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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

2025. 4. 28.
성경본문 보기

시편 7편 1절 ~ 17절 [개역개정]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설교문 보기

시편 7편은 다윗이 지은 시로, 표제가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시’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라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다윗을 모함했던 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사실입니다(삼상 24:9). 그리고 구시를 베냐민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 시는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던 시기에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의 조상인 야곱은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창 47:9, 새번역) 한 마디로 고달픈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고단한 세월을 보낸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 사람처럼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속였고, 안일한 삶에 빠져 하나님께 드린 서원조차 잊어버렸습니다. 다윗은 야곱의 절반도 안 되는 세월을 살았지만, 그 삶은 야곱 못지않게 파란만장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부분 무고하게 고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5:5). 그럼에도 종종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막내라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무시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사울을 대신할 왕을 세우기 위해 이새의 집으로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모두 제사에 초청했는데, 이새는 다윗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막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삼상 16:11). 그때 다윗은 밖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고대 중동 사회에서 막내아들은 가족 내에서 지위가 가장 낮았습니다. 그래서 험하고 위험한 일 혹은 귀찮은 일들을 도맡아야 했습니다. 양 치는 일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더욱이 맹수나 도둑으로부터 양 떼를 지켜야 하는 위험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은 대부분 지위가 낮은 막내아들이나 종들이 맡았다고 합니다. 또한 막내는 가정의 중요한 자리에서 대부분 제외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모두 초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부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막내아들인 다윗을 굳이 참석시킬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다윗의 형들도 그에게 비호의적이었습니다. 그가 전장에 나가 있는 형들의 안부를 살피기 위해 갔을 때 맏형인 엘리압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동생을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냉정하다 못해 날카롭게 반응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삼상 17:28) 다윗은 형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20kg이 넘는 짐을 지고 여섯 시간 이상을 걸어서 전장까지 왔습니다(삼상 17:17). 이때 그의 나이는 15~17세 정도로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런 동생이 힘들게 찾아왔는데, 안쓰러워하거나 따뜻한 말은 하지 못할망정 오히려 화를 내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평소에도 다윗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욱이 막내가 맏형인 자신을 제치고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났을 것입니다(삼상 16:13). 겉으로 볼 때 그는 사울처럼 왕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그를 보고 속으로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삼상 16:6). 그런 자신을 제쳐 놓고 막내인 다윗이 차기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니 얼마나 미웠겠습니까(삼상 16:13). 이렇듯 다윗은 요셉처럼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외롭게 양을 치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양을 치는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고(삼상 17:34-36), 그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전투의 경험이 전혀 없던 소년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삼상 17:37). 어려서부터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다윗은 고난의 순간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분께 호소했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7편도 그러한 다윗의 믿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시편 7편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먼저 다윗은 자기를 뒤쫓는 모든 자들에게서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시 7:1) 다윗은 자신의 대적자들을 사자에 비유하며 자신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고백했습니다.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시 7:2). 사자는 백수의 왕이라 불릴 만큼 짐승 중에서 가장 강하며(삿 14:18 ; 잠 30:30) 무서운 동물입니다(암 3:8). 다윗은 목동 시절 사자와 직접 싸운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자가 얼마나 위협적이고 무서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마귀를 배고파 우는 사자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벧전 5:8). 굶주린 사자는 먹이를 발견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고, 또 그것을 잔인하게 먹어 치웁니다(시 17:12). 다윗의 원수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사탄의 하수인처럼 끈질기게 다윗을 괴롭히며 그의 생명을 노렸습니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무고함을 호소하며, 만일 죄가 있다면 원수가 자기의 생명과 명예를 짓밟아도 좋다고 했습니다(시 7:3-6). 그만큼 자신이 결백하다는 걸 강조한 것입니다. 다윗은 죄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고난을 감수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고난을 겪을 때, 그것을 자신의 죄 때문이라 여기며 묵묵히 감수했습니다(삼하 16:10, 11). 다만 자기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삼하 16:12).

우리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우리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다윗처럼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주께 피한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시 146:5).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의 힘이 되시며, 어려울 때마다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시 46:1). 그러므로 우리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아야 합니다(시 146:5).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요 방패(시 7:11)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모든 위협과 환난에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자신의 무고함을 호소한 다윗은 원수들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시 7:6)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윗이 마치 하나님께 명령하듯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어나사, 막으시며, 깨소서’라는 표현은 모두 명령형입니다. 하지만 이는 무례함이 아니라, 간절함에서 나온 호소입니다. 히브리 시(詩)에서 명령형은 단순히 ‘무엇을 하라’는 지시나 요구를 넘어서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간절함을 호소하는 표현 방식입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두 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를 해하지 않은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어 자기와 사울 사이를 판결하시고,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삼상 24:15). 하나님만이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판단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 7:8).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시 7:11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게 강조하신 것은 무엇보다 공정한 판결이었습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라”(레 19:15) 하지만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은 이러한 명령을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고 판결하며, 의인들이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빼앗는 등(사 5:23)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공정한 재판을 일삼았습니다(사 1:23). 설령 그들이 뇌물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하려고 해도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편견이나 실수 혹은 오해 등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많은 국가에서 3심 제도를 두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편견이나 실수 혹은 오해 없이 공정하고 의로운 판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다윗은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사람에게 호소하기보다, 하나님께 심판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심판을 명령하셨다고 확신하며 그것을 믿음으로 선포했습니다.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시 7:6하).

다윗은 억울함을 겪을 때 사람들에게 호소하기보다 하나님께 자신의 사정을 아뢰며 그분께 모든 판단을 맡겼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 곧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낙심하거나 분노하기보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어야 합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악인에 대해서 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라고 하는 동시에,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 7:11). 여기서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 따른 의로운 분노 즉 불의에 대하여 일으키는 분노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분노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공의로운 심판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나 1:3). 그런데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벧후 3:9). 따라서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용서하시고 그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요일 1:9). 하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마음을 고쳐 바르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칼을 가시며 활을 당겨 그들을 겨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무기로 불화살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악한 생각을 가슴에 품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악인은 자기가 만든 속임수에 빠질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빠뜨리기 위해 구덩이를 깊이 파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 구덩이에 빠질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어려움에 스스로 빠지게 되고, 그들이 일으킨 폭력이 그들 머리 위로 돌아갈 것입니다.”(시 7:12-16, 쉬운성경) 성경에서 불은 종종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했습니다(신 4:24 ; 히 12:29). 소돔과 고모라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고(창 19:24 ; 유 1:7), 이 세상도 언젠가는 불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벧후 3:7).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자들 역시 그와 같은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 기자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다고 했습니다(잠 2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입니다. 그것이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런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미 6:8).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왕상 15:5),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습니다(삼하 8:15). 그럼에도 종종 고난을 겪었어야 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고,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심판을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으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도움으로 삼아야 합니다(시 146:5).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요 방패(시 7:11)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모든 위협과 환난에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