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음TV/수요예배설교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2024. 10. 17.
성경본문 보기

사도행전 13장 1절 ~ 12절 [개역개정]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설교문 보기

안디옥 교회는 이방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입니다. 그것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발생한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수리아의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중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몇 사람은 헬라인들 곧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복음을 믿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행 11:19).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했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의 레위 사람으로 본명은 요셉이었습니다(행 4:36). 그는 사울과 함께 일 년 동안 사역했고, 그 기간에 안디옥 교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바나바와 사울뿐 아니라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 그리고 분봉 왕 헤롯과 함께 자란 마나엔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세우신 자들입니다(고전 12:28). 니게르는 라틴어로 ‘검다’라는 뜻입니다. 라틴어는 고대 로마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로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와 함께 당시 로마 제국의 공용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인 명패가 붙어있었는데, 모두 세 가지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요 19:20) 여기서 로마 말이 바로 라틴어입니다. 루기오도 ‘빛’이란 뜻의 라틴어인데, 그는 아프리카 북부의 구레네 출신입니다. 그리고 마나엔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므나헴(왕하 15:14)을 헬라식 이름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헬라식 이름으로 표기한 것이 ‘예수’입니다. 마나엔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했는데, 젖동생으로 번역된 헬라어(σύντροφος)는 ‘함께 양육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마나엔이 어릴 때부터 헤롯과 함께 자랐다는 것입니다. 이 헤롯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 안디바로(눅 3:1) 그는 기원전 20년에 유대 땅에서 태어나 마나엔과 함께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섬기며 금식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행 13:2). 그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할례 받은 사람 곧 유대인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은 것 같이 바울과 바나바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 곧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갈 2:7). 바울과 바나바는 이 사명을 위해 안수를 받았고, 안디옥 교인들은 이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사명 맡은 자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는 것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때 시기와 질투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결국 하나님의 일입니다. 따라서 누구든 감당해야 할 일이며, 단지 그들이 그것을 맡았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각자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습니다. 구브로는 지금의 키프로스(Cyprus)입니다. 성령께서 그리로 가라고 지시하셨는지 아니면 그들이 그리로 가려고 마음먹었는지는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결정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잠 16:9).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구브로로 가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성령께서 가지 못하도록 막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예가 사도행전 16장에 나옵니다(6, 7).

바울과 바나바가 첫 선교지를 구브로로 택한 이유는 그곳이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하고 안디옥 교인들 가운데 일부가 그곳 출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행 11:20). 그들은 구브로의 동쪽 해안 도시인 살라미에 도착해서 그곳에 있는 유대인의 여러 회당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는데(행 13:5), 그는 마가라 하는 요한입니다(행 12:12).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이기도 합니다(골 4:10). 그런데 조카로 번역된 헬라어(ἀνέψιος)는 본래 사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마가를 바나바의 사촌으로 보기도 합니다.

바울 일행은 살라미를 시작으로 구브로 섬에 있는 모든 유대인의 회당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살라미의 반대편 즉 구브로 섬의 서쪽 끝에 있는 바보(Paphos)라 하는 도시에 다다랐습니다. 당시 바보에는 구브로를 관할하는 로마 총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서기오 바울이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바예수라고 하는 유대인 마술사가 함께 있었습니다. ‘바예수’는 ‘예수(여호수아)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마술사로 번역된 헬라어 마고스(μάγος)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동방에서 온 박사들처럼 천문학이나 의학 등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나 현자(wise man)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마술사나 무당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바예수를 거짓 선지자라고 했는데, 아마도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지자 행세를 한 것 같습니다. 비록 서기오 총독은 지성이 있는 사람이었지만(행 13:7) 거짓 선지자인 바예수에게 속아 그를 곁에 두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지성인이 이단의 거짓 교리에 속아 넘어가는 걸 보면 마귀가 얼마나 교활한지를 짐작게 합니다. 오죽하면 마귀가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겠습니까(고후 11:14). 만일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그걸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의 미혹에 끌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바울을 통해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라”라고 경고하신 게 아니겠습니까?(딤전 4:1)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마 26:41 ; 벧전 4:7).

서기오 총독은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불렀습니다. 자신도 그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있던 엘루마라고도 하는 바예수가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것이 곧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진리의 복음(골 1:5)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살후 2:10). 대신 다른 복음 곧 거짓 교훈을 믿도록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듭니다(갈 1:6).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 마귀는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사탄은 결코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벧전 5:8). 우리는 그런 마귀와 담대히 맞서 싸우기 위해 믿음 안에 굳게 서있어야 할 것입니다(벧전 5:9).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방해하는 엘루마를 주목했습니다. ‘주목하다’라는 말은 ‘자세히 바라보다’라는 뜻으로 바울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행 13:10) 드디어 거짓 선지자 엘루마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바울이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계속 그에게 속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밝힌 엘루마의 정체는 첫째, 마귀의 자식입니다. 비록 그는 예수(여호수아)의 아들로 불렸으나 실제는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 면에서 마귀와 닮았습니다. 하나는 ‘거짓이 가득하다’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별명이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요 8:44). 그는 거짓으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그의 아비 마귀처럼 온갖 속임수로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또 하나 닮은 점은 ‘악하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식이 선한 법은 없습니다. 그는 자기의 배를 불리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사기꾼이요 악한 자였습니다(롬 16:18). 둘째, 주의 바른길을 굽게 하는 의의 원수입니다. 그는 스스로 주의 길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에게는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처럼(행 8:23) 정의는 없고 불의만이 가득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손은 능력과 축복의 손이기도 하지만 심판과 저주의 손이기도 합니다.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주님의 손이 능력으로 임했으나(행 11:21), 복음을 가로막은 엘루마에게는 저주로 임했습니다. 그는 즉시 눈이 멀어 자기 손을 잡아 이끌어줄 사람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온갖 속임수로 사람을 미혹하여 잘못된 길로 인도했던 그가 이제는 자신을 인도할 사람을 구해야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의 말로입니다. 엘루마처럼 사탄의 도구가 되어 거짓과 악행을 일삼으며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은 언젠가 심판을 받아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눈이 멀었으나 그것은 얼마 동안만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온다면 그의 시력은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마 22: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짓 선지자 엘루마가 복음을 방해하다가 눈이 먼 사건은 결과적으로 서기오 총독이 복음을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행 13:12).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항상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복음은 땅끝까지 전파될 것입니다(행 1:8). 그 복음을 믿는 자들은 그가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지만 끝까지 거부하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딤후 4:1). 그때까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