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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2025.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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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2장 1절 ~ 21절 [개역개정]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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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가면 환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하여 죽는 것도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행 20:24).

바울은 일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주의 형제 야고보를 비롯한 교회 장로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행 21:19). 그리고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서 결례를 행했습니다(행 21:26). 그런데 바울이 성전에 있을 때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그를 봤습니다. 이들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에베소에서 올라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추정이 됩니다. 에베소는 바울이 3년간(행 20:31) 선교 활동을 했던 도시로 그곳 유대인들은 바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성전 안에 있는 걸 보고 사람들을 충동하여 그를 붙잡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에베소 사람인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행 21:29).

성전은 크게 안뜰과 바깥뜰로 나뉩니다(겔 8:16 ; 10:5). 안뜰은 다시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의 뜰과 유대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 그리고 유대인 여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여인의 뜰로 구분됩니다. 바깥뜰은 이방인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안뜰과 바깥들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중간에 담이 세워져 있었는데, 에베소서 2장(14)에 나오는 ‘막힌 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담에는 이방인이 안으로 들어가다 발각되면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 즉 할례 받은 이방인 개종자들은 유대인 남자들처럼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드로비모는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뜰에 들어갈 수 없었고, 들어갔다면 경고문대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만일 바울이 그를 데리고 들어간 것이라면 그 역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와 함께 예루살렘에 있었을 뿐인데, 그것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려간 줄로 짐작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이 이스라엘 민족과 율법과 성전을 반대하여 가르친다며 무리를 선동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바울을 비방하는 그들이 참으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이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을 부정한 사람 취급하며 멸시했고, 그들과 교제하거나 가까이하는 것조차 법으로 금지했습니다(행 10:28).

또 유대인들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할례와 안식일은 그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통해 자신들이 이방 민족과 구별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할례의 여부를 철저히 따졌고, 이방 사람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출 12:48). 심지어 모든 일을 금하는 안식일에도 할례만은 행해졌습니다(요 7:23). 이처럼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종교의식이었습니다. 안식일 역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할례 못지않게 중요했습니다. 이날에는 어떤 일을 해서도 안되며(출 20:10), 성회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모임을 가져야 했습니다(레 23:3). 이를 어길 시에는 사형에 처할 정도로 안식일은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했습니다(출 31:15).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율법이 있습니다. 바로 정의와 긍휼과 믿음입니다(마 23:23 ; 눅 11:42).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미 6:8).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외면했습니다. 형식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는 소홀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며, 하나님께 받은 신성한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 정말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롬 2:23, 24).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성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사 56:7). 그러니까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성전에서 예배할 수 있고 또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바로 이방인의 뜰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곳을 장사하는 집이요(요 2:16)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마 21:13). 이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로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었지만, 그들은 이런 일을 버젓이 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방인으로 인해 성전이 더럽혀졌다며 난리를 치니 그 또한 가증스러울 따름입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말에 극도로 흥분한 사람들은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어내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행 21:31). 그때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로마 군대의 천부장에게 전해졌습니다. 당시 천부장은 예루살렘 성전 북서쪽 모퉁이에 있는 한 요새에 있었습니다. 이 요새는 헤롯 대왕이 예루살렘을 방어하고 유대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하나넬 망대(느 3:1)가 있던 자리에 세운 것입니다. 헤롯은 이 요새를 친구의 이름[Marcus Antonius]을 따서 안토니오로 명명했습니다. 헤롯이 죽은 후 유대는 그의 아들인 아켈라오가 다스렸는데(마 2:22), 강압적인 정치로 유대인들과 잦은 마찰을 빚다가 결국은 폐위당합니다. 그 후로 유대는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총독의 관저는 로마 군대가 주둔해 있던 항구 도시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 고넬료가 그곳의 백부장이었고(행 10:1), 빌립 집사가 살던 곳이기도 합니다(행 21:8). 안토니오 요새에도 군대를 주둔시켜 예루살렘을 감시하게 했는데, 바울 당시 그곳의 지휘관은 천부장인 글라우디오 루시아였습니다(행 23:26).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천부장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현장에 달려갔습니다. 군인들을 보자 유대인들은 바울 때리던 것을 멈췄습니다. 천부장은 유대인들로부터 바울을 넘겨받아 두 쇠사슬로 묶게 한 후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물었습니다(행 21:33). 그런데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을 영내 즉 부대 안으로 끌고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계속 뒤따라가면서 그를 없애 버리라고 외쳤습니다. 군인들이 바울을 부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 할 때 그는 천부장에 한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군중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천부장이 허락하자 바울은 군중들에게 히브리 말로 연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자신이 어떻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9장을 강해할 때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성경본문 보기사도행전 9장 1절 ~ 9절 [개역개정]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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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 22:21) 하셨다는 말로 본의 아니게 연설을 마칩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다가 “이런 자는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민족 외에 다른 민족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방인과 교제하거나 가까이하는 것조차 법으로 금할 정도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중에도 여전히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자신들에게만 주어졌던 것처럼, 생명 얻는 회개 역시 유대인에게만 주어졌다고 여겼습니다(행 11:18). 그래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행 11:18).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예수님으로부터 이방 선교에 대한 소명(召命)을 받았다고 하니 유대인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소리를 질러대면서 자기 옷을 벗어던지고 먼지를 날렸습니다. 그러자 천부장은 부하들에게 바울을 부대 안으로 끌고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이처럼 바울에게 소리를 질러대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를 채찍질하면서 심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마도 천부장은 바울에게 어떤 심각한 죄가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천부장의 명령에 따라 군인들이 채찍질하려고 가죽끈으로 바울을 묶자, 바울은 곁에 선 백부장에게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알렸습니다(행 22:25). 그러자 백부장은 천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천부장은 바울에게 와서 그가 정말 로마 시민인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바울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천부장은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법에서는 재판 없이 로마 시민을 결박하거나 매질을 하지 못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천부장은 이러한 법을 어기고 바울을 결박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채찍질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어떤 징계를 받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에 천부장은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도 했습니다(23:26-29). 어찌 되었든 바울에게 있어서 로마 시민권은 그가 복음 사역을 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바울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거나 그로 인해 어떤 사회적 유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로마 시민권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부터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았고, 어떤 상황에 놓여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믿음의 선조들이 다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 세상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두었기에 가능한 삶이었습니다(골 1:5). 우리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어떤 환경에 있든지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기쁨으로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