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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2025. 6. 3.
성경본문 보기

히브리서 12장 18절 ~ 29절 [개역개정]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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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본문 : 히 12:18-29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요약하면,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히 12:2),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며(히 12:1),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히 12:14). 이어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자들이 들어가게 될 나라 곧 천국이 어떤 곳인지 관하여 소개합니다.

1.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히브리서에는 ‘천국’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장차 우리가 들어가게 될 영원한 나라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11장 16절에서는 그 나라를 ‘더 나은 본향’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 11:16) 그리고 본문 12장 22절에서는 그 나라를 좀 더 구체적으로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묘사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8장에서 지상에 있는 성막에 대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습니다(히 8:5). 이는 하늘에 참 성막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히 8:2). 지상의 성막은 솔로몬 이후 성전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성전은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세워졌습니다(대하 3:1). 예루살렘은 시온산과 모리아 산을 모두 포함하는 도시로 원래는 여부스 원주민이 거주하던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 성을 점령한 후 다윗 성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대상 11:5).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이라 칭하기도 합니다(시 46:4).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으로 불리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천국을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묘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막이 처음 세워진 곳은 시내 광야였습니다(출 19:1 ; 민 1:1). 그곳에 시내 산이 있는데(행 7:30), 이 산은 호렙산과 같은 장소입니다(출 3:1). 히브리서 기자는 그 산을 가리켜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히 12:18, 19). 이는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임재하셨을 때의 상황과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느꼈던 두려움을 묘사한 것입니다(출 19:16 ; 20:18). 그 산을 ‘만질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시내 산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리적인 장소였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가 단순한 상징이나 신화처럼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산 주위에 경계를 정하게 하시고,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경계를 침범하면 돌로 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출 19:12, 13 ; 히 12:20). 그러한 명령은 백성에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큰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히 12:21). 이에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말고, 모세를 통해 말씀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 20:19 ; 히 12:19).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이른 곳은 시내 산과 같은 두려움의 장소가 아닙니다. 그곳은 시온산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란 지명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으로, 이는 하늘의 예루살렘이 참된 평화와 안식의 도성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비록 지금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 나라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이미 소유하고 있으며(히 12:22), 장차 들어가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입니다(히 13:14). 그날에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담대히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2. 하늘에 속한 공동체

히브리서 기자는 그곳에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가 있다고 했습니다(히 12:22-24). ‘천만’으로 번역된 헬라어(μυριάσιν)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를 나타냅니다. 이는 하늘의 천사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모임’은 단순한 집회가 아니라 축제를 위한 예배를 가리키며, 하늘에서 천사들과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만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이 있습니다.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된 자들 곧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혼을 말합니다(히 10:14; 11:40).

그리고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뿌리신 피가 있는데, 그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해 준다고 했습니다(히 12:24). 여기서 ‘아벨의 피’란 그의 의롭고 억울한 죽음을 가리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고, 그로 인해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다(히 11:4). 반면에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는데(창 4:5), 그 이유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자 곧 예배하는 자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히 11:6). 그러한 믿음 없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러한 예배가 있다면 그것은 예배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가 드린 예물이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양의 첫 새끼는 그가 거둔 첫 소산이고 기름은 가장 살찐 것을 말합니다. 이는 아벨이 양의 첫 소산과 양 떼 중에서 가장 살찌고 기름진 것을 골라 하나님께 바쳤음을 의미합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계신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창 4:4). 이로써 아벨은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 즉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단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는 가인의 제사가 믿음은 없고, 단순히 형식적이며 의무만을 이행한 것임을 보여줍니다(창 4:7). 하나님께서 그런 제사를 기뻐하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받으시기 전에 먼저 그것을 드리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믿음 없이 드린 제물은 그것이 아무리 값지고 화려하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으십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그의 얼굴빛이 변할 정도로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 분노는 아벨을 향했고, 결국 그를 죽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창 4:8).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불만을 동생에게 표출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가 어디 있는지 모르셔서 하신 질문이 아닙니다. 이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숨었을 때 그러셨던 것처럼 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자백하도록 하시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창 3:9).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반문하며,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창 4:9). 죄인이 살 길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것밖에 없는데, 가인은 도리어 그 죄를 감추려고만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 ‘피 소리가 하나님께 호소한다’라는 표현에는,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의 피 흘림에 대해 결코 침묵하거나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그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벨의 피’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하는 피입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는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은혜의 피입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죄인은 구원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롬 5:10). 예수님께서는 아벨처럼 의롭게 죽임을 당하셨지만, 아벨의 피가 심판을 요구한 것과 달리,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었기에 '더 나은 피'입니다. 그리고 이 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해 원수 관계에 있었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언약의 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늘에 속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맹렬한 불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히 10:27).

3.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

앞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임재하셨을 때의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히 12:18, 19). 26절에서는 그 장면에 ‘그 소리 즉 하나님의 음성이 땅을 진동시켰다’라는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출 19:18).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시킬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히 12:26하). 이는 학 2:6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이 말씀은 세상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 즉, 흔들리지 않는 것을 영원히 지속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히 12:27).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며, 이 세상은 사라질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 즉 흔들리지 않는 것을 영원히 지속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히 12:27).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세상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나라를 받았으므로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경건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합니다(히 12:28).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롬 12:1).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단지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엡 2:10).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고전 10: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늘에 속한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들어가게 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