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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너희는 누구냐

2025. 1. 23.
성경본문 보기

사도행전 19장 8절 ~ 20절 [개역개정]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설교문 보기

바울은 2차 선교 여행을 마친 후 안디옥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3차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그는 윗지방(행 19:1) 곧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역의 교회들을 방문하여 그곳에 있는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였습니다(행 18:23). 그리고 에베소에 이르러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행 19:2). 바울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음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을 때 성령을 받았냐고 물었고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라고 하셨습니다(마 28:19). 또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행 2:38).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면 성령에 대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라고 물었고, 그들은 ‘요한의 세례’라고 대답했습니다(행 19:3). 요한은 회개의 세례 곧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를 베풀었습니다(막 1:4 ; 행 19:4). 그렇다고 세례를 받는 것이 곧 죄 사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벧전 3:21). 요한의 세례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베풀어진 것으로(막 1:5) 그것만으로는 죄 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행 10:43 ; 행 16:31). 그래서 요한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며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행 19:5).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이 말을 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거나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알았거나 믿었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요한의 세례를 받았으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요한이 말한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었을 뿐입니다. 바울은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 사실을 알려주면서 본문에 언급은 없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그랬던 것처럼(행 18:26) 그들에게 예수님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행 19:6). 이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다는 외적인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 모두 방언이나 예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언이나 예언은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은사(고전 12:10, 11)이지 누구나 받는 보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행 2:38 ; 8:20 ; 요일 4:13).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12:3). 물론 거짓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또 입으로는 주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도 있습니다(딛 1:16). 그들은 쭉정이와 가라지 같은 자들로 세상 끝 날 그에 합당한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 3:12 ; 13:30).

바울은 에베소의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관해 설명하며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이미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때 이 회당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바울에게 좀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지만 다른 일이 있어서 거절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행 18:21), 그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보다 바울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석 달 동안 별 제지 없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마음이 완고한 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도를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비방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믿는 자들을 따로 데리고 나가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런 일이 2년간 계속되었으며 그로 인해 아시아에 사는 자들이 대부분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행 19:10). 그리하여 에베소를 비롯해 골로새, 히에라볼리,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아시아 지역에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손을 통해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한 영들이 나갔습니다. 이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돌아다니며 마술 하는 어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주술을 통해 귀신을 쫓아내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유대인 마술사들 역시 그런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그에게 어떤 대단한 주술 능력이 있는 줄 알고 그것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를 통해 돈을 벌고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돈과 명예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그런 자들 가운데 유대의 대제사장(ἀρχιερεύς)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있었습니다(행 19:14). 제사장 직분은 세습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제사장이었습니다. 유대의 제사장 가문이 왜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인의 땅 에베소에 거주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두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문의 몰락입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제사장으로서 누렸던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은 종교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생계 걱정 없이 넉넉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직분을 박탈당함으로써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고, 생계를 걱정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게와는 식구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에베소에까지 오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행 19:13).

또 하나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제사장 가문을 사칭했을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의 문헌에는 스게와라는 대제사장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는 그들이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바르실래 자손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을 아론의 계보에서 찾을 수 없어서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스 2:61, 62). 아무튼 유대의 제사장 가문이 왜 예루살렘이 아닌 에베소에 거주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의 아들들이 마술사였다는 것입니다. 마술사는 퇴마사나 무당을 말하는데, 이들은 악령을 내쫓기 위해 보통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솔로몬이나 아브라함의 이름을 사용해서 귀신을 내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당 중에 제사장의 아들들이 끼어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할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이 도리어 귀신을 섬기며 귀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타락상이 어떠했는지를 짐작게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제사장들에 의해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릴 정도로 이스라엘은 타락했습니다(마 21:13).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어떤 악한 영 곧 귀신 들린 사람에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에게 명하노라’라고 하면서 귀신을 내쫓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들은 귀신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달려들어 힘으로 눌러 이겼습니다. 그러자 스게와의 아들들은 상처를 입고서,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려다가 오히려 귀신에게 망신만 당하고 쫓겨난 꼴이 되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또 바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막 1:24 ; 5:7). 물론 스게와의 아들들에 대해서도 모르는 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귀신이 ‘너희는 누구냐’라고 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나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이득을 취하려 했을 뿐입니다.

이 사건이 에베소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믿게 된 많은 사람이 와서 자복하며 자신이 행한 일을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아마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과거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미신을 따랐던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이들이 책들을 모아다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 버렸습니다. 그 책값을 계산해 보니 은화 5만 개 정도 되었습니다. 이 은화를 드라크마와 같은 단위로 보기도 하는데(NIV), 드라크마는 데나리온처럼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마 20:2). 그렇다면 은화 5만 개는 오늘날 한화로 4, 50억 정도 됩니다. 당시 마술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계 수단인 마술에 관한 책들을 태워버렸다는 건 마술을 다시는 행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신앙을 위해 직업까지 바꾸겠다는 것으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그에 합당한 삶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그랬는데, 그들은 자신들도 신앙에서 벗어난 길로 갔고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외식하는 자들이라 책망받았고, 화를 입을 것이라 저주를 받기도 했습니다(마 23:13). 오늘날에도 그들처럼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온갖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스게와의 아들들처럼 자신을 위해 예수님 혹은 그분의 이름을 이용한 사람들 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런 자들이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끝날 모든 게 밝히 드러나게 될 때 그들은 자신이 행한 대로 그에 합당한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롬 2:6 ; 딤전 5:24). 만일 예수님의 이름보다 그 이름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더 관심이 있다거나 예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보다 자신의 출세에 더 관심이 있다면 그는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들은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구제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이고(마 7:23), 귀신조차도 너희는 누구냐고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계 수단이었던 책들을 미련 없이 태워버렸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새로운 직업을 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그들은 과거의 일들을 청산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래서 신앙을 방해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귀신들로부터 그리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