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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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29절 ~ 31절 [개역개정]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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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기자는 모세 다음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기생 라합을 믿음의 선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민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보고서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시험하기까지 했습니다(출 17:7 ; 민 14:22). 그런 이스라엘을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출 32:9 등).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소나 말처럼 고집이 세고 다루기 힘든 백성이라는 것입니다(민 14:27). 하지만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
1)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29절입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출 6:4)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애굽 북부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블레셋 사람의 땅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를 ‘해안 길’이라고 하는데, 이 길로 가면 늦어도 일주일이면 가나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바꾸어 애굽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출 13:17). 당시 블레셋은 철 병기로 무장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이스라엘은 이제 갓 노예에서 벗어난 상태였으므로 전쟁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면 틀림없이 애굽에서 나온 걸 후회하며 다시 그리로 돌아가려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과 원망이 일상화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했고 그때마다 애굽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그곳으로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민 14:3).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가는 가까운 길 대신 그보다 훨씬 먼 홍해의 광야 길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출 13:18).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와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미디안에 있을 때 호렙산 곧 시내 산에서 그에게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소명을 주셨습니다(출 3:10). 아울러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한 후에 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출 3:12).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름길이 아닌 광야 길로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을 거쳐서(출 12:37 ; 민 33:3, 5) 광야 끝에 있는 에담에 진을 쳤습니다(출 13:20 ; 민 33: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갈 수 있도록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 길을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비춰주셨습니다(출 13:21, 22). 에담에 진을 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시 진행하여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쳤습니다. 이곳은 양옆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홍해가 놓여있었습니다. 이런 곳에 진을 치라고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뒤쫓고 있는 애굽 왕과 그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출 14:4). 하지만 이를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가 군대를 이끌고 오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출 14:10). 그들의 부르짖음은 기도가 아닌 위기에 처한 자들의 탄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출 14:11). 이에 모세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출 14:13). ‘가만히 서서’라는 말은 ‘너희 자리를 지키라’는 뜻으로 비록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그 상황을 맞이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보라’는 것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나 뒤에서 쫓아오는 애굽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망하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로 인하여 두려움에 떨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말을 듣고 믿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출 14:22). 반면에 애굽 사람들은 그들과 똑같이 행하려다가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출 14: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실 일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어떤 상황도 잘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30절입니다.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출애굽 한 지 40년 만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첫 관문은 종려나무 성읍이라고 불리는 여리고였습니다(신 34:3). 여리고는 비록 큰 도시는 아니지만 경사지 정상에 있었고, 성 밖으로 내벽과 외벽을 높이 쌓았기 때문에 쉽게 점령할 수 있는 성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어떻게 하면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모든 군사가 성 주위를 매일 한 바퀴씩 6일 동안 돌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돕니다(수 6:3, 4). 일곱 바퀴를 다 돌고 나면 제사장들이 뿔 나팔을 길게 부는데, 그때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치면 됩니다(수 6:5).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은 나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수 6:10). 참으로 간단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시한 방법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돌기만 한다고 성이 무너진다니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분명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들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믿음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이후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방법들은 사람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7일 동안 여리고를 돌았고 성이 무너졌습니다(수 6:15-20).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세상의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요일 5:4).
2. 기생 라합
31절입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에 앞서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냅니다. 이들은 여리고에 가서 라합이라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묵었습니다. 기생으로 번역된 헬라어(포르네)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기 혹은 창녀를 가리킵니다(렘 3:3). 아마도 라합의 집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기방(妓房)과 같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왜 하필 이곳에 묵은 것일까요? 그 이유는 라합의 집이 성벽 위에 있어서(수 2:15) 여리고 성 전체를 볼 수 있었고, 아울러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그들로부터 여리고 성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라합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합을 비롯하여 여리고 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일과 요단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듣고는 두려움에 떨었을 뿐 아니라 싸울 용기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이런 일들을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과 그 하나님께서 천지를 다스리는 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라합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 가를 알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발각되었을 때 그들을 숨겨 주었고, 그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 사실이 동족에게 알려지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히 맞아주었고 그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여리고 백성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라합은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으며(약 2:25), 이스라엘의 계보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기도 했습니다(마 1:5).
사실 여자가 그것도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계보에 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여자의 위치는 인격인 존재가 아니라 단순히 그 여자의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에 불과했습니다. 유대인 남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하신 걸 감사할 정도였습니다. 이방인 역시 유대인에게는 사람이 아닌 부정한 짐승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방인과 교제하거나 가까이하는 걸 법으로 금했고(행 10:28) 그들이 만들어 낸 물건이나 식품까지도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더욱이 라합은 창녀였습니다. 그런 라합이 이스라엘의 계보에 들어갔다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차별이 없음을 보여줍니다(롬 10:1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가 죄인 중의 괴수라도 구원을 받지만(롬 10:13), 주의 이름을 거부하는 자들은 그가 제사장이라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히 11:6)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롬 14:23).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믿음으로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기생 라합은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평안히 맞아주었고 그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무슨 일을 하든 믿음으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