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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2024. 10. 30.

성경본문 보기

사도행전 13장 42절 ~ 52절 [개역개정]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설교문 보기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유대인들과 함께 예배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침 설교의 기회를 얻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회당에서 나갈 때 사람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회중이 흩어진 뒤에도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6절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했고, 26절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적인 유대인들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 즉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란 할례를 받지 않고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 출신이지만 둘의 차이는 할례를 받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유대교로 개종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출 12:48). 그래야 유대인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할례를 받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경건한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바울은 그들을 모두 ‘형제들’이라 불렀습니다(행 13:26).

회중이 흩어진 뒤에도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음 안식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말씀을 더 듣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던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으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다음 안식일에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유대인들이 그의 말을 반박하며 비방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처음 바울의 설교를 듣고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듣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던 자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일주일 만에 호의적인 태도에서 적대적인 입장으로 돌변한 것은 아마 회당 지도자들의 회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지역에 퍼져 나가자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게 하고, 그 지역에서 내쫓았습니다(행 13:50).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또는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는 곳에는 반드시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재건하려고 할 때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 곧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가 있었습니다(스 4장).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려고 할 때도 방해했습니다(느 4장).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에도 그런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방해는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성벽 건축을 분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사장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일을 분담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5절입니다. “그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이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마 12:30). 이들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6장에 나오는 스마야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뇌물을 받고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했습니다(느 6:12). 느헤미야를 두렵게 해서 죄를 짓게 만들고 이를 빌미로 그를 비방하려 함이었습니다. 이는 마귀가 주로 사용하는 수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스마야만 한 것이 아닙니다. 여선지자인 노아야를 비롯해서 몇 선지자들도 이에 가담했습니다(느 6:14).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는 메신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이 오히려 외부 세력과 결탁하여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선지자들로 불렸으나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닌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이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성벽 공사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는 반대 세력에 부딪힐 때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느 4:4 ; 6:9). 그리고 백성에게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권면했습니다(느 4:14). 우리도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러한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시 146:5).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시 3:5)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시 86:16).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하며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향하다’는 말은 ‘등을 돌리다’ 또는 ‘마음을 바꾸다’라는 뜻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앞으로는 이방 선교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근거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사 49:6) 유대인들은 구원이 자신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행 11:3). 베드로가 그들에게 복음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자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구원)를 주셨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행 11:18). 구원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만 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므로(롬 3:23),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묻는 빌립보 간수에 바울과 실라가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고,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이방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들은 이방인들은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다고 했습니다(행 13:48).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되었다'라는 말은 '영생을 얻도록 정하셨다' 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정하셨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작성하셨다'는 의미입니다(요 3:16).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사망 곧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내리시기로 정하셨습니다(살후 1:9).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유대인들을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로 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들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자들'이 됩니다. 영생 곧 구원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따라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믿지 않으면 정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정하신 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자처한 것입니다(행 13:46). 복음을 들어도 그것이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듣는 자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히 4:2). 따라서 그 책임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딤전 2:4). 또 한 사람이라도 멸망치 않고 모두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오래 참으신다고도 했습니다(벧후 3:9). 그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받도록 미리 정하시고 누구는 멸망하도록 예정하셨을 리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전지 하신 분이시기에 누가 구원받을 자인지 누가 멸망할 자인지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정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를 예정하셨다면 그것은 미리 아심 곧 예지(προγινώσκω)에 따른 것입니다(롬 8: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메시아가 곧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는지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에 있어서 십자가형은 가장 악한 죄인들이 받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러한 형벌을 받은 예수가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라고 하니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고전 1:23). 하지만 그들이 믿든 안 믿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죄인이 구원 얻을 다른 방법은 업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행 4;12). 이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롬 1:16).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또 그들이 늦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