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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어

2025. 5. 29.
성경본문 보기

로마서 4장 1절 ~ 11절 [개역개정]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문 보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깨닫게 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롬 3:20). 그렇다면, 죄인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바울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합니다(롬 3:21). 그 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롬 3:2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량 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고(마 26:39 ; 빌 2:8), 그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롬 3:2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신약에서 처음 제시된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게 하신 구원의 진리입니다. 여기에 그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고, 구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롬 3:30). 이것을 바울은 믿음의 법이라고 했습니다(롬 3:27). 즉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롬 1:17). 이 외에 죄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율법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일까요? 믿음의 법이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율법은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롬 3:31상). 이에 대해 바울은 믿음이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했습니다(롬 3:31하). ‘율법을 굳게 세운다’라는 말은 ‘율법을 굳게 지킨다’란 의미입니다. 어떻게 믿음의 법이 율법을 굳게 지킬 수 있다는 말일까요? 이러한 의문은 예수님 당시에도 제기되었습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과 배치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준수가 아닌 ‘회개’를 강조하셨고(마 4:17), 율법이 아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마 4:23). 율법의 행위가 아닌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심으로써 유대의 지도자들로부터 율법을 부정하고 폐하려 한다는 강한 의구심을 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어떤 일을 해서도 안된다(출 20:10)는 율법 규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세부적인 조항까지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는 일정 거리 이상 이동하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성경에서는 이를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고 표현합니다(행 1:12). 이 거리는 1킬로미터 내외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에 이러한 거리 제한은 완화되었습니다. 병자에 관한 규정도 있는데, 생명이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치료가 금지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고, 대부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경우였습니다. 따라서 율법에 따르면,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마치 예수님께서 율법을 부정하고 폐하려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온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마 5:17). ‘완전하게 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플레로사이(πληρῶσαι)’는 ‘가득 채우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완성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율법을 완성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바는 단순한 외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는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기준을 말합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지으려는 본성을 지닌 인간이 그 의로운 요구를 온전히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로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롬 3:20).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려 함이라”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의 법,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롬 3:28).

바울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조상이지만 동시에 믿는 사람들의 조상 즉 믿음의 조상이기도 합니다(롬 4:11). 사람들은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살았을 것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역시 죄 된 본성을 지닌 인간으로 실수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인물조차 그러했으니,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가 행위로써 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롬 4:3).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그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아직 자녀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창 15:6).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그에게 언약을 재확인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6, 7) 이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이루어진 것입니다(롬 4:13).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이지, 율법에 근거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만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 또한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롬 4:14). 따라서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나 되어 자기 몸이 거의 죽은 것과 같고, 사라도 나이가 많아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롬 4:19). 그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했습니다(롬 4:21). 이에 대해 바울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바라고 믿었으며(롬 4:18), 믿음이 약해져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롬 4:20).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창 4:22). 이는 아브라함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됩니다(롬 4:24). 즉,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이든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든 모두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롬 4:16).

그리고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했던 사건은 그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라고 하셨을 때(창 22:2), 아브라함은 아무 말 없이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히 11:19). 그래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 난 사람이라야 네 자손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창 21:12 ; 히 11:18). 따라서 이삭은 반드시 살아 있어야 했습니다. 비록 이삭이 죽는다 하더라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능히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믿음은 더욱 강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롬 4: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그의 어떤 행위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롬 4:3).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자랑할 게 없습니다(롬 4:2). 이는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 보수를 받는 것과 같으며, 경건하지 않은 자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 바울은 다윗의 고백을 인용합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시 32:1, 2) 함과 같으니라”(롬 4:7, 8). 이것은 인간의 구원이 사람의 공로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냅니다(엡 2:8).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오직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랑해야 하고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를 멸망의 길에서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값없이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그 은혜에 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