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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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9장 21절 ~ 32절 [개역개정]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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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에서 2년 여를 머문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바울은 그 지역의 교회들을 방문하여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기근으로 고생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연보(구제금)를 모으려 했을 것입니다(롬 15:26). 이를 위해 바울은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신은 아시아에 얼마간 더 머물렀습니다.
그 무렵 에베소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많은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주동자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이나 신전 모형을 만들어 파는 은장색(은세공업자)이었습니다. 아데미(Ἄρτεμις, Artemis)는 고대 근동에서 섬기던 풍요와 다산의 여신으로, 바울 당시에는 에베소가 아데미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는데, 아덴(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네 배나 컸다고 합니다. 신전 주변에는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제물이나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의 한 명이 데메드리오였습니다. 그는 이 사업으로 많은 이익을 남겼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많은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자 아데미 여신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고, 더불어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종사자들의 수입도 감소했습니다.
이에 데메드리오는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과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행 9:25-27) 바울은 아덴에서 사람들에게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다'라고 가르친 바 있는데(행 17:29), 이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 곧 우상은 신이 아니다'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성경은 우상의 실체에 대해서 수없이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대상이 이방인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첫 계명으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출 20:1). 신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엘로힘'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하나님(God)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고(창 1:1), 간혹 이방 신들(gods)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창 35:2 ; 출 18:11 ; 20:3 ; 수 24:20).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은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삼하 7:22). 다만 어떤 것들을 하나님처럼 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 인류는 언제부터인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다른 신들을 섬기던 우상 숭배자였습니다(수 24:2). 전승에 의하면 그는 고향인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우상은 예배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금이나 은, 나무, 돌 등으로 만든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 그것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 눈은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합니다. 또 코와 입이 있지만 냄새도 맡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도 못하며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신 4:28).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움직일 수조차 없습니다(사 46:7). 그런 것들을 어떻게 신으로 섬길 수 있겠습니까? 우상은 신도 아니고, 신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을 유일한 신앙의 대상이요 경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데메드리오 역시 그들 중의 하나였는데, 그가 복음을 거부한 가장 큰 이유는 생업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아데미와 관련된 사업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는데, 이를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같이 마술사들은 신앙을 위해 생업을 포기했습니다. 그 증거로 자신의 생계 수단이었던 책들을 미련 없이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고사성어 중에 파부침주(破釜沈舟) 혹은 파부침선(破釜沈船)이라는 말이 있는데, 밥을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마술사들도 그런 심정으로 생계 수단이었던 책들을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에도 기꺼이 과거의 일들을 청산했습니다. 이렇게 마술사들은 신앙을 위해 생업을 포기했으나 데메드리오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생계를 위해 신앙을 이용했습니다. 신앙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은 것입니다. 비록 그가 아데미에 대하여 신앙의 열정을 가진 것처럼 말은 했으나 실은 자신의 이익을 가장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종교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종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선동해 바울을 대적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분노가 가득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며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일제히 극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자신들이 왜 모였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무리에 휩쓸려 움직였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옳은 일인지 그릇된 일인지 판단하지 않고, 소수의 사람에게 선동되어 무작정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에 앞서 먼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다른 동물도 어느 정도 생각은 하지만 그 생각은 감정을 앞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워야 합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 숭배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는 행위입니다(롬 1:23). 아울러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롬 1:25)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행위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질투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출 20:5 ; 신 5:9). 성경에서 질투는 인간관계를 해치거나 분쟁의 원인이 되는 등 부정적인 요소로 묘사되었습니다(아 8:6 ; 고전 3:3 ; 고후 12:20).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스스로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결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으시겠다는 걸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되는 절대적 존재이시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피조물의 경배를 홀로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사 43:21).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기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