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2)
성경본문 보기
사도행전 15장 22절 ~ 29절 [개역개정]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26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설교문 보기
이방인의 할례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린 예루살렘 공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을 채택하기로 결의했습니다.
1. 우상의 제물을 멀리하라
당시 이교도들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낸 뒤 그것을 신전에서 사제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음식은 시장에 내다 팔거나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이처럼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에게는 부정한 동물처럼 매우 혐오스러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 가운데는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에게 우상의 제물은 할례만큼이나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 공회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멀리하라는 권면으로 이를 마무리 지었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상의 제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먹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시험에 들기도 했습니다(고전 10:32).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은 몇 가지 권면을 합니다.
먼저 우상의 제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습니다(고전 8:9). 성경은 우상을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레 19:4). ‘헛된 것’이란 ‘쓸모가 없는 것’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합니다. 우상은 돌이나 나무 혹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목구비는 있으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시 115:4-7). 한 마디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그런 우상이 섬김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사람들은 하늘과 땅에 많은 신들이 있다고 주장하나(고전 8:5), 정작 우리가 섬겨야 할 신은 하나님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모든 것들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고전 8:6a). 또한 우리의 주님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습니다(고전 8:6b).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듯 우상의 제물 역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먹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그런 지식이 없는 사람은 고기를 먹을 때 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이라고 생각하며 먹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우상을 신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음식으로 인해 자기들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합니다(고전 8:7). 그럴 바에는 차라리 육식을 금하고 채소만 먹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자신의 믿음이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롬 14:2). 그래서 양심에 거리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약한 믿음을 감추기 위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들과 달리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기 위해 우상의 집 곧 신전에서 먹고 마시기도 했습니다(고전 8:10). 이러한 행동은 연약한 신자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지식이 있다고 하는 자들이 우상의 신전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믿음이 약한 신자가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 사람도 양심에 담력을 얻어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서는 또다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합니다. 우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 없이 그 제물을 먹으니 결국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8:11). 그러므로 신앙에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들의 자유로운 행동이 연약한 신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앙에 있어서 음식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 될 것도 없고, 먹는다고 특별히 유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고전 8:8). 그런 문제로 믿는 형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일입니다(고전 8:12). 그리스도께서는 지식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연약한 자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나 실족게 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음식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자신은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고전 8:13). 신앙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고전 8:1).
다음으로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고전 10:25). 시장에서 파는 고기 중에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는 사람이 말해주지 않으면 사는 사람은 그것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때는 출처를 묻지 말고 거리낌 없이 무엇이든 먹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0:26). 비록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걸 먹는다고 해서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지 말고 그냥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우상의 제물을 시장에서 파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어서 불신자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고전 10:27).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역시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걸 먹는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것이 제물이라고 말하면 그것을 알게 한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고전 10:28). 우상의 제물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 음식을 먹는다면 그렇게 알려준 사람은 큰 상처를 입거나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다만 ‘어떤 사람(τὶς)’이라고만 했습니다. 그가 주인일 수도 있고, 같이 초대를 받은 믿음이 연약한 형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까지 연약한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 역시 믿음이 연약한 신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첫 번째 권면에서 다룬 내용처럼 될 것입니다. 즉 믿음이 있다고 하는 자들이 우상의 제물임을 알고도 먹는다면 믿음이 연약한 신자는 비록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고 하는 자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나 실족게 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피를 멀리하라
하나님께서 처음 지구를 만드셨을 때 그 지구는 물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창 1:2). 창조 셋째 날 하나님께서는 그 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시고 뭍이 드러나게 하셨는데, 그 뭍을 땅이라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셨습니다(창 1:10). 그리고 땅에는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각종 나무를 내게 하셨습니다(창 1:11). 풀은 짐승을 위한 것이고(창 1:30) 채소와 실과는 사람을 위한 양식입니다(창 1:29). 그런데 홍수 이후 동물도 채소처럼 먹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창 9:3). 다만 ‘산 동물을 먹을 것’과 ‘피째 먹지 말라’는 단서가 붙었습니다(창 9:4). 산 동물을 먹으라는 것은 죽은 동물은 먹지 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피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피는 생명과 동일시됩니다(창 9:4 ; 신 12:23). 그런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취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고 하신 데에는 생명을 경시하지 말고 존중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속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세상에는 죄가 없었습니다(창 1:31).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은 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롬 5:12a) 그 대가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롬 6:23).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부패한 성품을 물려받은 그의 후손들 역시 죄를 지음으로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롬 5:12b). 이 죄에서 용서받기 위해서는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히 9:22).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레 17:11).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사람을 대신하여 동물의 피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레 1:5, 11 등). 이처럼 동물의 피는 사람의 죄를 속하는 제물로만 쓰여야지 그 피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레 17:11).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속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히 9:12). 그럼에도 예루살렘 공회에서는 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피를 멀리하라고 권면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야고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다른 권면들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행 15:21) ‘이는’으로 번역한 헬라어 ‘가르(vγάρ)’는 앞의 내용에 대한 이유나 원인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접속사로 ‘왜냐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즉 왜 피를 멀리하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를 비롯해 우상의 제물과 목매어 죽인 것 그리고 음행 등은 당시 이방인의 풍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레 19:26-29). 이방인 개종자 중에는 여전히 그런 풍속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런 관습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죄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모두 엄격하게 금지된 것들입니다. 안디옥뿐만 아니라 각 도시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듣고 있었습니다(행 15:21). 비록 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해도 피를 비롯해 우상의 제물과 목매어 죽인 것, 음행 등에 관해서는 여전히 거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행 21:20). 만일 이방인 신자들이 그런 관습을 버리지 않고 고집한다면 기독교 공동체는 분열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 사이의 진정한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복음과 같은 신앙의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고 또 양보해서도 안되지만, 형식 같은 비본질적인 것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3.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라
목매어 죽인 짐승은 피가 체내에 남아있으므로 이를 먹는 것은 곧 피째 먹는 것과 일반입니다. 따라서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는 것은 피를 멀리하라는 것과 같은 권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음행을 멀리하라
음행이란 모든 불법적인 성행위를 말합니다. 바울은 이 음행이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6:18). 여기서 몸은 단순히 썩어 없어질 육체(σάρξ)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로서의 몸(σῶμα)을 의미합니다. 이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 3:16 ; 6:19).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므로 우리 역시 거룩해야 합니다(고전 3:17). 또한 우리의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음행 같은 육체의 정욕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고전 6: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 공회에서 채택한 것들은 구원의 조건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생활 규범입니다. 특히 음행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할 성도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살전 4:3). 하나님의 성도는 육체의 정욕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고전 10:31).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엡 2:10).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나 사람들에게 거치는 자 곧 걸림돌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고전 10:32) 오히려 교회나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고전 10:33).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