목에 매여 있던 사슬이 풀렸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띠를 매고 신을 신으라”,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천사를 따라가면서도 이 일이 실제인 줄 알지 못하고 그저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들이 성문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 자기를 헤롯의 손에서 구출하시고 유대인들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행 12:11).
그 시간에 교회에서는 베드로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야고보와 더불어 기독교 공동체의 중심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이들을 데리고 다니셨는데, 일명 변화산 사건 때도 그랬고(마 17:1),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그러셨습니다(마 26:36).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그들을 가장 신임하고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중의 하나인 야고보가 순교한 상태에서 베드로까지 처형당한다면 공동체는 큰 위기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입니다. 물론 기도는 항상 하는 것이지만 특별히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을 때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사 베드로를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는 곧장 교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는데,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문을 두드리자 로데라 하는 여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문을 열어 주는 것도 잊은 채 안으로 달려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여종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야고보를 죽였고, 베드로마저 처형하려고 감옥에 가두었던 헤롯이 그를 풀어줄 리 만무했습니다. 그렇다고 베드로가 혼자 감옥을 빠져나왔을 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데의 말을 듣고는 그녀를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분명 베드로가 풀려나기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이 일어나자 믿지를 못한 것입니다.
여종이 계속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자 사람들은 베드로의 천사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개인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마 18:10 ; 히 1:14). 그래서 사람들은 베드로를 지켜주는 천사가 찾아와 그의 죽음을 전해주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건 천사가 아니라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한 뒤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전해 달라’ 부탁하고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말합니다(갈 1:19).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둥같이 여김을 받는 지도자였습니다(갈 2:9).
베드로가 감옥에서 무사히 나왔다는 소식은 교회에는 큰 기쁨이었으나 대적자들에게는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행 12:18). 그들은 날이 밝아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헤롯은 베드로를 찾다가 찾지 못하자 보초병들을 심문하고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죄수를 놓친 간수는 죄수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헤롯은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야고보를 죽인 헤롯이 베드로마저 죽임으로 유대인들에게 큰 환심을 사고 신임을 얻으려고 했는데 그 계획이 수포도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헤롯은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가이사랴는 헤롯 대왕이 로마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항구 도시로 그곳에 별궁이 있었습니다. 또 이곳에 로마 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총독의 관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한편, 헤롯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공급하던 식량을 중단했습니다. 이에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왕의 침실을 담당하는 신하인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헤롯과의 화평을 요청했습니다. 그리하여 날짜가 정해졌는데,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날은 로마 황제의 생일이었고, 장소는 헤롯 대왕이 건설한 대극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날에 헤롯은 왕의 의복을 입고 연단에 앉아 연설을 했습니다. 그러자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라고 하면서 갈채를 보냈습니다. 물론 그들의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렇게 함으로써 헤롯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헤롯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자기에게 신적인 영예가 주어진 걸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 앞에 큰 죄였습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신이 그것을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헤롯은 심한 복통으로 발작을 일으켰고 5일 후에 숨을 거두었는데, 그 몸이 썩어 벌레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12:23). 결국 헤롯 아그립바가 죽은 건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은 우상숭배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고(시 31:23),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며(약 4:6) 그를 대적하십니다(벧전 5: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는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귀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유혹입니다. 즉 사람의 정욕을 자극해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정욕이란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구’를 말하는데, 성경은 이를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입니다(요일 2:16). 사람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갈 17), 자기의 만족만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롬 1:21 ; 엡 2:3). 이것이 바로 육체의 정욕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걸 가지려는 욕망입니다.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물질 혹은 명예 등을 과대평가하여 허세를 부리려는 욕망으로, 이는 교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이를 이용해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했고(창 3:6), 다윗을 실족게 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건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서 비롯된 것이고(삼하 11:1), 그가 말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는 이생의 자랑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대상 21:1). 오늘날에도 이러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다윗과 같은 죄를 짓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도인 중에도 상당수가 이로 말미암아 실족했고, 또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또 그 유혹을 쉽게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자기의 몸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켰습니다(고전 9:27). 그만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또 히브리서 기자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라고 했습니다(히 12:4). 죽을 각오로 죄의 유혹에 맞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믿음의 선조들이 그런 삶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자기의 몸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킬 수 있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고전 9:27).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